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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1.24 맨땅에 헤딩 일본어 분투기

-일본어 왕초보 시절 웃지 못 할 에피소드 하나


지역센터가 치킨센터로 둔갑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나는 나대로 일본생활에 적응하느라 정신없이 뛰어다니다보니 어느 새 일 년이란 시간이 훌쩍 지났다. 날마다 내가 만나고 차 마시며 인사하고 대화하는 상대가 온통 일본인인 덕분에 오며가며 들은 풍월도 있어 어느 정도는 일본어로 간단한 의사소통이 가능해졌다.


역시 조금이라도 알아야 관심도 가고 흥미도 생기는가보다. 한 마디 겨우 하던 인사말이 두 마디로 늘고 묻지도 않은 말을 내가 먼저 늘어놓고 내가 먼저 만나자고 전화하고 약속하는 일들이 많아지자 차츰 일본어가 재미있어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내 엉터리 일본어로 주위 일본인 친구들을 당황스럽게 하거나 본의 아니게 폐를 끼친 일, 때론 모두를 한바탕 웃게 만든 사건들도 참 많았다. 그런 모든 일들은 나도 한번 잘해보겠다는 생각 하나로 부딪치기도 하고 엎어지기도 하며 이런저런 시행착오들을 거치면서 비로소 제대로 된 일본어로 자리잡아가기까지 귀한 비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이 세상에 저절로 얻어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나는 일본어만큼은 왕초보이기 때문에 다소 실수를 하더라도 오히려 상대가 눈 감아 줄 수 있는 선까지는 아마추어의 특권을 최대한 누렸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에서 바자회를 열기로 했는데 일정을 짜느라 보호자들이 모여 회의를 하기로 했다.

유치원에는 비상연락망이 있었는데 긴급 모임이라든가 전체 연락 등 전달사항이 있는 경우는 정해진 순번대로 차질 없이 전화로 연락을 해야 했다.

그 날도 연락망이 돌고 있었고 내 앞 순번인 에리짱 엄마가 내게 전화를 걸어 아주 또박또박 천천히 연락사항을 전달해주었다.


“오늘 바자회 관련 모임이 있는데 장소는 근처 ‘치킨센터’에서 하기로 했으니 오후 3시까지 꼭 참석해 달라”는 요지였다. 에리짱 엄마는 몇 문장 되지도 않은 짧은 말을 무슨 뜻인지 이해했느냐며 재차 확인을 했고 나는 그 정도쯤이야 충분히 이해했노라며 걱정 말라며 웃으면서 전화를 끊었다. 유치원 근처에 유치원이 파하기를 기다리며 가끔 유치원 엄마들과 들러 담소를 나누던 ‘KFC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센터’ 라는 가게가 하나 있었다. 그래도 그렇지 내가 그 곳을 모를 리가 없었다.


한 십분 정도 일찌감치 먼저 가 기다렸다. 그런데 3시가 지나도 어느 한 사람 나타나지 않았다. 이십분 삼십분이 지나도 마찬가지였다. 그 때는 핸드폰도 없던 때라 집 전화 외에는 연락할 방법도 없었고 집에 전화를 건들 그 시간에 집에 있을 리도 만무했다. 그 때서야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직감하기는 했는데 도대체 뭐가 잘못됐는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아 무척 난감했다.


그날 저녁 “무슨 일이 있었느냐, 온다더니 왜 나오지 않았느냐”며 에리짱 엄마가 다시 전화를 했다. 내가 제일 먼저 ‘KFC 치킨센터’에 갔었는데 아무도 없어 한참을 기다리다 되돌아왔다고 하자 에리짱 엄마가 웃으면서 ‘치킨센터’가 아니라 ‘치이키센터’였는데 자기가 잘못 전달한 것 같다며 미안하다며 오히려 내게 사과를 했다. 그제서야 뭐가 잘못 돌아갔고 내가 뭘 잘못한 것인지 눈치를 챘다.


지역(地域)을 일본어로 발음하면 ‘치이키’이고, 일본 동네마다 있는 '지역센터(地域センター)'를 일본어로 발음하면 ‘치이키센터’인데 나는 동네 지역센터인 ‘치이키센터’에 오라는 말을 ‘치킨센터’로 잘못 알아듣고 엉뚱하게 ‘KFC 치킨센터’에 가서 마냥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요즘도 일본에 가면 동네 곳곳에 있는 '지역센터'를 지날 때마다 그 시절 ‘치킨센터’가 떠올라 혼자 피식 웃곤 한다. 그날 이후 일본어를 가르치면서 지역(地域)이란 말이 나오면 학생들에게 그 옛날 에피소드를 들려주며 ‘지역(地域)’의 일본어 발음 ‘치이키’만큼은 제대로 가르치려 자못 신경을 쓰게 된다.


한 가지 외국어를 익힌다는 것은 한 가지 세계관을 더 갖는 것을 의미한다.

이 말은 그만큼 세계와 인생과 인간을 바라보는 생각의 폭이 두 배로 넓어지고 깊어진다는

말이다. 또한 한 가지 외국어를 마스터하면 또 다른 외국어를 마스터하기가 훨씬 빠르고 쉬워진다.


전 세계 언어는 6880여개쯤 된다고 하는데 각 언어마다 그들 고유의 문법구조와 어법, 화용적 특징, 관용어법 등 나름의 특수성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보편성도 당연히 존재한다. 요컨대 6880여개나 되는 전 세계 언어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이러한 언어의 보편성 덕분에 한 가지 언어를 마스터하게 되면 그간의 언어습득 경험과 학습효과로 또 한 가지 언어 습득은 자연히 수월하지 않겠는가.


나 역시 새로운 외국어, 일본어를 하나 더 익히면서 내 인생이 곱절 넓어지고 깊어지고 흥미진진해졌다.

나 홀로 맨땅에 헤딩식 일본어 공부를 하면서 백 프로 절절히 공감한 소중한 체험이다.

(2015.1.24) 

Posted by 오경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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