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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1.24 Slow Starter(늦깎이)의 유쾌한 첫 번째 도전, 자전거타기

좌충우돌 일본 생활 분투기


1991년 10월 드디어 도쿄 나카노구(中野区)에 있는 작고 아담한 신축맨션에 우리 네 식구의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그때 큰 딸아이가 6살, 작은 아이는 3살이었다. 큰 아이는 한국에서 유치원을 다니다 왔고 아들아이는 아직 유치원 입학 전으로 한참 손이 가는 개구쟁이에 청개구리 저리가라였다.


남편은 일본에 오기 전 한국 본사에서 새벽 시간에 5개월 정도 일본어를 배우며 나름 준비를 했다. 남편도 대학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하였고 일본어 공부는 처음이었지만 그나마 5개월 정도 공부한 것이 실전에 약간은 도움이 되었다. 꿀 먹은 벙어리격인 우리 셋에 비하면 남편은 그런대로 익힌 그 알량한 일본어 구사에다 중간 중간 바디랭기지를 섞어가면서 안쓰럽긴 해도 의사소통을 간신히 이어가며 하루하루 먹고사는 일상생활에 큰 불편은 없어보였다.


문제는 나와 우리 아이들의 일본어였다. 나는 일본에 오기 직전까지 고등학교 교사 생활을 했으니 일본어나 일본생활에 준비할 시간이 거의 없었고 뭐 어떻게 되겠지 하는 배짱으로 일본에 날아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일본어 왕기초인 ‘아이우에오’조차 모르며 일본에서 살아보겠다고 무턱대고 일본 생활에 뛰어들었으니… 그런 용기와 배짱이 어디서 나왔는지 모르겠다. 일본어가 정 안 되면 영어로 하면 되겠지 하는 믿는 구석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렇지.


그 당시만 해도 도쿄 나카노구(中野区) 우리 집 근처에는 한국인이 거의 살지 않았고 근처 유치원이나 소학교(초등학교)에 다니는 한국인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일본이란 나라가 아무리 가깝다 해도 타국은 타국이다. 생전 처음 생활하게 되는 낯선 이국땅에서 일본어 한 마디 할 줄 모르고 의지할 곳도 없고 여차하는 순간 도움을 청할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 더욱 불안하고 초조했지만 내 앞에 길이 없으면 내가 만드는 수밖엔 별 뾰족한 대안이 없었다.


일본에 정착한 다음날 내가 제일 먼저 시도한 것은 자전거타기였다. 저녁에 집 뒤 공터에서 난생처음 자전거 타는 연습을 하며 몇 번을 넘어졌는지도 모른다.

인생은 자전거 타기와 같아서 계속 페달을 밟으면 넘어지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생전 처음 타보는 완전 초보자가 넘어지지 않고 자전거를 배운다는 게 어디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인가?


자전거를 탈 줄 모르면 일단 일본생활 특히 도쿄생활은 낭패 보기 십상이다. 슈퍼에서 들고 올 수 없는 무거운 물건을 사도 우리나라처럼 배달이란 게 없다. 집 옆에 바로 유치원이 붙어있다면 모를까 아이들을 유치원에 데려다 줄 때도 자전거에 태우고 가야한다. 큰 아이를 집에서 걸어서 30분 거리에 있는 구립유치원에 입학시켰는데 언제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는 세 살짜리 작은 아이를 집에 혼자 놔두고 큰 아이만 데리고 왕복 한 시간쯤 걸리는 유치원을 걸려서 데려가고 데려오는 것은 일단 무리였다.


도쿄생활을 시작하면서 큰 아이 유치원 등하교시키기가 내게 주어진 힘들고 부담스러운 첫 미션이었다.

공교롭게도 그 해 도쿄는 늦가을 10월, 11월인데도 왜 그리 가을비가 추적추적 자주 많이도 내렸는지…아침에 눈을 뜨면 하루가 멀다 하고 비가 내렸다. 비오는 날에는 자전거 앞뒤에 아이 둘을 태우고 한쪽 손으론 우산을 받쳐 들고 또 한쪽 손으론 핸들을 잡고 정신 바짝 차리고 부지런히 페달을 밟아댔다. 거의 곡예 수준이었다. 지금 생각해봐도 아찔한 순간들이 참 많았는데 이렇다 할 사고 한 번 안 난 게 천만다행이었다. 그 당시는 나뿐만 아니라 내 또래 일본인 엄마들도 아이들 유치원 등하교뿐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서 웬만한 거리는 거의 자전거로 시작해 자전거로 끝냈다. 자전거 없이는 불편한 정도가 아니라 도쿄에서는 일상생활 자체가 거의 어렵다고 보면 된다.


몇 년 후 들은 얘기지만 자전거를 탈 줄도 모르고 배우지도 않은데다가 일본어도 서툰 한국인 지인이 백화점 바겐세일에서 이것저것 물건과 식품류를 잔뜩 사서 들고 나왔단다. 백화점에서 불과 5분 거리에 있는 전철역까지 걸어가야 하는데 싸게 산 물건들이 너무 무거워 도저히 들고 갈 수가 없어서 가면서 중간 중간에 산 물건들을 하나 둘씩 버리면서 돌아왔단다. 아까워도 할 수 없는 일, 자전거가 없어서 벌어진 대놓고 웃지 못 할 해프닝으로 끝나고 말았다. 물건 값보다 택시비가 비쌌든지 아니면 택시 잡아탈 일본어실력이 안 되었든지 둘 중 하나이리라. 그래도 그 친구는 끝끝내 자전거를 배우지 않았지만 일본생활을 떠올리면 자전거 얘기부터 꺼내는 것을 보면 그 이후에도 자전거를 둘러싼 이런저런 유감이 참 많았던 모양이다.


애나 어른이나 살아가는 데 필요하다고 절실하게 느끼게 되면 다소 준비가 미흡하더라도 막상 닥치게 되면 무슨 일이든 다 하게 마련인가 보다.

처음 자전거를 배우면서 또 일본어를 더듬더듬 배우기 시작하면서 온몸으로 절절히 체험한 사실 하나.


살아간다는 것은 테크닉이 아니라 실천이다.

실제로 해보면서 끊임없이 연습하고 반복하며 내 몸 안에 긍정의 습관을 키우고 내공을 쌓아가는 거다.


일본어 한 마디 할 줄 몰랐던 큰아이는 유치원에 입학한 후 차츰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놀라울 정도로 일본생활에 빠르게 적응해갔고 일본어도 하루가 다르게 나아지고 늘어갔다. 한 3개월 정도 지난 무렵부터는 친구들과 놀며 대화하는 데 그다지 불편함이 없어보였고 자기 의사를 분명하고도 자유롭게 주고받는 수준까지 도달했다.

아이들은 빨리 배우고 빨리 잊어버린다지만 역시 맞는 말이다. 내 눈으로 실감했다.

아이들의 일본어 걱정은 기우였다.

우리 집에서 내 일본어가 가장 큰 걱정거리로 대두되는 데는 3개월도 채 걸리지 않았다.


일본 한가운데서 일본인들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으려면 무엇보다 일본어가 필수였다. 당장 어디 한군데라도 아프면 병원에부터 가야하고 유치원 보호자 모임도 한 달에 두 번씩이나 있었다. 일본어를 잘 모른다고 짧은 영어지만 나만 영어로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급한대로 상투적인 일본어 몇 마디라도 달달 외어서라도 해야 하는 시급한 상황이었다.


가뜩이나 우왕좌왕, 좌충우돌하며 정신을 못 차리는 와중에 내가 지고 가야 할 일본어 스트레스라는 묵직한 짐 또 하나가 내 등에 얹어졌다.


외국을 여행하는 것과 외국에서 실제 살면서 생활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외국을 모르고는 고국을 모르듯 외국생활에서 훨씬 더 많이 자신을 살피게 되고 전혀 몰랐던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


내게도 그랬다.

새로운 언어공부는 새로운 자아성찰이며 새로운 도전이었다.

내 나이 서른셋에 시작한 일본어 공부라는 새로운 도전은 두려움보다는 해볼 만한 설렘으로 점점 벅차올랐다.

떠나오지 않았다면 결코 맛보지 못할 ‘Slow Starter(늦깎이)의 유쾌한 도전’, 일본 생활 좌충우돌 분투기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2015.1.24)


Posted by 오경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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