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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11.02 인생의 3대 불행…청춘성공에 대한 단상

흔히들 청춘성공 중년상처 노년가난을 인생의 3대 불행으로 꼽는다.

나는 매 학기 개강을 하고 학생들과 처음 대면할 때마다 어김없이 이 이야기를 꺼낸다.


요 몇 년 전부터인가 고등학생 CEO로 남다른 사업수완을 발휘하며 성공가도를 달린다거나 대학재학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내며 전문가 뺨치는 실력과 재능을 뽐내는 이들도 적지 않아 여기저기 방송매체에서 그들의 성공스토리를 듣게 되는 경우도 더러 있다.


삼포세대를 넘어 이른바 N포세대라는 현실 속에서 푸르디푸른 젊은 친구들에게 ‘청춘성공’이 인생의 3대 불행 중 하나라 하면 과연 몇 명이나 귀를 기울이며 수긍하고 공감을 할지 먼저 학생들의 눈빛을 살피게 되고 조심스러워지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중년상처 노년가난에 대해서는 대체로 받아들이는 눈치다.


예전에 내가 열심히 찾아보던 소위 꽂힌 TV 프로그램이 하나 있었다. 슈퍼스타K6이다.

보는 이 듣는 이의 취향이 다들 다르겠지만 10여 년 동안 무명가수로 클럽에서 노래하는 김필이라는 가수 때문에 금요일 밤11시부터 새벽 1시 넘어 까지 이어지는 무려 2시간 반 이상을 TV 앞에 꼼짝 않고 앉아있었다.


생방송 4회가 끝나고 탑파이브가 생존한 상태에서 앞으로 남은 경연에서 최종우승할지 어떨지 알 순 없지만 3주 연속 최고점에다 심사위원의 극찬을 이끌어내며 네티즌들의 열띤 응원과 찬사를 한 몸에 받고 있던 김필에게 그날의 인생반전은 최종우승 이상의 의미이리라.


2회 경연을 마치고 인기투표 1위의 소감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과분해하며 언뜻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김필이 꺼낸 첫 마디는 “난 여태껏 음악을 해오면서 단 한 번도 인정받거나 칭찬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였다.

4회 경연 노래 시작 직전에도 “스무 살 때 노래를 시작하였는데 성대결절도 오고 괴롭고 힘든 일이 참 많았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그러한 시련들 덕분에 오히려 새로운 소리를 갖게 되었고 또 많은 것을 표현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지 않았나 싶다며 모든 것을 다 내려놓았을 때 드디어 슈퍼스타K6 참가 기회가 주어지면서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었다."고 고백한 그였다.


짧지 않은 10여 년간 무명가수라는 무관심과 주위의 차가운 시선 속에서 주눅이 들었을 법도한데 기죽지 않고 끊임없는 연습과 자기관리로 자신만의 오기의 칼날을 갈았으리란 그간의 사정은 짐작이 가고도 남을만했다.

그렇다. 그에게 ‘청춘성공’이라는 불행이 피해갔기에 남들보다 좀 더디긴 하지만 몇 십 배 더 강력하고도 진한 멋진 인생이 펼쳐지리라 기대하며 격려해주고 싶었다. 편안하게, 쉽게는 얻어지지 않은 인생이고 노래이기에 그만한 감동의 두께가 얹어져 강한 울림으로 전해지지 않았을까.


누구든 과거에 실패한 경험이나 불행한 기억이 많으면 많을수록 자신만의 내일의 발판을 다지고 단단히 하는 비료로써 철저하게 승화시킬 수 있는 저력이 훨씬 강해진다. 이런 저런 좌절과 불운의 시간을 보내면서 몸 구석구석에 배인 자생력이 훗날 어떠한 일이나 상황에도 잘 적응하고 견딜 수 있게 하는 값진 재산이 된다.


청춘시절 갖은 실패와 좌절을 경험했다고 해서 누구나가 다 성공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훗날 성공한 이들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지만, 그들 대부분은 청춘시절 쓰라린 실패와 불운과 혹독한 시행착오를 딛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와 기회를 얻었다는 것만은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유도의 기본은 낙법(落法)이다.

수없이 메치기를 당하며 나가떨어지고 넘어지면서 내 몸을 다치지 않게 안전하게 보호하며 넘어지는 유도의 기본기는 오직 낙법으로 익힐 수가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김필 또래의 청춘들은 나가떨어지고 넘어지고 구르지 않고는 터득할 수 없는 인생의 기본기를 크고 작은 실패와 도전을 반복하면서 결코 물러서지 않았던 오기 덕분에 배웠을 것이다.

여전히 도전하고 싶은 목표와 도전할 수 있는 꿈들을 가능케 한 ‘불합격’과 ‘실패’이니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할 수밖에.


인생은 끝까지 다 살아봐야 안다.

아니 끝이 아름다운 인생이 멋진 삶이고 빛나는 인생이다.

애써 내 손에 넣은 것은 손에 넣는 순간부터 잃어버릴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그래서 남보다 이른 성공은 유혹도 많고 약발도 짧다.

갖은 실패와 좌절과 물러설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서의 처절한 몸부림으로 다져진 내성과 맷집이 두텁게 생겨야 사람도 노래도 인생도 끄떡없이 오래가고 길게 간다.


합격이나 성공이란 것과는 별 인연도 없이 지금도 한창 낙법 연습 중인 청춘들은 ‘청춘성공’이라는 불행이 찾아오지 않은 것에 대해, 그리하여 잃어버릴 것도 없어 미련 없이 툭툭 털고 다시 새로운 길을 찾아 떠날 수 있기에 감사하고 또 감사할 일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또 다른 새로운 꿈을 꿀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하고 가치 있는 일인가.

 (2014. 11. 1.)

Posted by 오경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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