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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11.21 어느 날 번역이 내게로 왔다

“나는 일본어를 모르지만 이 책 참 괜찮다는데 번역 한번 해보지 않을래?”

 

소노아야코(曽野綾子) 선생의계로록(戒老録)과 나의 첫 만남은 1997년 가을 뜻밖의 길목에서 그렇게 우연히 시작되었다.

 

계로록(戒老録)』을 맨 처음 내게 건네주셨고 지난 십 수 년 간 내가 걸어가는 길목 길목마다 늘 사랑과 격려로 말없이 지켜봐주시는 박경자 선생님과의 오랜 인연 덕분이었다.

 

행운은 우연과 필연사이를 거닐고 있다더니만, 인생의 내리막 고개 길에서 주춤거리고 있을 때, 나는 운 좋게도 산책 나온 행운과 마주친 것이다.

 

이 책을 계기로 내가 번역의 길로 들어서게 될 줄이야…

그리하여 새로운 낯선 길에서 많은 사람과의 아름다운 만남으로 살아가는 즐거움을 갑절 만끽하게 될 줄이야…

 

번역을 마치고 나서 제일 먼저 아버지께 보여드렸다.

“이건 꼭 내가 살아 온 얘기고 앞으로 내가 살아갈 길을 말해주는 내 맘과 꼭 같은 책이로구나”

아버지의 그 말씀 한 마디는 여태껏 번역을 해오면서 가장 든든한 빽이었고 번역의 노동은 어느 샌가 아버지를 다시금 추억할 수 있는 기분 좋은 작업이 되었다.

 

‘인생에 진미(眞味)기간이란 없고 꿈이 있는 한 인생에 정년은 없다.’

번역을 처음 시작했을 때나 지금이나 이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들과 만나는 즐거움이 큰 격려가 되기도 하고 흥미진진한 새로운 길로 접어드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우연히 내게 다가온 번역의 숲속을 산책하면서 묵묵히 제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소박하고 정다운 이들과의 만남으로 내 삶의 호흡이 얼마나 깊어지고 또 풍성해졌는지.

역시 돈 부자가 아니라 사람 부자가 되라는 말은 언제나 유효하다.

많은 사람들을 만날수록 그만큼 행복의 확률도 커진다는 말일테다.

 

내 앞에 길이 놓여있는 한 나는 어디로든 나아갈 것이다.

내 앞에 길이 보이지 않으면 나의 길을 스스로 만들며 걸어갈 것이다.

또 누가 아랴?

이미 남들 다 지나간 먼발치에서 한 발자국 한 발자국 터덜터덜 걸어가다 보면 또 다른 행운과 맞닥뜨리게 될는지를.

 

아무리 생각해봐도 참 고맙고도 신기하다.

『계로록(戒老録)』을 번역한 나의 첫 번역서『나는 이렇게 나이들고 싶다』는 십여 년간 30쇄 이상을 거듭하며 지금도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으니 말이다.

 

기적처럼 이 세상을 살다 떠나가신 아버지, 그리고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외롭고 힘들게 치매로 투병하다 아버지 곁으로 떠나신 어머니, 나는 언제까지고 이분들을 잊을 수는 없다.

꿈과 희망을 등에 지고 걸어가는 인생의 여행길에서 오늘처럼 좋은 일이 있을 때면 가장 먼저 달려가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은 이들이다.

 

불어로 행복(le bonheur)이란 기분 좋은 한 시간 (bonne heure)을 의미한다고 한다.

하루 24시간 중 23시간이 즐겁지 않았어도 단 한 시간만이라도 즐겁고 기분 좋게 보냈다면

오늘 하루는 행복한 날이 아닐까?

 

Posted by 오경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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