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는 논문으로 말한다?
근래 들어 대학에는 시간강사란 명칭이 점차 사라지면서 겸임교수, 객원교수, 초빙교수, 연구교수, 강의전담교수, 연구전담교수, 산학협력 전담교수 등으로 바뀌는 추세다.
대학 시간강사 임용은 대개 교수 개개인의 친분이나 교수추천이나 소개, 지도교수 연구실 내 선후배 기수별 등 딱히 정해진 기준 없이 알음알음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혹은 박사를 졸업하면 학과에서 일정 기간 일률적으로 강의를 배정해주는 대학도 있다. 내 경우도 학위 취득 후 3년간 일본어 교양과목과 전공과목 강의를 자동 배정받았다.
그러나 이런 제도도 10년 전 얘기고 요즘은 학교마다 학과마다 차이는 있겠으나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 2018년 기준 전국의 시간강사 수는 약 7만6000명 정도다. 2012년에 약 11만 명 정도였던 시간강사 수는 해마다 1만 명씩 줄어들었는데 2018년 약 7만6000명 통계는 2012년 대비 31% 줄어든 수치다. 감소 이유는 시간강사법 제정 등으로 법이 시행될 줄 알고 대학들이 미리 강사를 대거 줄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2019년 8월 시간강사법이 시행되면 전임 교수 강의는 늘리고, 수강생 적은 강의는 합치고 시간강사를 대량 해고할 움직임마저 있어 대학가는 시간강사 문제로 큰 요동칠 듯싶다. 대학 재정난 때문이다. <시간강사법의 역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1/13/2018111300784.html)>
대학 일어일문학과를 예로 들면 최근 국내외 박사학위 취득자는 증가했는데 대학에서 일어일문학을 전공하거나 제2외국어로 선택하는 학생 수는 점차 줄어드는 추세다. 시간강사법 시행 이전인데도 대학 시간강사 수는 이미 반 이하로 줄었다.
그래서 앞으로는 시간강사 임용도 강의평가, 논문 편수, 저역서 실적, 학술활동 업적, 취업성과, 학과 및 학교발전 기여도, 산학협력 실적 등을 반영하며 공채로 선발하고 연봉제로 간다는 둥 설이 분분하다.
우리나라 대학에서 거의 모든 분야의 학문은 오로지 논문으로 평가받고 논문심사에 통과해야 박사학위를 받는다. 박사를 취득하면 해당 분야 전문가처럼 인식된다. 즉 ‘박사학위=전문가인증서’ 격이다. 우리나라에서 대학교수가 되려면 전공불문 거의 백 프로 박사 학위가 있어야 한다.
가수는 노래실력으로 인정받고 화가는 그림실력으로 평가받는 게 마땅하지만 노래실력이 뛰어난 가수가 후학양성을 위해 대학교수가 되려면 반드시 논문을 써야 한다. 실력과 재능 있는 화가도 마찬가지다. 대학에 몸담으려면 박사논문이 필수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대학이 이렇다.
탁월한 실력으로 대중으로부터 이미 그 분야 전문성을 인정받고 있는 가수나 화가나 연주가나 장인도 박사학위가 없으면 대부분의 대학에서는 해당 분야 전문가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 우리 대학의 실정(현실)이다.
일반 학회투고 연구논문 한 편을 쓰는 데도 짧게 잡아도 대략 6개월 정도 걸리는 판인데(내 경우는 그렇다) 박사논문을 쓴다는 건 하던 모든 일 다 제쳐두고 몇 년간을 오직 논문에만 올인해야 하는 결단과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된다. 결코 만만한 작업이 아니다.
마음만 앞서고 요령을 부리다가는 자칫 표절, 자기복제, 중복게제, 논문철회 등 논문 관련 불미스러운 문제에 휘말리곤 한다. 그럴 바엔 차라리 안 쓰느니만 못하다.
어쨌든 교수임용에 최우선 필수 요건은 단연 논문편수와 저역서 편수다.
그러나 아무리 수준 높은 논문을 많이 써서 국내외 저명 학술지에 게재되었다 쳐도 5년이 지난 논문은 전혀 별 볼일이 없다. 한 마디로 5년이 지난 논문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대개 대학교수 임용에 지원한다거나 연구재단에 연구 과제를 지원하는 경우 지원당시를 기준으로 ‘5년 이내의 논문과 저역서 편수 및 특허’만을 업적으로 인정한다. 이들만을 점수로 환산해 연구업적 점수를 매기고 업적 평가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한국연구재단에서 연구자 연구업적을 산정하는 방식은 이렇다.
▪ 업적산정기간: 2014년 1월 1일부터 신청 마감일 현재까지
(신청 마감일이 2019년 1월 1일인 경우)
▪ 논문: 한국연구재단 등재학술지・등재후보학술지 또는 SCI(E), A&HCI・SSCI, SCOPUS
등재지에 게재된 논문은 업적 1편
※ 공동저자(공동저자 수와 무관)로 참여한 논문도 업적으로 산정 가능
▪ 저서・역서: 단독 저작 1건은 업적 3편, 공동 저작 1건은 업적 2편
▪ 특허: 특허 1건은 업적 1편
분야 불문 논문의 질적 수준보다 논문 편수로 학술활동 실적점수를 매기고 논문실적 양이 교수임용 평가에 최우선되는 학계 분위기는 한 번쯤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박사취득 후 반드시 대학교수가 되고 말겠다는 요량이라면 임용 전까지는 계속 논문을 쓸 수밖에 없다. 밥 먹고 논문만 써야한다는 얘기다.
대단한 논문은커녕 허접한 논문 한 편 쓰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논문을 쓰려면 전공분야나 논문주제에 따라 다르겠지만 우선 주제관련 실험을 하거나 앙케이트 조사도 필요하고, 일정기간의 통계수치 자료나 데이터분석이 필요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주제관련 기존 선행연구도 다 읽어내야 한다. 내 경우는 주로 ‘일한 번역의 이론과 실제’ 관련 연구라 원문과 번역문을 일일이 대조해가면서 용례를 고찰, 입력, 분석하고 데이터베이스화 작업을 해야 한다. 논문 쓰기 전 이러한 기초 작업만도 짧게는 2~3달에서 길게는 몇 년이 걸리기도 한다. 기초 작업이 완성되면 본격적으로 논문을 쓴다.
내 경우 논문작성에 평균 1~2달 걸린다. 논문작성이 다 끝났어도 학회에 발표도 하고 학회지에 투고하여 심사위원 2~3인의 심사를 받고 통과해야 학회지 게재가 확정되고 학회지에 실린다. 그 과정도 1달 이상 길게는 2달이 소요된다. 그런데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다. 내 논문이 실린 학회지가 한국연구재단 ‘등재학술지 및 등재후보학술지‘인지 ‘미등재학회지’인지에 따라 실적평가가 다르다. ‘미등재학회지’에 실린 논문은 논문편수로 인정해주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게다가 번역서 경우는 연구업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번역서는 전문학술서 번역서만 그것도 부분적으로 업적으로 인정하고 오히려 대중들이 많이 읽는 외국 교양서적, 문학서적, 문화서적, 자기계발서적 등은 학술실적은커녕 기입란조차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
교수와 강사, 연구자가 널리 이용하며 취업 및 임용정보도 알 수 있는 포털사이트 ‘하이브레인넷(hibrain.net)’ 대화방에 번역과 관련된 글이 올라온 적이 있다. (12.11.28)
《“학술번역서는 왜 교수임용에 홀시되고 있는지 안타깝다
한 권의 학술번역서를 출판하기 위해서는 통상 2~3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한 권의 저서나 역서를 내기 위해 백 권 이상의 다른 분의 번역서나 연구서를 읽고 있다. 학술번역서가 학술논문보다 몇 배의 공력이 들어간다.
…(중략)…
그런데 지금껏 교수 임용에는 학술번역서가 대다수 홀시되고 있다. 아니 아예 쓰는 난이 없는 경우도 있다. 독자가 100명도 안 되는 논문이 더욱 중요시된다.”》
번역하는 사람으로서 번역작업 및 번역서에 대한 학계의 인식은 개선되어야 마땅하고 심도 있는 논의도 필요하다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의견을 내지만 이 문제에 적극 나서는 사람은 거의 없다.
다시 논문작업으로 돌아와서 아무튼 인문학 논문 1편 실적을 올리려면 학회지 게재완료까지 아무리 빨리 부지런히 써도 꼬박 6개월 정도 걸리는 셈이다.
움베르토 에코는『논문 잘 쓰는 법』에서 “무엇에 대해 논문을 쓴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 미처 보지 못한 것을 내가 볼 수 있는가 내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제대로 된 논문 하나 쓰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논문실적이 많다고 교수임용을 보장받는 것 또한 아니다.
전공분야 실력과 강의능력도 인정받으며 전문분야 영역을 뛰어넘어 폭넓은 교양까지 겸비한 연구자들도 많고 논문 실적을 꾸준히 내면서도 미래를 불안해하는 박사들 역시 수두룩하다. 이들 중엔 정기적 의무적으로 세상에 내놓아야 하는 학술논문 생산 작업이 도저히 적성에 맞지 않아 교수임용에 목을 매느니 차라리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가는 자유로운 실력파 학자들도 내 주변엔 꽤 있다.
그러나 연구에 게으르지 않고 전문분야 경쟁력을 쌓아가면서 묵묵히 제 할 일을 하며 성실하게 살아가는 이들을 세상은 알아보게 되어있다. 어느 분야에서나 겸손과 실력과 공부가 가장 큰 경쟁력이다.
대개 이런 사람들은 교수든 뭐든 적기(適期)를 만나면 열심히 잘할 이들이다. 끊임없이 연구하고 대중과 소통하면서 사회를 향해 쓴 소리를 마다않는 이러한 학자들이 많아야 학계가 발전하고 사회도 건강하다. 학계 쪽에서는 간혹 경계와 배타의 대상이 되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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