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어머니는 올해 92세이다.
동네 아파트 노인정에서 건강체조도 하시고 노래교실도 나가시고 화투도 치시며 철마다 노인정 야유회 등
이런저런 문화생활도 즐기시며 건강관리에도 철저하시다.
오히려 며느리보다 더 흥미진진하고 변화무쌍한 하루하루를 사시는 편이다.
일하는 며느리 입장에서는 참 다행이다 싶다.
지금으로부터 꼭 33년 전 결혼식이 끝나고 폐백을 올릴 때 시이모님들께서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머니가 건강도 안 좋으시고 하니 앞으로 살면 얼마나 사시겠니? 어머님께 잘 해드려라.”
“사시면 얼마나 사시겠니?”로부터 바야흐로 33년이 흘렀다. 그 33년 동안 암수술도 한 번 하셨고 경미한 교통사고로 입원하신 적도 있지만 아직도 끄떡없이 정정하시다.
기억력은 나보다 훨씬 좋다. 얼마나 다행천만한 일인지 모른다.
난 늘 명절 때마다 “어머니 95까지는 끄떡없이 건강하게 사세요.”하면서 절을 올렸다.
그런데 내일 모레면 95세이니 내년에도 이런 레퍼토리(?)로 절을 올리는 날에는 불효막심한 며느리가 되는 건 시간문제다.
그래서 내년부터는 “어머니 100세까지 건강하게 오래 오래 사세요.” 라는 대사를 미리 준비해두고 있다.
그러나 이 레퍼토리도 언젠가 수정해야 하는 날이 오지 않으리라고는 장담할 수 없다.
나도 그렇지만 대체로 내 주위 사람들도 상황이 매 한 가지이긴 마찬가지다.
2008년 73세로 작고한 일본의 유명한 저널리스트며 뉴스캐스터인 지쿠시 데쓰야(筑紫哲也) 씨의 책『스로우 라이프(スローーライフ)』를 보면 ‘인생7곱하기론(人生七掛け論)’이라는 수긍할 만한 그의 지론이 나온다.
인생 50년 시대와 달리 지금은 인생 100년 시대이므로 자신의 나이에 0.7을 곱한 나이로 생각하며 살아야 마땅하다는 논리이다. 예를 들어 지금 90세라면 63세의 마음가짐으로, 50세라면 35세 젊은이의 감각으로 살아야 타당하다는 논리다.
‘인생 7곱하기론(人生七掛け論)’뿐만 아니다.
‘인생 6곱하기론(人生六掛け論)’까지 등장했다.
계산법은 이렇다.
인생 50년이 인생 80년으로 늘어났으니 50÷80=62.5%, 즉 0.625 이므로 이를 배율로 따지면 수명은 1.6배로 늘어난 셈이 된다. 따라서 현재 68세라면 68×0.625=43세가 된다는 거다.
‘인생7곱하기론(人生七掛け論)’과 ‘인생6곱하기론(人生六掛け論)’을 절충해보면 현재 50세 이상이라면 연령×0.625의 계산법이 타당할 듯하고, 50세 이하라면 연령×0.7의 계산법을 사용하면 인생 50년 시대 적 자신의 나이가 나온다.
어찌됐든 나와 같은 50세 이상 된 사람에게는 기분 상으로도 삼 사 십대 젊은 그 때 그 시절로 되돌려 준 느낌이니 일단은 대환영이다.
내가 30대 무렵 어느 일본신문 칼럼에서 ‘30대는 人才, 40대 人財, 50대 人罪’라고 글귀를 본 적이 있다.
아마 요즘에 이와 같은 칼럼을 썼다면 필자나 신문사에 항의 전화로 대소동이 빚어질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요컨대 ‘인생7곱하기론’으로 보면 올해 92세인 우리 어머니는 64세이고 며느리인 나는 41살밖에 안 된 거다. 인생 100년이라 가정할 때 아직도 어머니는 수명이 36년이나 더 남았고 나는 딱 반이 더 남아있는 셈이다.
그러나 마냥 오래 사는 것을 좋아할 만큼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다.
그래서 장수(長壽)는 축복이자 리스크라 하지 않았던가.
이 리스크 관리술에 따라 장수가 축복이 될지 저주가 될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고 아찔하다.
결국 버나드쇼처럼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고 땅을 치며 후회하게 될까봐.
(2014.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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