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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10.02 길에 어깨가 없다니?

길어깨 없음? / 단차 주의?

 

지난 달 청주 쪽에 일이 있어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길어깨’라는 빨간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반신반의했다. 사실 ‘길어깨’라는 어원을 익히 알고 있던 터라 설마 아직도 그런 용어가 버젓이 쓰이리라고는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도착하자마자 바로 ‘길어깨’ 검색부터 해봤다.

 

‘길어깨’는 국어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말인데 산림청 홈페이지에는 아주 친절하게 장황한 용어설명까지 곁들여있다.

“국문명: 길어깨, 영문명: shoulder of road, 한자명: 路肩

용어설명: 차도에 접속되어 차도의 구조부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치된 부분이다.

또한 길어깨는 차량 주행시의 여유, 시거 확보, 보행자의 통행, 대피 등 여러 가지 목적으

로 이용된다. … 중략 …“ (http://www.forest.go.kr)

 

원래 ‘노견(路肩)’이란 말은 일본에서 영어 ‘road shoulder’를 직역하여 쓴 말이다. 우리는 일본말 ‘노견(路肩)’을 들여와 쓰다가 다시 ‘길어깨’라는 희한한 우리말로 번역하여 쓰기도 했다.

일본어 ‘路肩(로카타)’는 ‘길(路)+어깨(肩)’의 합성어로 한자의 뜻을 그대로 가져다 만든 말이 ‘길어깨’다.

다행히 1991년 이어령 당시 문화부장관이 ‘길어깨’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갓길’이라는 순우리말을 만들어 지금은 우리 모두가 ‘갓길’이라는 우리말을 쓰고 있다. 일본 한자어 ‘노견(路肩)’을 순화한 우리말로는 ‘갓길’ 외에도 ‘길섶’, ‘길턱’이 있다. (참고로 영어로 ‘갓길’은 'the shoulder of a road'이나 ‘shoulder’라고만 써도 된다.)

 

이왕 말이 나온 김에 ‘길어깨’와 오십보백보인 ‘단차’라는 말도 한번 따져보자.

 

“휠체어장애인의 적 넓은 지하철 단차” “1층 출입구 바닥 침하로 인한 단차 발생”

“홍제천 불광천 합수부 인근 단차 주의” 등등.

 

단차(段差)’라는 말도 ‘도로 · 지표 등의 높낮이의 차’를 뜻하는 일본말이다.

일본에서 ‘단차주의(段差注意)’라는 말은 주로 계단에 높낮이 차가 있거나 출입구에 턱이 있으니 부딪치거나 넘어지지 않도록 주의를 당부할 때 쓰는 말이다.

단차(段差)’ 역시 국어사전에는 없다. 굳이 어려운 일본식 한자어를 가져다 쓸 필요가 있을까?

누구나가 다 이해하기 쉬운 ‘높이 차’, ‘고저 차’, ‘높낮이 차’ ‘턱’ 등이 있는데도 말이다.

자, 어느 쪽이 말하기도 쉽고 듣기도 편한가.

 

차도와 보도의 단차 ⇒ 차도와 보도의 높낮이 차

하천 인근 단차 주의 ⇒ 하천 인근 높낮이 주의 ⇒ 하천 인근 바닥 턱 주의

 

언어생활은 원활한 의사소통과 정확한 의미 전달이 목적이다. 의사소통과 의미 전달이 되지 않는 말과 글은 좋은 말, 좋은 글이라 할 수 없다.

쉽게 쓰지 못해 어렵게들 쓴다지만 어려운 말과 글도 누구나가 이해하기 쉽게 쓰고 전달할 줄 아는 것이야말로 능력이며 실력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희한한 말 ‘길어깨’도 일본어 번역에서 생겨났으니 번역하는 사람으로 한마디 덧붙이자면 번역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원문이 아무리 까다롭고 난해하더라도 독자가 이해하기 쉽고 읽기 편하게 옮길 수 있는 언어구사 능력이 바로 번역능력이며 번역가의 가장 으뜸가는 자질이다.

(2017.10.2)

 

 

             

 

 

  

     

 

 

 

 

 

 

 

Posted by 오경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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