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어 공부 시작은 유치원 연락장


일본에 온지 6개월이 지난 후 큰 아이는 구립유치원을 졸업하고 집 근처 도노야마소학교(塔山小学校)에 입학했고 작은 아이는 집 맞은편 골목 안쪽에 있는 자그마한 우에노하라(上ノ原) 교회 유치원에 입학했다.


작은 아이가 들어간 사립유치원은 4살 참새반, 5살 토끼반, 6살 기린반 이렇게 세 반이 있었는데 그 중 작은 아이는 나이가 제일 어려 일단 참새반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런데 최연소반인 참새반은 9시 반에 시작해서 11시 반에 끝났다. 유치원에서 지내는 시간은 달랑 2시간인데 유치원에 보내려고 아침에 깨우고 씻기고 먹이고 입히고 준비하느라 난리법석을 치르며 헐레벌떡 유치원에 자전거로 데려다주고 집에 돌아와 한 숨 돌리며 겨우 차 한 잔 마시고 나면 다시 데리러 가야할 시간이 되었다.

고만고만한 아이 둘을 데리고 낯선 땅에서 생활하면서 본격적으로 일본어 공부를 시작하기란 생각만큼 그리 쉽지 않았다.


일본어 공부를 위해 나만의 오롯한 시간을 갖는다는 게 일단 무리였다. 아이들 삼시세끼도 해줘야 하고 유치원이 끝나고 아이들끼리 약속해 친구 집에 놀러가거나 하면 품앗이처럼 다음번엔 반드시 우리 집에 아이들을 데려와 놀려야했다. 친구 집에 놀러 가면 자전거로 데려다 주어야 하고 다시 데려오는 것도 일이이라면 일이었다.

공부는 좀 해야겠는데 좀처럼 묘안이 없어 마음만 급해져갔다.


그런데 아이 유치원 담임선생님께서는 그날그날 유치원생활이나 놀이, 친구관계 등을 적어 부모에게 알려주고 부탁도 하는 ‘연락장’이 있었는데 특히 우리 아이는 외국인이라 신경이 더 쓰였던 건지 거의 매일 일기장처럼 그림까지 그려가며 세세하게 기록한 연락장을 아이에게 보내주곤 하셨다.

선생님께서 연락장을 친절하게 써서 보내주면 내가 읽고 뭔가 간단하게나마 답을 해야 도리인데 내 일본어로는 감사의 마음을 십분의 일도 표현할 수가 없었다.


그 때부터 일한, 한일사전을 꺼내놓고 일본어와 씨름을 시작하였다.

당장 해야만 했고 꼭 필요했기 때문에 안할 수도 미룰 수도 없는 일이 연락장에 날마다 답장을 쓰는 것이었다.

날마다 조금씩 서투르면 서투른 대로 연락장을 써가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생활 한가운데서 일본어는 그렇게 필요에 의해 몸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아이가 유치원에 다니는 3년 내내 선생님과 내가 주고받은 연락장을 펼쳐보면 이십여 년 전 정성스럽게 아이들을 보살펴주던 선생님들의 자상한 눈빛이 떠올라 지금도 고마움에 감탄하고 또 감탄하게 된다.

한 자 한 자 마음으로 꾹꾹 눌러가며 연락장을 써주신 그 옛날 고마운 선생님들의 아름다운 마음과 모습을 다시금 그려보면서 자칫 흐트러지기 쉬운 내 마음을 다잡게 된다.


행복이란 늘 내 곁에 누군가가 함께 있는 것이다. 우리 곁에 함께 있어주었던 선생님들과 일본인 친구들 덕분에 이십 오년 이상이 훌쩍 지난 지금 우리가 받은 최고의 선물인 행복감을 만끽하면서 그들과의 고마운 인연이 새삼 그리워진다.

 

 

 

 

         (2015.1.24)

Posted by 오경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