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도 모르는 일본어]

 

지난 해 겨울 일본 도쿄에 갔을 때다. 한 겨울이라도 여간해선 도쿄에서 눈 구경 하기란 쉽지 않지만 희한하게도 그 날은 거리에 눈이 소복이 쌓일 정도로 무척 눈이 많이 내렸다. 어느 백화점 앞을 지나가다보니 입구에【 미끄러지지 않도록 걸음걸이에 주의하세요(足もとにご注意してください) 】라는 문구가 적힌 경고 팻말을 세워두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일본어가 틀렸다.

도쿄 한 대형백화점에서 고객을 배려하기 위해 만든 문구가 틀리다니… 순간 혹시 내가 잘 못 알고 있는 건 아닌 가 싶기도 했다.

 

이처럼 까딱하면 일본인도 틀리기 일쑤인 일본어 경어표현은 대단히 어렵고 복잡하다.

일본에서는 ‘경어를 잘 쓰는 사람이 일도 잘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회사나 조직에서 경어 사용을 중요시한다.

오죽하면 신입사원이 입사하거나 아르바이트생을 뽑으면 회사에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이 고객접대 차원의 올바른 경어사용 교육이다.

취직을 하기 전까지 경어를 잘 쓰지 않았던 신입사원들에게 경어 교육을 따로 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우리말은 절대 경어인데 비해 일본어는 상대 경어다.

게다가 경어 체계도 다섯 종류(①존경어 ②겸양어Ⅰ③겸양어Ⅱ ④정중어 ⑤미화어)로 세분화되어 있어꽤 복잡하고 어렵다.

 

우리말 경어는 연령과 상하관계를 절대적 기준으로 삼지만 일본어 경어는 연령과 상하관계보다는 제삼자 및 듣는 사람과의 친소관계를 우선시한다. 또한 일본어 경어는 말하는 사람자신을 낮추는 겸양어가 특히 발달하였다.

 

상대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태도가 습관처럼 몸에 밴 일본인들이 경어를 쓰면서도 더 더욱 자신을 낮추려는 데서 과잉경어(과잉존경어 /과잉겸양어)까지 등장하는 판국이다.

 

일본인도 그럴진대 한국인 일본어 학습자가 일본어 경어를 터득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일본어다운 품위 있는 일본어를 구사하기 위해서는 일본어 경어 공부는 기본이자 필수이다.

그 중 가장 많이들 헷갈리고 틀리는 것이 존경어와 겸양어의 혼용 내지 오용이다.

 

위 백화점 경고 팻말도 다름 아닌 경어인 존경어와 겸양어를 혼용한 오류이다.

고객을 상대로 한 문구이니 존경어를 써야 하는데 자신을 낮추는 겸양어로 잘 못 쓴 경우이다.

 

상대 즉 고객을 대우하는 존경어로 쓰면

【 걸음걸이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足もとにご注意になってください) 】로 써야 맞다.

그런데 이 표현【 足もとにご注意(になって)ください 】은 괄호 안의 말(になって)이 흔히 생략되어【 足もとにご注意ください 】가 일반적으로 쓰인다.

 

그런데 경고 팻말에는 고객을 높이는 존경어가 아닌 자신을 낮추는 겸양어로 씌었기에 틀린 표현이다.

아래 팻말의 일본어를 직역하면【 걸음걸이에 내가 주의하기 바랍니다 (足もとにご注意してください) 】라고 하는 이상한 표현이 돼버리고 만다.

 

 

 

  따라서 잘못을 바로 잡으면 아래처럼 표현해야 맞다.

 

    

  

말이 나온 김에 한국인 일본어 학습자가 종종 틀리는 일본어표현 중【불조심】이 있다.

 

【火の注意】라고 써도 될 것 같은데【火の注意】라는 일본말은 없다.

한국인 일본어 학습자가 바로【火の注意】를 떠올리는 것은 일종의 모어 간섭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올바른 일본어 표현은【火の用心】으로 써야 한다.

 

해마다 겨울이면 눈 축제가 열리는 홋카이도(北海道) 시내에는【火の用心(불조심)】이란 큰 팻말이 거리 구석구석에 벌겋게 불꽃처럼 널려 휘날리고 있다.

실생활 표현인火の用心(불조심)】은 일본어 교과서나 교재에서는 그리 접할 기회가 많지 않다.

 

그러나火の用心(불조심)】이란 말은 일본어를 전혀 못 하는 여행객이라 할지라도 겨울날 눈 덮인 홋카이도 거리를 한번쯤 거닐었다면 빨간 천에 흰 글씨로 쓰인 네 자의 뜻을 바로【불조심】으로 받아들였으리라.

 

그 정도로 홋카이도하면 함께 연상되는 장면이 온통 눈 천지인 희뿌연 거리에 불타오르듯 빨간 휘장으로 뒤덮인【火の用心】이란 강력한 문구이다.

 

홋카이도 추억을 떠올리면 아직도 그 생활문구가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펄럭거린다.

  

                                   

 

  (2015.9.29) 

Posted by 오경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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