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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9.20 번역서 『나는 이렇게 나이들고 싶다』



지은이: 소노 아야코
옮긴이: 오경순
출판사: 리수
출간일: 2004년 7월 16일
원제: 戒老錄 (계로록: 늙음을 경계하는 글)


[책 소개]

『중년이후(中年以後)』가 삶을 바라보는 안목은 온갖 시행착오를 겪은 중년 이후에나 얻을 수 있기에 중년 이후의 삶이야말로 진정한 인생이라고 말한다면, 이 책은 더욱더 농익은 내면의 휴식기인 노년에 보다 가치 있는 삶과 행복을 영위하기 위해 중년부터 어떠한 마음가짐과 준비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 말하고 있다.
   
 원제가 『계로록(戒老錄, 늙음을 경계하는 글)』인 이 책은 일본에서 1972년 작가의 나이 41세 때 첫 출판된 이후 51세와 65세 때 수정·가필하여 출간될 정도로 세대가 바뀌어도 공감할 수 있는 인생에 대한 근본적인 고뇌와 공감을 끌어내는 책이다. 소노 아야코는 심오한 인생 철학에 대한 쉽고도 가슴에 와닿는 표현으로 50여 년 간 폭넓은 독자층으로부터 사랑받고 있는 관록의 작가이며, 이 책 또한 32년 동안이나 읽혀지고 있다.

총3부로 구성된 이 책은 1부에서 풍부한 경험으로 무르익어야 할 노인의 내면이 오히려 자취를 감추고 뻔뻔스러움이 두드러지게 되는 원인을 어른다움과 자립의 상실이라는 마음 태세의 문제로 접근하였다. 2부에서는 일상에서 늘 겪는 소소한 상황들 속에서 노인이 어른다움을 잃지 않고 자립할 수 있는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 3부에서는 젊음과 마찬가지로 늙음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함은 물론 어떻게 하면 죽음을 긍정적이고 행복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지에 대한 방법론을 알려준다.

이 책을 통해 노년에 가져야 할 삶의 자세와 방식을 접하게 된다. ‘모두가 친절하게 대해주면 늙음을 자각할 것’, ‘스스로 처리할 수 없는 인사치레는 포기할 것’, ‘교제 범위나 매너를 젊은 세대에게 강요하지 말 것’, ‘칭찬하는 말조차도 주의할 것’, ‘평균 수명을 넘어서면 공직에 오르지 말 것’ 등에서부터 소소하게는 ‘짐을 들고 다니지 말 것’, ‘저녁에는 일찌감치 불을 켤 것’, ‘자주 씻을 것’, ‘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물건을 줄여나갈 것’, 화장실 사용 시 문을 꼭 닫고 잠글 것’ 등에 이르기까지 아주 구체적인 것도 이 책의 특징이다.이는 곧 지금부터 어떻게 생각하고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해답과 동일하다. 이 책은 늙음에 대해 막연한 불안감을 느끼거나 좀더 구체적이인 노화 방지책을 얻고자 하는 이들에게 쉽게 만나기 힘든 조언자와 같은 책이다.


[저자 소개]

소노 아야코(曾野綾子)

1931년 도쿄 출생. 소설가. 성심여자대학교 영문과 졸업.
1954년 《멀리서 온 손님(遠來の客達ち)》이 아쿠타가와(芥川)상 후보가 되어 문단 데뷔. 
대표작으로《이름 없는 비석(無名碑)》《누구를 위하여 사랑하는가(誰のために愛するか)》《계로록(戒老錄)》《기적(奇蹟)》《신의 더럽혀진 손(神の汚れた手》《죽은 자의 방(死者の宿)》《호수 탄생(湖水誕生)》《천상의 푸르름(天上の靑》《21세기에의 편지(二十一世紀への手紙》등 다수. 1970년 발표한 《누구를 위하여 사랑하는가》는 400만 부가 넘는 초베스트셀러를 기록함.

아시아·아프리카 국제봉사재단 이사, 일본 문예가협회 이사, 해외 일본인선교사 활동후원회 대표, 일본 오케스트라연맹 이사를 역임. 현재 일본재단 회장.

우리나라의 성나자로 마을 나환자들을 위한 강연회 및 자선 모임을 주선하는 등 20여 년 간 나환자들을 위한 지원 및 이들 소외 계층의 슬픔과 고통을 문학 작품을 통해 승화시킴. 또한 1978년 경주 나자로원을 설립하여 국내에 독거하는 일본인 노인들의 숙식을 돕고 있음. 2000년 6월 대통령 영부인 이희호 여사가 펴낸 《내일을 위한 기도》(일본판 제목 '가시밭길 저편')에 추천문을 써준 것이 인연이 되어 이희호 여사의 초청으로 청와대를 방문함.

수상 경력은 로마 법왕청의 바티칸 유공십자훈장 수상(1979년), 한국 한센병 사업연합회의 다미앵 신부상 수상(1983년), 한국 우경재단의 문화예술상 수상(1992년), 일본 예술원 은사(恩賜)상 수상(1993년), 일본 방송협회 방송문화상 수상(1995년), 요미우리 국제협력상 수상(1997년), 헬렌켈러 퓰리처상 수상(2000년) 등이 있다.



[차례]

서문 자기 구제의 시도 / 두 번째 서문 만년(晩年)의 길목에서 /
세 번째 서문 나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

1. 엄중한 자기 구제

남이 ‘주는 것’, ‘해주는 것’에 대한 기대를 버린다 / 남이 해주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일은 일단 포기할 것 / 노인이라는 것은 지위도, 자격도 아니다
가족끼리라면 무슨 말을 해도 좋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자신의 고통이 이 세상에서 가장 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의 생애는 극적이라고 생각하지 말 것 / 한가하게 남의 생활에 참견하지 말 것
다른 사람의 생활 방법을 왈가왈부하지 말고 그대로 인정할 것
푸념을 해서 좋은 점은 단 한 가지도 없다  /
명랑할 것
 ‘삐딱한 생각’은 용렬한 행위, 의식적으로 고칠 것

무슨 일이든 스스로 하려고 노력할 것 / 젊었을 때보다 자신에게 더욱 엄격해질 것
젊음을 시기하지 않을 것, 젊은 사람을 대접할 것 / 젊은 세대의 미래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냉혹할 것
젊은 세대는 나보다 바쁘다는 것을 명심할 것 / 생활의 외로움은 아무도 해결해줄 수 없다
자식이 걱정을 끼친다면 오히려 감사할 일이다 / 거짓말을 하지 않을 것
공격적이지 말 것 / 태도가 나쁘다고 상대를 비난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의사가 냉정하게 대해도 화내지 않는다 / 같은 연배끼리 사귀는 것이 노후를 충실하게 하는 원동력이다
정년을 일단락으로 하고, 그 후는 새로운 출발로 생각할 것
보편적으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
최고 연장자가 되어도 자신이 지배적 위치를 차지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즐거움을 얻고 싶다면 돈을 아끼지 말 것

2. 생의 한가운데에서

혼자서 즐기는 습관을 기를 것
/ 손자들이 무시하는 경우가 있어도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 것
손자를 돌보아줄 것, 그러나 공치사는 하지 않을 것 / 묘지 등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을 것
자식에게 기대는 것은 이기적이고 바람직하지 못한 부모다 / 자신이 지켜야 할 범위를 분명히 해둘 것
교제 범위나 매너를 젊은 세대에게 강요하지 말 것
타인의 도움이 필요하면 직업적으로 해줄 사람을 선택할 것
‘돈이면 다’라는 생각은 천박한 생각 / 노인들은 어떠한 일에도 감사의 표현을
타인에게 어떤 일을 시킬 경우는 참견하지 않을 것 / 스스로 처리할 수 없는 인사치레는 포기한다
스스로 돌볼 수 없는 동물은 기르지 않는다 / 애완 동물의 이야기를 자주 하는 것은 노화의 징조
고정 관념을 버릴 것 / 새로운 기계 사용법을 적극적으로 익힐 것
자신을 위로해준 말을 타인의 비난용으로 쓰지 않을 것 / 칭찬하는말조차도 주의할 것
조직에서 상급자가 되려면 자제심을 갖춘다 / 평균 수명을 넘어서면 공직에 오르지 않는다
모두가 친절하게 대해주면 늙음을 자각할 것
세상이나 주위 사람에게 빤히 들여다보이는 구애는 하지 않는다
나이 들어 이혼하면 편안하기는 하나 몹시 외롭다
노인이라는 사실을 실패의 변명 거리로 삼지 않을 것
건망증이나 다리나 허리의 불편함을 일일이 변명하지 않을 것
가능하다면 젊었을 때부터 자신의 건강 관리에 도움이 될 만한 책을 읽는다
건강 기구 약 등을 타인에게 무턱대고 권하지 말 것 / 배설 문제에 너무 신경질적이 되지 말 것
갑작스러운 성격이나 감정의 변화는 몸에 이상이 생긴 것
러시아워의 혼잡한 시간대에는 이동하지 말 것 / 짐을 들고 다니지 말 것
식사 방법에 주의와 배려를 / 시력, 청력 등이 저하되면 일각이라도 빨리 손을 쓸 것
입 냄새, 몸 냄새에 신경을 쓸 것 / 자주 씻을 것
화장실 사용 시 문을 꼭 닫고 잠글 것 /일생 동안 몸가짐과 차림새를 단정히 할 것
자신의 용모가 허술해지는 것을 걱정하는 만큼, 남들은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다
신변 소품은 늘 새로운 것으로 교체할 것 / 자주 버릴 것
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물건을 줄여나갈 것 / 무엇이든 탐내지 않는다
무언가 말을 남기고 떠나야지 하는 생각을 버린다 / 화초 가꾸는 일만 하면 빨리 늙는다
뭔가 이루지 못한 과거가 있더라도 유감이었다라는 말 등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친구가 먼저 죽더라도 태연할 것 / 자신이 체력, 기력이 있는 노인이더라도 뽐내지 않을 것
노인들끼리 함께 행동할 때는 매우 조심스럽게 / 지나간 이야기는 정도껏 한다
허둥대거나 서두르지 않고 뛰지 않는다 / 외출해서는 항상 긴장을 한다
잘 걸을 수 있도록 다리를 늘 튼튼히 할 것 / 매일 적당한 운동을 일과로 할 것
전화, 우편 업무 등은 스스로 해결하도록 할 것 / 젊은이들에게 방해가 되는 장소에는
비 바람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 / 여행을 많이 할수록 좋다 여행지에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이사나 대청소 때 노인은 자리를 피해주는 것이 좋다
관혼상제, 병문안 등의 외출은 일정 시기부터 결례할 것 / 저녁에는 일찌감치 불을 켤 것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보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습관을 가질 것
아침 일찍 눈이 떠지는 것을 한탄하지 않을 것 / 자신의 동네에 애정을 가질 것

3. 죽음을 편안하고 친숙하게

재미있는 인생을 보냈으므로 언제 죽어도 괜찮다고 생각할 정도로 늘 심리적 결재를 해둔다
늙음과 죽음을 일상 생활에서 가끔 생각할 것 / 장수를 견뎌낼 수 있을지 생각해본다
최후는 자연에 맡기는 것도 좋다
노인의 세 가지 적─유동식, 점적, 휠체어─을 거부하는 것에는 본인의 의지도 필요하다
유언장 등은 편안한 마음으로 미리 준비해둔다 / 병이 정말로 낫지 않는 경우는 오직 한 번 있을 뿐이다
어떠한 냉혹한 대우를 받게 되더라도 죽기 전에 보복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자살이란 더할 나위 없는 비례(非禮)이다 / 늙어가는 과정을 자연스레 받아들인다
혈육 이외에 끝까지 돌봐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 날마다 보살펴주는 타인에게 감사할 것
인간적인 죽음의 모습을 자연스레 보여줄 일이다 / 죽는 날까지 활동할 수 있는 것은 최고의 행복
돈이 다 떨어지면 최후에는 길에 쓰러져 죽을 각오로
돈도 의지할 사람도 없게 되면 주위 사람에게 신세질 일이다
행복한 일생도, 불행한 일생도 일장춘몽 / 죽음으로서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을 행복으로 생각할 일
종교에 대해 마음과 시간을 할애할 것 / 한평생 부단히 노력한다
노년의 가장 멋진 일은 사람들 간의 화해 / 덕망 있는 노인이 될 것
노년의 고통이란 인간의 최후 완성을 위한 선물 / 이 세상에 대한 미련을 남기지 않는다
최후까지 살아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이다 / 노년을 특수하거나 고립된 상황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장기 기증 등을 통해 자신의 사랑을 남기는 방법도 고려한다
자신의 죽음이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기쁨이 되도록 노력한다

후기 오욕(汚辱)투성이일지라도 꿋꿋이 살아가라
두 번째 후기 / 세 번째 후기 / 옮긴이의 글



[본문 중에서]

남이 ‘주는 것’, ‘해주는 것’에 대한 기대를 버린다. 이러한 자세는 어렸을 때는 유아의 상징이고, 나이 들어서는 노년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아주 적은 돈이나 물건, 시중에 이르기까지 노인들은 받는 것에 대해 믿을 수 없을 만큼 민감하다. 이런 심리 상태가 모든 면에서 매우 심해지면, 그것은 노화가 상당히 진행된 증거로 보아도 좋다. --- p.33

노인이 제일 먼저 잃는 것은 ‘어른다움’이다. 노인은 언뜻 보기에 누구나 쉽게 단념하는 듯이 보이지만, 결코 그렇지는 않다. ‘어른다움’이란 대국적 견지에서 스스로는 뒷전으로 물러서는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타인에게 이득이 되게 하기 위해 자신을 어느 정도 희생하며 티를 내지 않는 것이다. 나는 ‘어른다움’의 미학을 소중히 간직하고 싶다. 누구든지 한 번은 젊고 누구든지 한 번은 늙는다. 이만큼 공평한 흐름을 시기하는 것은 탐욕이다. --- p.60

“이렇게 매일 집에만 있는 것도 정말 따분해서 죽겠어.”
“그럼 친구분 집에 놀러 가시지 그러세요?”
“빈손으로는 곤란하지. 차비도 들고 과자 한 봉지라도 돈이 드니까, 그리고 밖에 나서면 피곤도 하고….”
“그럼 친구분을 놀러 오시라 그러세요. 그분은 여전히 건강이 좋으시니까 꼭 와주실 거예요.”
“그 사람 오기만 하면 갈 줄을 모르니까, 가라고 할 수도 없고 피곤해.”
“좀 피곤하면 어때요? 할머니는 내일 꼭 뭘 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피곤하면 그만큼 다음날 푹 주무시면 되잖아요.”
“그렇지만, 그것도 힘이 드는 일이라니까.”
돈도 쓰고 싶지 않고 피곤한 것도 싫고 혼자 조용히 있는 것은 따분하다고 한다. 전부가 불만인 것이다. 이런 형태의 불만은 노년의 독특한 것이지만, 나는 노년인 나 자신에 대해 그것은 방자한 짓이라 말해두고 싶다. 옛날 젊었을 때는 돈이 줄어드는 게 누구에게나 싫은 일이지만, 그래도 우리들은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 없는 돈을 다 털어 연극도 보고 영화도 보러 갔다. 소풍을 갔다오면 다음날 녹초가 된 일도 있었으나 그래도 외출하곤 했다. 반대로 남들이 나를 까맣게 잊어버릴 것 같지만, 집에 조용히 틀어박혀 빈둥빈둥 종일 빗소리를 들으며 불을 쬐면서 텔레비전을 보는 고적함이 행복이라 생각한 날도 있었다. 무엇인가를 얻을 때는 반드시 무엇인가를 잃게 된다. --- p.88

노인이 되면 아무개는 나의 마음을 알고 있다든지, 아무개는 나의 편이라는 등 유치한 표현을 하게 된다. 마음에 맞는 친구가 있으나 그것은 상대가 옳은 사람이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왠지 모르게 느낌, 어리석음, 성질, 취미 등이 닮았기 때문에 친구가 되는 것이다. 내 편이니까 받아들이고 자신을 비난할 경우 거부하는 형태로 사고가 변하게 되면 상당히 노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자각해야 한다. --- p.120

높은 지위나 훈장을 탐낸다든지, 특수한 명예를 지닌 단체의 회원이나 임원이 되길 원한다든지, 비석, 동상 등을 세워주길 바라지 않아야 한다. 만일 이러한 욕심이 생기면 늙고 있다는 증거로 자각하고 경계해야 한다. --- p.123

모두가 친절하게 대해주면 늙음을 자각할 것. 자신의 판단력이 흐려지고 있는지 어떤지를 판별하는 데는 이 방법뿐이라 생각한다. 어쨌거나 동정심만 받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나는 정말로 싫었다. 노후에 받아야 하는 것은 동정심이 아나라 지극히 평범한 인간으로서의 대우이다. --- p.130

화장실은 문을 꼭 닫고 사용한다. 무릎은 똑바로 가지런히 놓고 의자에 앉는다.
이 두 가지도 노화의 정도를 정확히 나타내주는 것들이다. 어쩐 일인지 화장실에 들어가 문을 완전히 닫고 잠그는 이런 것들조차도 나이가 들면 귀찮아지는 것 같다. ‘노인이니까 열어둔 채로 용변을 봐도 별 대수로운 일이 아니다’라고 하면 할 말은 없으나, 문제는 그러한 정신상의 해이와 세상 사람에 대한 배려의 결여이다. --- p.153

걷는다는 것은 그저 단순히 한 지점에서 다른 한 지점까지 이동할 수 있는 능력 이상의 중대한 의미를 갖고 있다. 걷는다는 것은 첫째로 건강에 좋은 것이고, 걸을 수 있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보통 사람과 같은 상태라는 최소한의 보증인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희랍어의 해석을 한 번 더 빌리자면, ‘걷다’라는 말은 ‘페리파테오’라고 하는데 이는 ‘걸어 돌아다니다’라는 뜻이기도 하고, ‘그 사람답게 처신하다’라는 의미이기도 하며, 또 무엇보다 ‘생활하는 것’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서 걷지 못하는 사람은 그 사람답게 처신하지도 생활할 수도 없다고 희랍 사람들은 생각했던 것이다. --- p.186

저녁에는 일찌감치 불을 켤 것. 아주 작은 일이다. 인간의 정신은 아주 사소한 것에 영향을 받기가 쉽다. 전기료가 아깝다고 해서, 혹은 전깃불을 켠다고 책을 읽을 것도 아니라며 전등을 켜지 않으면 어떻게 될 것인가. 어둠 속에 있으면 의복이 누더기 같아도 상관없다. 머리를 빗지 않아도 남에게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이미 정신의 죽음을 의미한다. --- p.195

자살이란 더할 나위 없는 비례(非禮)이다. 싸움이라면 얼마든지 해도 좋다. 그것은 나중에 대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죽음은 무시무시한 거절이다. 앞으로 영원히 더 이상 너와 상대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아무리 괘씸한 대우를 받았다 하더라도 죽음으로써 보복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의 괘씸한 소행은 없다. --- p.222

늙어가는 과정을 자연스레 받아들인다. 누가 이런 늙음의 모습을 만들었을까? 그것은 당신도 아니고 나도 아니다. 눈은 둘, 코는 하나로 만들어져 있듯이 이유도 없이 늙는다는 것도 어떤 하나의 모습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스스로가 이런 모습을 선택했다고 한다면 수치스러워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자연스레 주어진 늙음의 모습에 하등의 저항할 필요가 없다. --- p.224

노년은 인간의 일생 중 연속된 하나의 과정에 지나지 않으며, 이런 모습을 총괄적으로 파악하지 못하면 인생도, 노년도 파악할 수 없다. 노년은 반드시 지나야 할 하나의 과정인 것이다. 처음부터 노인으로 태어나는 사람은 특수한 환자가 아닌 한 보통은 있을 수 없다. 이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노년만을 떼어내 문제를 삼으려고 할 때 거기서 인간은 자기를 상실하고 노년의 절망과 분노가 생겨나게 된다.
--- p.261 

나는 요즈음 만년에 있어서 필요한 네 가지를 허용(許容), 납득(納得), 단념(斷念) 그리고 회귀(回歸)라고 생각하게끔 되었다. 이 책의 각 항목은 부분적으로 이런 것들을 언급하고 있다. 즉 이 세상에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선과 악이 어떤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 허용이며, 내 자신에게 일어난 여러 가지 상황을 정성을 다해 의미를 부여하려는 것이 납득이다. 종교적으로 말하면 그것은 신의 의지를 자신에게 일어난 모든 것에서 보고자 하는 노력이다. 갈망했으나 이루지 못했던 것은 어떠한 인간의 생애에도 있으며, 그때 집착하지 않고 슬그머니 물러날 수 있다면 오히려 여유 있고 온화한 인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단념이다. 그리고 회귀란 사후 어디로 돌아갈 것인가 생각하는 것이다. 무(無)라도 좋으나 돌아갈 곳을 생각하지 않고 출발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 p. 278 [두 번째 후기 중에서]

출처:
http://www.risu.co.kr/

[큰글씨판] 2009년 9월 7일 출간

2004년 출간이후 많은 독자들의 요청으로, 노안으로 인해 책을 편안하게 읽기 어려운 독자층을 위한 실버출판을 시도했습니다. ^^




Posted by 오경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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