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노야마소학교(塔山小学校) 교장선생님의 비상호출과 바디랭기지
큰아이가 집근처 도노야마소학교(塔山小学校)에 입학했을 때다. 유치원을 6개월 정도 다니고 난 후라 딸아이는 유치원 친구들과는 어느 정도 의사소통은 가능했지만 또래 일본인 초등학교 입학생들에 비하면 언어도 그러하지만 낯선 환경에서 날마다 맞닥트리는 새로운 문화충돌 등 여러 면에서 미흡하고 마음이안 놓였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일본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유치원을 졸업하고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경우라도 새로 입학하는 아이 당사자뿐 아니라 학부모들도 하루아침에 뒤바뀐 낯선 환경에 혹시 적응을 잘 할 수 있을까 걱정하고 긴장하기 마련인데… 하물며 어느 날 갑자기 부모 따라 일본에 건너와 6개월 만에 달랑 일곱 살 난 어린아이가 외국인이라곤 전혀 없는 일본 초등학교에 일본인 아이들과 나란히 입학하게 되었으니 불안하고 초조했을 심리상태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그러나 사실 딸아이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그 당시는 서툰 내 일본어 탓에 내가 더 불안하고 긴장한 나머지 우선 내 언어 문제가 급선무였기 때문에 딸 아이 심리상태를 운운할 겨를조차 없었다. 그날 입학식이 끝나고 우리나라 초등학교 입학식 풍경처럼 배정된 교실로 담임선생님 뒤를 쫓아 아이들과 학부모들이 따라 들어갔다. 담임선생님과 입학생들과 학부모들의 공식적인 첫 상견례 분위기가 이어졌다. 첫 삼자대면이 끝나고 교실 문을 나서는데 나이 지긋한 남자 선생님께서 우리아이 이름을 부르면 나를 찾았다. 교장선생님의 비상호출이란다.
우리아이 성(姓)이 '이(李)'인데 처음 일본에 갔을 때 ‘이’라고 해도 되는 것을 ‘리’라고 발음했더니 그때부터 우리 아이 성은 ‘리’가 되어 ‘리상(リさん)’으로 불렸다. 우리 애들은 지금도 애초에 성(姓) ‘李’를 ‘이’로 하지 않고 ‘리’로 한 것에 불만이 많다. 중국사람 성에도 ‘이(李)’가 많다는데 일본에 거주하는 중국 사람들의 경우 이름의 성씨 ‘李’는 대개 ‘리’로 발음한다고 한다. 따라서 한자는 같은 모양이라도 ‘李’를 ‘리’라고 하면 중국인으로 착각하기 쉽기 때문이다.
아무튼 영문도 모른 채 우리 애와 나는 교장선생님이 기다리는 맞은 편 복도 쪽으로 다가갔다. 교장선생님 말씀이 무슨 내용인지 백 프로 이해하지도 못했지만 눈치로 알아차린 호출 요지는 대략 이랬다.
도노야마소학교(塔山小学校)에 여태껏 외국인이 입학한 적도 없고 한국인 입학생도 이번이 처음이다. 일본에 온 지도 얼마 안 되었다고 들었는데 수업을 따라갈 수 있을지 염려가 된다. 특히 1학년 신입생이고 학기 초라 학교에서 가정으로 보내는 통신문이나 연락사항 등도 많을 거고 수업이나 급식 관련 준비물 등 이것저것 많을 텐데… 이러한 모든 수업이나 학교행사 관련 일정을 모두 일본어로 공지할 텐데 ‘리상(李さん)’이 별 문제가 없는지, 그리고 ‘리상’의 어머니가 일본어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대응할 수 있는지를 파악하고 입학허가를 재고하고 싶다는 취지였다.
교장선생님의 말씀을 대충 이해는 했다. 하지만 “나는 아직 일본어가 서툴지만 앞으로 일본어 공부를 열심히 할 거고 우리 애는 그럭저럭 따라가며 적응을 잘할 테니 그다지 걱정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내 의사를 분명하게 전할 수 있는 일본어 실력도 안 되었거니와 긴장한 나머지 나와 우리 딸아이는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인사를 하면서 “요로시쿠 오네가이시마스! 요로시쿠 오네가이시마스!(잘 부탁드립니다)”만 반복하고 말았다.
결국은 교장선생님이 예전에 학교 일로 알게 된 재일코리언에게 급히 연락을 취해 우리에게 소개시켜주면서 무사입학으로 일단락되었다. 그 당시 소개받은 재일코리언 문상(文さん)과는 그 때 그 인연으로 우리가족이 일본에서 지낸 5년 동안 크고 작은 많은 도움을 주었다. 나는 문상과 문상 아이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주었고 문상은 나와 우리 아이들에게 일본어뿐 아니라 일본인과 일본사회, 일본문화 등에 대해 시간 날 때마다 찾아와 가르쳐 주곤 했다. 그 당시 문상에게는 참 많은 신세를 졌지만 그러한 인연으로 지금까지 서로 왕래하며 잘 지내고 있다.
내가 모르면 답답하고 사는 게 불편하다.
모르면 물어봐야 한다. 물어보는 것을 부끄러워하면 안 된다.
내가 먼저 다가가 물어보지 않으면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고 먼저 알려주지 않는다.
어제와 다른 오늘의 나를 발견하기 위해 끊임없이 질문하는 것이 공부다.
공부는 학자나 박사가 되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다.
사는 데 답답하지 않기 위해서, 불편하지 않기 위해서 한다.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을 살기 위해 하는 것이 공부다.
어제 몰랐던 사실을 오늘 깨닫는 즐거움, 이것이 공부의 즐거움 아닐까.
생각지도 못했던 도노야마소학교(塔山小学校) 교장선생님의 느닷없는 호출로 졸지에 이루어진 일대일 면담은 바디랭기지로 걱정 반 기대 반으로 그럭저럭 마무리는 되었지만, 그 날 이후 한국인 ‘리상 ’가족은 교장선생님부터 학교 모든 선생님들의 도움과 관찰이 요구되는 ‘시선 집중’ 대상 제1호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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