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화(異文化)'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5.02.03 인간의 그릇을 가늠케 하는 네 가지 키워드: 脱- 異- 外- 超- 1

현대사회는 혈연, 학연, 지연이 아닌 함께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개인의 덕망이 최고의 능력으로 평가받는다.

혈연, 학연, 지연에 연연하면 자신을 차별화 할 수 없고 자신만의 소리를 내기 어렵다. 멀리 보고 오래 그리고 길게 가기 위해서는 나만의 아집이나 에고이즘 따위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타인을 배려하고 양보하는 마음의 그릇을 크게 가져야 한다.

요컨대 탈혈연(脫血緣), 탈지연(脫地緣), 탈학연(脫學緣), 탈아(脫我), 탈아집(脱我執),

탈독단(脫獨斷) 등의 능력이 개인의 품격과 도량, 가치로 고평가되는 사회다.


또한 날마다 새롭게 변화하는 사회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도 지금까지의 낡은 사고와 태도에서 과감하게 벗어나 새롭게 탈바꿈해야한다. 내 마음가짐부터 탈화(脫化)해야 한다. 좋은 샘은 언제나 새로움과 싱싱한 생명력으로 넘쳐흐르듯 우리의 마음도 늘 변화와 희망으로 넘쳐나야 생명 가득 아름답다.

세상이란 변화와 새로움으로 출렁거리는 파도를 따로 또 같이 타고 넘는 망망대해다.

혼자서는 어쩔 도리가 없는 일촉즉발 연속의 항해길이다.

잊지 말자. 배려가 가장 큰 미덕이다.


현대사회에서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개인의 경쟁력이다.

‘How(커뮤니케이션 방법)'보다는 ’What(커뮤니케이션 내용)'이 중요하다.

경쟁력 있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이 역시 개인의 사고와 정보와 논리의 차별성이 우선시된다. 남들도 다 하는 방식, 남들도 다 아는 내용, 남들과 똑같은 생각과 주장은 불순한 산물인 스팸메일처럼 곧바로 걸러지고 영구 삭제되는 공해와도 같다.


이단(異端)’이라는 말을 아는가? ‘이단’은 그리스어로 ‘heretic’이라고 한다. ‘heretic’의 어원은 “선택할 수 있는” 뜻이라고 한다. 즉 다른 의견을 선택한 사람일 뿐이라는 뜻이다. 천편일률적으로 좌우 이념이나 진보 보수 논리만으로 편향되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악성종양으로 뿌리내려 건강하지 못한 사회가 되기 쉽다. 건강하고 품격 있는 사회가 되려면 남들과 다른 선택을 할 수 있고 남들과 다른 주장을 펼 수 있는 용기 있는 ‘이단(異端)’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사회가 ‘이단’을 귀담아 듣고 보듬어 안는 도량과 배려가 필요하다.


외국을 여행하는 것과 외국에서 생활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기회가 된다면 외국에서 살아보는 것도 나름 꽤 가치가 있다. 내가 사는 세상과 전혀 다른 문화와 풍경 속에서 색다른 경험을 하면서 나를 돌아다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이기도 하다. 이문화(異文化)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은 타인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안목으로 이어진다.


딴 세상 뒷골목을 서성거리며 동네 허름한 작은 카페에도 들어가 보고 땀 흘리며 일하는 이와 눈도 마주치며 미소도 지어보이며 낯선 도시의 맨 얼굴을 내 눈으로 직접 들여다보는 것은 의외로 흥미롭고 배울 점이 많다. 현지인과 뒤엉켜 살면서 때론 실수도 하고 때론 도움을 청하기도 하면서 온몸으로 체험하는 생생한 이문화는 자신의 인생에 터닝 포인트가 되기도 하며 글로벌 시대를 살아가는데 두고두고 귀중한 자산이 된다.

이문화(異文化)에 대한 호기심과 배려가 필요한 시대다.


오늘날의 사회는 개인의 이채(異彩)롭고 이색(異色)적이고 이례(異例)적인 작은 차이를 중시한다.

대다수가 지나쳐버린 작은 차이가 세상을 뒤바꾼 예는 얼마든지 있다.

변화와 차별성은 늘 시행착오와 함께 다닌다. 실수와 실패의 끝자락에 비로소 변화와 창조가 보이기 시작한다. 일상과는 좀 더 다른 각도에서 보고 어제의 관점에서 약간 비켜나 생각하고 다양한 작은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작은 차이에 무심하거나 나만의 차별성을 드러내지 못하면 변화와 창조는 없다.


한 시대의 패러다임을 바꾸어놓기도 하는 발상의 전환이란 것도 따지고 보면 개인의 작은 차이에서 비롯된다. 남들과 다르게 보고 듣고 말하는 작은 차이가 인생의 승패를 결정짓는 경우도 많다. 기억하자. 작은 세세함이 큰 차이를 만든다. 남들은 무심코 흘려 지나쳐버리는 것에서 작은 차이를 발견하고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능력이 다름 아닌 비전이다.


인생은 만남의 연속이다.

일기일회(一期一会)’는 다도(茶道)에 임하는 마음가짐에서 유래한 말로 '평생에 한번뿐인 만남, 일생에 한번뿐인 인연‘이라는 의미이다. 즉 당신과 내가 만나는 지금 이 순간은 일생일대 단 한번뿐인 귀한 만남이며 특별한 인연이므로 최선을 다해 최고로 극진하게 서로를 예우해야 한다는 말이다.

 

인생은 작은 인연의 연속이다.

우리 인생의 절반은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과의 작은 인연들로 채워진다.

나를 둘러싼 울타리 넘어 바깥세상과의 인연, 즉 외연(外緣)을 가꾸고 귀하게 여겨야 한다.


삶의 길목에서 만나고 헤어지며 함께 웃고 울며 호흡했던 많은 이들 덕분에 오늘의 내가 있는 것이다.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 평소 인간관계에 두루두루 마음을 쓰며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늘 감사와 칭찬이 넘쳐나는 외향(外向)적인 사람에게 사람들이 모여들게 되어있다.

자신의 울타리를 뛰어넘는 외연(外緣)외향(外向)이 현실을 더 적극적이고 희망적이고 탄탄한 삶으로 만든다.

'초인(超人, superman)'이란 말은 괴테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사용했지만, 프리드리히 니체가《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Also sprach Zarathustra)》에서 의미심장하게 사용한 말이다.

초인이란 우수한 잠재력을 지닌 어떤 사람이 완전히 자기 자신을 지배하고 자기의 고유한 가치를 발현할 때 드러난다고 한다. 이러한 가치는 내세가 아닌 현세의 삶에 깊이 뿌리박고 있다.


초인(超人), 超世(초세), 초령(超齡), 초월(超越), 초한계(超限界), 초극(超克), 초월(超越),

초일(超逸), 초탈(超脫) 등의 ‘超~’라는 말은 세속적인 욕망이나 일반적인 한계를 벗어나거나 뛰어넘어 자신만의 고유 가치를 창출해낸다는 공통의 의미가 있다.


우리가 마음을 모아 열정적으로 하는 일들은 결국 노력한 만큼 되돌아오는 부메랑과 같다.

공부도 마찬가지다. ‘이 나이에’라는 자기 한계, ‘미흡한 여건’ 따위의 자기변명으로는 제자리걸음뿐이다.

시련이나 역경, 한계를 넘어서고 이겨내는 방법은 결국 지금까지 자신의 경험과 학습, 경쟁과 도전, 몰입 등으로 다져진 내공이 쌓여야 가능한 일이다.


너무나 당연한 얘기겠지만, 자신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믿고 내일은 오늘보다 더 나아지리라는 희망을 품고 살아가야한다. 그러면서 크고 작은 어려움과 자기 한계를 이겨낼 수 있는 잔 근육들을 평소 단련하여 단단하게 키워놓아야 값진 성장을 할 수 있다.

자신의 미래를 신뢰하는 강한 자신감은 거저 얻어지는 게 아니다.


(2015. 2. 4) 



 

Posted by 오경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