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오역을 넘어 번역투로 번역은 진화한다

나는 늘 일한 번역과 우리말 글쓰기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일한 번역투’ 문제를 주제로 박사 학위논문을 썼다.

내가 번역투 문제를 다룬 것은 우선 번역하는 내게 도움이 되고 번역가를 꿈꾸는 후배들이나 번역에 관심이 많고 번역을 좋아하는,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당장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었다. 나는 번역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오랜 시간을 보냈고 많은 노력을 했지만, 번역에 관심이 있거나 책을 쓰고 편집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시간과 노력을 줄여주고 싶었다. 나는 학위 논문을 바탕으로 일반 독자와 호흡하기 위해 이 책을 새로 썼다.

번역은 지난한 과정이다.

쉽게 쓰지 못해 어렵게들 쓴다고 하는 말의 뜻을 이 책을 쓰면서 새록새록 실감했다. 꽤 어려운 말과 글도 누구나가 이해하기 쉽게 쓰고 전달할 줄 아는 것이야말로 대단한 능력이며 실력이다. 번역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원문이 아무리 까다롭고 난해하더라도 독자가 이해하기 쉽고 읽기 편하게 옮길 수 있는 언어 구사 능력이 번역 능력이며 번역가의 가장 으뜸가는 자질이라 생각한다.

십여 년간 늘 번역을 가까이 하며 온몸으로 깨달은 사실 하나―역시 질 좋은 번역은 뛰어난 외국어 실력보다는 한국어 실력으로 판가름 난다―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나는 번역을 해오면서 나의 보잘것없는 우리말 지식, 형편없는 우리말 실력을 일찌감치 알아차리고 입말과 글말, 번역투에 늘 관심을 갖고 우리말 공부에 손을 놓지 않았다. 따라서 이 책은 작지만, 그동안 내가 나름대로 고민하며 살아온 흔적의 결과물인 셈이다.

번역에는 왕도가 없다.

누구나가 번역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누구도 제대로 된 완벽한 번역을 하기란 불가능하다. 제대로 된 완벽한 번역 이론 또한 있을 수 없으며 번역은 번역자가 실제 번역 작업을 해나가면서 끊임없이 어휘를 선택하고 다듬어가는 지난한 과정이다. 아무리 번역 이론을 많이 안다고 해도 직접 번역을 하면서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저 많이 읽고 많이 번역하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다.

문화와 언어와 사고가 다른 두 언어 사이의 틈새를 줄여나갈 수 있도록 오랜 시간 꾸준히 번역하면서 번역자가 부단히 고민하고 공부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번역은 언어생활이다.

언어생활은 원활한 의사소통과 정확한 의미 전달이 목적이다. 의사소통과 의미 전달이 되지 않는 말과 글은 좋은 말, 좋은 글이라 할 수 없다. 번역문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번역자는 번역문 독자가 번역문의 정확한 뜻을 이해하는 데 방해받는 요인이 무엇인지를 파악하여 그 요인을 제거하고, 그 뜻을 전달할 수 있는 다양한 표현을 모색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이 독자의 기대치에 부응하는 올바른 번역[正譯]을 위한 작은 발걸음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 책은 원문 독자의 반응과 언어 효과와 감동을 그대로 번역문 독자의 반응과 언어 효과와 감동으로 전달할 수 있는 대안으로서 번역투의 문제를 집중 조명하였다. 번역의 시작은 번역자가 하지만 끝은 독자가 맺는다는 번역자의 작업 의식과 자세의 중요성을 염두에 두고 쓴 책이기도 하다.

나는 인생의 모든 면에서 늦깎이이다.

어느 날 느닷없이 일본으로 건너가 살게 되면서 일상생활의 절실한 필요로 일본어를 처음 대한 시기도 늦었고, 대학원 입학에서부터 박사과정을 시작한 것도, 번역 일을 시작한 것도,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게 된 것도 늦었다. 남들보다 한참 늦게 시작을 했기에 결실 또한 그만큼 더디리라.

그러나 곰곰 생각해보면 우리의 인생 어느 것 하나 대충대충 어설픈 사고로 완성되는 건 없는 것 같다. 오랫동안 늘 마음을 쓰고 노력하다 보면 조금씩 조금씩 완성되어가는 게 아닐까. 남들보다 훨씬 더디고 느린 인생의 완성 과정을 나는 진심으로 감사하고 싶다. 뒤늦은 시작 덕분에 남들 따분해하고 무료해질 즈음에 나는 사회에 첫발을 내딛은 신입 사원의 설레는 마음처럼 긴장하고 조심하며 겸손하게 살아갈 수 있기에.

무럭무럭 잘 자란 푸르른 미나리보다 오그라들고 땅바닥에 바싹 달라붙은듯한 미나리가 더욱 향기롭다는 것은 어쩌면 사람의 경우에도 해당되지 않을까. 항상 푸르지는 못할지언정 오래도록 향기를 머금은 그런 사람이고 싶다.

지난 십여 년간 낯선 오지의 배낭 여행자처럼 혼자 물어물어 돌아가는 길에서 길을 잃고 헤매기도 할 때 나의 무거운 가방을 들어주며 가슴으로 따뜻하게 맞아주던 아름다운 많은 이를 나는 잊을 수가 없다. 길지도 짧지도 않았던 그 길에서 만나고 헤어지며 함께 웃고 울며 호흡했던 그들과의 소중한 인연에 감사하고 또 감사한다.

늘 푸근한 둥지에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세상을 향해 날갯짓하는, 둥지를 떠난 새의 운명처럼 오늘은 두렵고 불안하지만 기대와 꿈으로 부푼 내일이 있어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세상과의 소통을 위한 이 작은 날갯짓이 자칫 내 학문의 부족함과 부끄러움만을 드러낸 것 같아 두려움이 앞서기도 하지만,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가장 잘 알듯 번역을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과 번역에 다리를 놓으려는 용기 있는 첫 걸음마로 너그러이 보듬어 안아주기를 바란다.

2010년 4월

오경순

 

 


Posted by 오경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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