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어 잘 쓰는 사람이 일도 잘 한다” 일본도 과잉존칭 넘쳐나

 

http://news.donga.com/3/all/20120921/49590005/1

 

“고센엔니나리마스(5000엔이십니다)”

“고센엔니나리마스(5000円になります·5000엔이십니다).”

어디서 많이 듣던 말이다. 사람이 아닌 가격을 높여버리는 ‘백화점 높임법’이다. 다만 일본어라는 것이 다르다. 일본에도 우리처럼 과잉존칭을 표현하는 경우가 있다. ‘바이토케고(バィト敬語·바이토경어·바이토는 아르바이트를 줄인 일본말)’라고 부른다. 점원이 손님을 상대할 때 과도하게 사용하는 경어를 뜻한다.

원래 일본어 문법에서는 ‘お…になります(오…니나리마스)’의 ‘…’ 자리에 동사가 와야 존칭이 성립한다. 그런데 점원 등 일부 사람들이 원래는 넣을 수 없는 명사를 넣어 경어를 만들었다. ‘5000엔’ 자리에 커피를 뜻하는 일본어 ‘고히’를 넣으면 우리가 흔히 커피전문점에서 듣는 ‘커피 나오셨습니다’와 똑같은 말이 된다. 일본어 번역전문가이자 ‘한국인이 모르는 한국어’(21세기북스·2012년)의 공저자인 오경순 박사는 “문법에 맞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오래전부터 써온 표현”이라고 설명했다.



국립국어원 홈페이지(www.korean.go.kr)에서 내려받은 ‘표준언어예절’ 경어편에는 우리말 경어법이 복잡한 편이라고 씌어 있다. ‘문법적으로 주체를 높이는 존경의 표현,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관계에 따라 결정되는 공손의 표현, 지금은 그 용법이 거의 사라진 객체와 주체, 그리고 말하는 사람과의 관계에 따른 겸양의 표현 등이 있고….’ 문법적으로 3가지 경어법이 있는 셈이다. 반면 일본어 경어법은 문법적으로 5가지여서 우리말보다 좀 더 복잡하다.

일본에는 ‘경어를 잘 쓰는 사람이 일도 잘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회사나 조직에서 경어를 중요시한다. 취직을 하기 전까지 경어를 잘 쓰지 않았던 신입사원들에게 따로 경어 교육을 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고 오 박사는 말했다.

경어를 중요시하는 만큼 경어를 문법적으로 잘못 쓰는 사례도 끊이지 않는다. 오 박사는 이중경어(二重敬語)의 문제를 지적한다. 이미 겸양을 뜻하는 동사에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다시 존경을 뜻하는 어미를 붙여 과잉경어를 쓴다는 것이다. “일본인에게서 최근에 받은 e메일에도 이중경어로 된 문장이 적지 않았어요.” 또 아무 의미 없는 낱말인 ‘레(れ)’나 ‘사(さ)’를 이미 완성된 경어 문장에 집어넣는 것이 요즘 유행하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된 문장은 사전을 찾아도 나오지 않기 때문에 일본어를 배우는 한국인에게는 어렵기만 하다.

최근엔 이처럼 과도한 경어가 잘못된 표현이라고 지적하는 책들이 일본에서 잘 팔린다고 한다. 일본어 연구자들은 그런 잘못된 말을 쓰지 말자고 외치는 대신, 아주 재미있는 문법책을 집필해 그 안에서 과잉경어, 이중경어를 꼬집는다. 2009년 1권이 나오고 현재 3권까지 모두 150만 부가 팔린 ‘니혼진노 시라나이 니혼고(日本人の知らない日本語·일본인이 모르는 일본어·사진)’가 대표적이다. 이 책은 2010년에 TV드라마로도 만들어질 만큼 인기를 끌었다.

오 박사는 “상대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다는 태도가 습관처럼 몸에 밴 일본인들이 경어를 쓰면서도 더더욱 자신을 낮추려는 데서 이런 과잉경어가 나오는 것 같다”며 “그러나 최근에는 이런 거추장스러운 경어법을 깔끔하게 바꿔 쓰자는 움직임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Posted by 오경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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