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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1.29 인생의 깊이를 더해 준 구약소 일본어

어느 정도 일본어에 재미를 붙이고 나니 유치원 연락장이나 일본인 친구들과 날마다 수다 떠는 일본어 대화만으로는 일본어가 늘상 그 자리에 맴도는 느낌으로 성에 차지 않았다. 일본어를 좀 더 제대로 배워 다양하고 세세하게 나를 제대로 표현하고 싶었다.

 

그래서 수소문 끝에 내게 안성맞춤인 게다가 무료로 일본어를 배울 수 있는 곳을 찾아냈다. 우리식으로 하면 구청인 일본 구약소(区役所)에서 그 구(区)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에게 일주일에 두 번 자원봉사자들이 일본어를 가르쳐주는 프로그램이었다.

 

일본어뿐 아니라 절기마다 있는 일본문화나 일본 전국에서 일 년 내내 크고 작은 축제로 이어지는 마쓰리(祭り)나 기모노 입는 법, 오차(お茶)나 스시(寿司) 즐기는 법까지 실생활에 필요한 일본문화와 일본어를 함께 배울 수 있는 안성맞춤의 기회였다. 바로 나카노구(中野区)에 신청을 하고 드디어 일본어 공부를 위해 행동반경을 구약소까지 넓혀갔다.

 

일본어를 배우러 온 외국인들로 구약소 큰 홀이 꽉 찼다. 외국인 대여섯 명 씩 한 팀을 짰고 자원봉사자 선생님 한 분이 한 팀을 담당하였다. 나는 중국인과 싱가포르인 인도인 태국인 이렇게 한 팀이 되어 일본어 공부를 시작했다. 선생님께서 직접 제작한 교재로 기초일본어와 기초한자, 생활회화를 공부하고 날마다 시험도 치러가며 얼굴이 벌게지도록 집중하다 보면 어느 새 3시간이 후딱 지나갔다. 그 때 그런 집중력이 어디에서 생겨났는지…

 

구약소에서 마음으로 일본어를 가르쳐주신 자원봉사자 할머니 선생님의 반짝반짝 빛나던 열정과 눈빛이 지금도 생생하다. 지나고 보니 그 때 그 시간들은 선생님에게나 나에게나 새로운 내일을 위한 선택의 순간들 이었다.

 

여태껏 닥치는 대로 내 방식으로 해왔던 공부와는 다르게 기초일본어이기는 하지만 좀 더 체계가 잡혀가는 느낌이 들었다. 특히 일본어는 말하기와 쓰기가 전혀 다르다. 일본어 특유의 탁음이나 장음, 단음을 외국인이 구별하고 알아듣기까지는 상당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일본어 공부 중 외국인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이 한자읽기이고 해도 해도 끝이 없을 것 같은 한자를 정확히 읽고 쓰는 것이 내게도 가장 힘들었고 지금도 가장 취약한 부분이다.

 

일본인 이름을 보더라도 같은 한자라도 읽는 방법이 다 제각각이다. 당사자에게 직접 물어보지 않으면 전혀 다른 엉뚱한 이름을 대는 큰 무례를 범하기 쉽다. 오죽하면 일본인의 성과 이름은 일본인도 못 읽는다 하지 않는가.

 

우리는 한자를 음으로만 읽지만 일본어 한자는 음으로도 읽고 훈으로도 읽으며 혹은 음과 훈을 섞어 읽기도 한다. 특히 인명의 경우는 예외도 훨씬 많은 것 같다. 또한 우리와는 달리 숫자나 자연현상 등을 성과 이름으로 쓰는 경우도 흔하다.

 

‘오십(50)’은 일본어로 ‘五十’이고 ‘고주’로 읽는다. 그러나 인명의 경우 ‘五十嵐’은 ‘이가라시’, ‘이카라시’, ‘이소아라시’ 등으로 불린다. 2차 대전 당시 일본 연합함대 사령관 ‘山本五十六’도 ‘야마모토 고주로쿠’가 아닌 ‘야마모토 이소로쿠’로 읽는다.


            

또한 ‘일 씨(一さん)’은 ‘이치 상’이 아니라 ‘니노마에(二の前)상’으로 읽는데 ‘2 앞의 숫자가 1’이라 하여 그리 불린다. 일본어 ‘니(二)’는 ‘2’, ‘노(の)’는 ‘의’, ‘마에(前)’는 ‘앞, 전’을 뜻한다. 우리말로 직역하면 ‘2의 앞 씨’가 된다.

 

‘십이월일일 씨(十二月一日さん)’은 ‘시와스 상’으로 읽는다.‘시와스(師走)’는 일본어로 ‘음력 12월 즉 음력섣달’을 뜻한다. 이 말도 우리말로 직역하면 ‘음력 섣달 씨’가 된다.

 

‘춘하추동 씨(春夏秋冬さん)’도 있다. 일 년에 춘하추동이 다 들어 있다고 해서 ‘히토토세 상’이라 읽는다. 일본어 ‘히토토세(一年)’는 일 년 한 해를 일컫는 말이다. 이 이름도 우리말로 직역하면 ‘일 년 한 해 씨’가 된다.

 

재미있는 예가 또 있다. 화장실은 일본어로 ‘오테아라이(御手洗)’라 한다. 일본 경제단체장이며 캐논회장인 ‘미타라이 후지오(御手洗 冨士夫)’ 씨의 성이 바로 화장실을 뜻하는 ‘미타라이(御手洗)’이다. 이 성(姓)도 우리말로 직역하면 ‘화장실 씨’가 된다. 그의 먼 조상이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시중드는 일을 맡아했었는데 화장실 출입을 하거나 손을 씻을 일이 생기면 손 씻는 물을 대령하는 일을 했던 조상에게서 하사 받은 성이 ‘미타라이(御手洗)’라고 한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지금도 인명, 지명 등 일본어 한자읽기로 골머리 썩이는 예는 한도 끝도 없이 많다.

와세다 대학 일본어 교육센터에서 외국인 유학생들에게 일본어 교육을 담당하는 ‘川口義一’ 선생님이 계신다. 명함을 받았어도 직접 읽는 법을 물어보지 않으면 ‘가와구치 요시이치’로 읽기 쉽다. 그러나 선생님의 성함은 ‘가와구치 요시카즈’로 읽어야 맞다. ‘일(1)’을 뜻하는 일본어 ‘一’을 ‘이치’로 읽지 않고 ‘카즈’로 읽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래서 일본사람 명함에는 한자 위에 대부분 읽는 법이 별도로 기재되어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아 특히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생(生)’은 우리 한자음 읽으면 ‘생’ 하나로 끝나지만 일본어의 경우는 음독이 3가지, 훈독이 9가지 음독, 훈독도 아닌 예외로 특별하게 읽는 경우가 무려 67가지나 된다. 그저 한숨만 나올 따름이다. 게다가 외국인이 한자 필순까지 제대로 배우려면 이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본다.

 

얼마 전 NHK에서 일본인도 읽기 어려운 희한한 성(姓)의 유래에 대해 소개하는 방송을 봤다. ‘약봉지(薬袋)’라는 성이 있는데 이를 ‘미나이’라고 읽는단다. 일본어 ‘미나이(見ない)’는 ‘보지 않다’의 뜻이다. ‘약봉지(薬袋) 씨’의 유래는 이렇다.

“옛날에 다케다 신겐(武田信玄)이라는 영주가 길을 가다 약 봉지를 떨어뜨렸는데 마을의 친절한 농부가 그 약봉지를 주워 신겐에게 가져다주었다. 그러자 약 봉지의 약점(내용물)을 보이고 싶지 않은 마음에 신겐이 농부에게 “약봉지 안을 보았는가?”라고 묻자 “보지 않았습니다.”라고 답했다. 이에 안심한 신겐이 농부에게 ‘약봉지(薬袋)’라는 성을 하사했는데 이를 ‘미나이(보지 않았다)’라고 읽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약봉지(薬袋) 씨’, 즉 ‘보지 않았다 씨’가 생겨났다는 말이다.

 

 

 

 

오죽하면『일본어와 한국어(日本語と韓国語)』를 쓴 오노 도시아키(大野敏明)도 일본어 공부는 울면서 들어가서 울면서 나온다(泣いて入って泣いて出る)고 했을까?

 

정말 해도 해도 끝이 없는 게 공부겠지만 욕심 내지 않고 오늘 하루하루의 작은 공부로 새로운 지혜와 작은 기쁨을 만끽한다면, 그리하여 차근차근 내공이 쌓여 흔들리지 않는 내 삶의 중심축으로 우뚝 서게 된다면, 그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너무 늦은 시작이란 없다.

시작은 언제 해도 늦지 않다.

백세 인생, 너무 늦은 시작이란 결코 없다.

시작한다면 바로 지금이다.

 

새로운 시작, 새로운 도전을 하는 사람에게는 새로운 길이 열리고 새로운 인생이 펼쳐진다.

도전은 젊음의 특권이라지만,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언제나 새로운 도전이다.

천천히 가고 늦게 시작하는 것을 두려워말고 가다가 멈추는 것을, 시작하지 아니한 것을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지금부터 십년 후 또 어떤 흥미진진한 인생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설레는 마음으로 날마다의 작은 공부에 희망과 긍정의 주문을 건다.

 (2015.1.29)

Posted by 오경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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