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박수를 치는 게 박수 받는 것보다 기분이 더 좋다.

박수를 받아본 사람은 안다.

박수 받는 순간의 감격과 고마움과 쾌감과 불끈 솟아오르는 인생 승리와도 같은 자신감의 무게가 얼마나 크고 값진 것인지를.


예전엔 안 그랬다.

그러나 지금은 그 사람이 대단해서도 아니고, 나보다 훨씬 유능하고 훌륭해서도 아니다.

선배든 후배든 스승이든 제자든 겸손하고 진솔한 말 한마디 한마디에, 행동거지 하나하나에 그 사람의 지나온 나날들이 어느 순간 감동으로 파고들어올 때가 있다.

그럴 땐 몸과 마음이 저절로 움직여 박수를 치지 않을 수가 없다.


나는 공연장 같은 데서 여럿이 박수를 칠 때에도 가급적 맨 먼저 박수를 치고 맨 나중까지 열심히 박수를 치는 것을 좋아한다. 박수 받는 사람의 행복한 모습과 마음이 내게 그대로 전달돼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가끔 TV에서도 별 일이 아닌데도 유난히 크게 오래도록 박수를 치는 사람이 있다. 대개 그런 사람은 욕심 없고 순하고 편안한 얼굴을 하고 있어 참 멋있어 보인다.

그런 멋진 사람들은 유심히 보게 된다. 나도 언젠간 그런 멋진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에.


올 여름 오래된 주택 신축 문제와 관련해 건축사와 상담예약을 해볼까 해서 구청 홈페이지에 들어가 이런 저런 게시물을 보다가 ‘인문학 아카데미 수강생 모집’이라는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매주 수요일 오후 2시부터 총 6회로 기획된 [인문학에서 찾는 자아성찰]이란 테마로 대중에게 낯익은 인사나 대학교수들로 구성된 구민 대상 인문학강의였다.


마침 이번 학기는 수요일에 강의가 없기도 하거니와 ‘재미있고 얻어가는 것도 많은 윈윈 강의법’에 대해 늘 고민을 해오던 터라 건축 상담은 제쳐두고 일단 전화로 수강신청을 했다.


최근 대학뿐 아니라 매스컴, 지역문화센터, 신문사, 대형서점, 출판사 등 이 곳 저 곳에서 ‘인문학 콘서트’니 ‘인문학 토크쇼’니 하면서 인문학강좌 붐이 조성되며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인문학강사 스타탄생의 조짐도 보인다.


아니나 다를까 역시 예상대로 이미 수강자 인원이 다 차 대기수강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그러곤 한 동안 잊고 있었는데 강의 시작 하루 전 구청 교육과로부터 수강을 희망한다면 가능하다는 연락을 받았다.

6회 강의 참가비 만원, 참 알뜰하고 실속 있게 색다른 시간을 보내리라 기대하면서 강의비를 바로 입금했다.


그러고 보니 남들보다 한참 늦은 나이인 2008년 2월 박사학위를 받고난 후 6년 동안은 줄곧 강의만 해왔지 내가 강의를 듣거나 수강생이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이 역시 오랜만에 학생으로 돌아가고 싶은 한 가지 작은 설렘이 더해졌다고나 할까.


아무튼 내가 사는 동네 구청에서 구민들의 교양과 인문학 상식을 위해 적지 않은 돈을 들여 애써 마련했을 고품격 취지에 적극 동참한다는 의미도 있거니와 어제와는 다른 색다른 만남에 대한 자그마한 기대를 안고 기분 좋게 드디어 첫 강의가 시작 전 난 맨 앞자리에 일찌감치 자리 잡았다.


인문학 첫 강의 강사는 꽤나 이름이 알려진 분이기에 내심 기대도 컸다.

그러나 첫 인문학 강의에 대한 감상평, 짧게 결론부터 말하면 어이없음을 넘어 대실망.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그 말을 절감한 날이다.


그날 두 시간여 정도 이어진 강의 내내 그는 자신의 이야기 한 대목 한 대목이 끝날 때마다 열심히들 박수를 치라고 거의 강요 수준의 멘트를 했다. 강의가 끝나면 그동안 자신이 지은 책들을 박수를 열심히 친 이들에게 선물하겠노라며 강의 중간 중간 강조하더니만, 그것도 기립박수를 친 사람들에게, 게다가 기립박수를 가장 먼저 친 순서대로 나눠주겠노라고 서너 번씩이나 각인을 시켰다.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허탈했다.

첫 날 첫 강의 그 유명하다는 강사가 소리 높여 전하고자 한 메시지는 가물가물한데 자신에게 기립박수를 치라던 쩌렁쩌렁한 울림만 남아 지금 생각해봐도 착잡하고 씁쓸하다.


어떤 면에서는 제 발로 찾아가지 않고서는 접하기 어려운 인생 공부를 면전에서 생생하게 한 탓에 내 생애 첫 경험인 구청 인문학 첫 강의는 이런저런 의미에서 두고두고 잊지 못할 듯싶다.


내 마음속에 사랑과 신뢰와 감동이 넘쳐나야 뜨거운 박수를 치게 되고, 박수치는 이러한 귀하고 순수한 마음이 부메랑이 되어 마침내 나 자신도 사랑받고 감동을 안겨주는 이로 태어나는 것이라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살아오면서 나는 많은 사람에게 축하와 응원의 박수를 건네며 살아왔다.

생각해보면 참 많은 날들을 내 일처럼 박수치며 축하하며 격려하며 흐뭇하게 살아왔다.

나도 언젠가 그들처럼 뜨거운 축하와 격려의 박수를 받을 그날을 그리워하면서.


그러다 아주 가끔은 박수 받는 주인공이 오늘은 나였으면 싶을 때도 없지는 않지만…

변함없이 열정적인 아름다운 이들에게 힘찬 마음의 박수를 보내며 나도 그들처럼 묵묵히 나의 길을 가리라

다짐해본다.

(2014.12.25)

Posted by 오경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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