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일본 생활 분투기
1991년 10월 드디어 도쿄 나카노구(中野区)에 있는 작고 아담한 신축맨션에 우리 네 식구의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그때 큰 딸아이가 6살, 작은 아이는 3살이었다. 큰 아이는 한국에서 유치원을 다니다 왔고 아들아이는 아직 유치원 입학 전으로 한참 손이 가는 개구쟁이에 청개구리 저리가라였다.
남편은 일본에 오기 전 한국 본사에서 새벽 시간에 5개월 정도 일본어를 배우며 나름 준비를 했다. 남편도 대학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하였고 일본어 공부는 처음이었지만 그나마 5개월 정도 공부한 것이 실전에 약간은 도움이 되었다. 꿀 먹은 벙어리격인 우리 셋에 비하면 남편은 그런대로 익힌 그 알량한 일본어 구사에다 중간 중간 바디랭기지를 섞어가면서 안쓰럽긴 해도 의사소통을 간신히 이어가며 하루하루 먹고사는 일상생활에 큰 불편은 없어보였다.
문제는 나와 우리 아이들의 일본어였다. 나는 일본에 오기 직전까지 고등학교 교사 생활을 했으니 일본어나 일본생활에 준비할 시간이 거의 없었고 뭐 어떻게 되겠지 하는 배짱으로 일본에 날아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일본어 왕기초인 ‘아이우에오’조차 모르며 일본에서 살아보겠다고 무턱대고 일본 생활에 뛰어들었으니… 그런 용기와 배짱이 어디서 나왔는지 모르겠다. 일본어가 정 안 되면 영어로 하면 되겠지 하는 믿는 구석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렇지.
그 당시만 해도 도쿄 나카노구(中野区) 우리 집 근처에는 한국인이 거의 살지 않았고 근처 유치원이나 소학교(초등학교)에 다니는 한국인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일본이란 나라가 아무리 가깝다 해도 타국은 타국이다. 생전 처음 생활하게 되는 낯선 이국땅에서 일본어 한 마디 할 줄 모르고 의지할 곳도 없고 여차하는 순간 도움을 청할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 더욱 불안하고 초조했지만 내 앞에 길이 없으면 내가 만드는 수밖엔 별 뾰족한 대안이 없었다.
일본에 정착한 다음날 내가 제일 먼저 시도한 것은 자전거타기였다. 저녁에 집 뒤 공터에서 난생처음 자전거 타는 연습을 하며 몇 번을 넘어졌는지도 모른다.
인생은 자전거 타기와 같아서 계속 페달을 밟으면 넘어지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생전 처음 타보는 완전 초보자가 넘어지지 않고 자전거를 배운다는 게 어디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인가?
자전거를 탈 줄 모르면 일단 일본생활 특히 도쿄생활은 낭패 보기 십상이다. 슈퍼에서 들고 올 수 없는 무거운 물건을 사도 우리나라처럼 배달이란 게 없다. 집 옆에 바로 유치원이 붙어있다면 모를까 아이들을 유치원에 데려다 줄 때도 자전거에 태우고 가야한다. 큰 아이를 집에서 걸어서 30분 거리에 있는 구립유치원에 입학시켰는데 언제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는 세 살짜리 작은 아이를 집에 혼자 놔두고 큰 아이만 데리고 왕복 한 시간쯤 걸리는 유치원을 걸려서 데려가고 데려오는 것은 일단 무리였다.
도쿄생활을 시작하면서 큰 아이 유치원 등하교시키기가 내게 주어진 힘들고 부담스러운 첫 미션이었다.
공교롭게도 그 해 도쿄는 늦가을 10월, 11월인데도 왜 그리 가을비가 추적추적 자주 많이도 내렸는지…아침에 눈을 뜨면 하루가 멀다 하고 비가 내렸다. 비오는 날에는 자전거 앞뒤에 아이 둘을 태우고 한쪽 손으론 우산을 받쳐 들고 또 한쪽 손으론 핸들을 잡고 정신 바짝 차리고 부지런히 페달을 밟아댔다. 거의 곡예 수준이었다. 지금 생각해봐도 아찔한 순간들이 참 많았는데 이렇다 할 사고 한 번 안 난 게 천만다행이었다. 그 당시는 나뿐만 아니라 내 또래 일본인 엄마들도 아이들 유치원 등하교뿐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서 웬만한 거리는 거의 자전거로 시작해 자전거로 끝냈다. 자전거 없이는 불편한 정도가 아니라 도쿄에서는 일상생활 자체가 거의 어렵다고 보면 된다.
몇 년 후 들은 얘기지만 자전거를 탈 줄도 모르고 배우지도 않은데다가 일본어도 서툰 한국인 지인이 백화점 바겐세일에서 이것저것 물건과 식품류를 잔뜩 사서 들고 나왔단다. 백화점에서 불과 5분 거리에 있는 전철역까지 걸어가야 하는데 싸게 산 물건들이 너무 무거워 도저히 들고 갈 수가 없어서 가면서 중간 중간에 산 물건들을 하나 둘씩 버리면서 돌아왔단다. 아까워도 할 수 없는 일, 자전거가 없어서 벌어진 대놓고 웃지 못 할 해프닝으로 끝나고 말았다. 물건 값보다 택시비가 비쌌든지 아니면 택시 잡아탈 일본어실력이 안 되었든지 둘 중 하나이리라. 그래도 그 친구는 끝끝내 자전거를 배우지 않았지만 일본생활을 떠올리면 자전거 얘기부터 꺼내는 것을 보면 그 이후에도 자전거를 둘러싼 이런저런 유감이 참 많았던 모양이다.
애나 어른이나 살아가는 데 필요하다고 절실하게 느끼게 되면 다소 준비가 미흡하더라도 막상 닥치게 되면 무슨 일이든 다 하게 마련인가 보다.
처음 자전거를 배우면서 또 일본어를 더듬더듬 배우기 시작하면서 온몸으로 절절히 체험한 사실 하나.
살아간다는 것은 테크닉이 아니라 실천이다.
실제로 해보면서 끊임없이 연습하고 반복하며 내 몸 안에 긍정의 습관을 키우고 내공을 쌓아가는 거다.
일본어 한 마디 할 줄 몰랐던 큰아이는 유치원에 입학한 후 차츰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놀라울 정도로 일본생활에 빠르게 적응해갔고 일본어도 하루가 다르게 나아지고 늘어갔다. 한 3개월 정도 지난 무렵부터는 친구들과 놀며 대화하는 데 그다지 불편함이 없어보였고 자기 의사를 분명하고도 자유롭게 주고받는 수준까지 도달했다.
아이들은 빨리 배우고 빨리 잊어버린다지만 역시 맞는 말이다. 내 눈으로 실감했다.
아이들의 일본어 걱정은 기우였다.
우리 집에서 내 일본어가 가장 큰 걱정거리로 대두되는 데는 3개월도 채 걸리지 않았다.
일본 한가운데서 일본인들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으려면 무엇보다 일본어가 필수였다. 당장 어디 한군데라도 아프면 병원에부터 가야하고 유치원 보호자 모임도 한 달에 두 번씩이나 있었다. 일본어를 잘 모른다고 짧은 영어지만 나만 영어로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급한대로 상투적인 일본어 몇 마디라도 달달 외어서라도 해야 하는 시급한 상황이었다.
가뜩이나 우왕좌왕, 좌충우돌하며 정신을 못 차리는 와중에 내가 지고 가야 할 일본어 스트레스라는 묵직한 짐 또 하나가 내 등에 얹어졌다.
외국을 여행하는 것과 외국에서 실제 살면서 생활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외국을 모르고는 고국을 모르듯 외국생활에서 훨씬 더 많이 자신을 살피게 되고 전혀 몰랐던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
내게도 그랬다.
새로운 언어공부는 새로운 자아성찰이며 새로운 도전이었다.
내 나이 서른셋에 시작한 일본어 공부라는 새로운 도전은 두려움보다는 해볼 만한 설렘으로 점점 벅차올랐다.
떠나오지 않았다면 결코 맛보지 못할 ‘Slow Starter(늦깎이)의 유쾌한 도전’, 일본 생활 좌충우돌 분투기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2015.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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