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속 번역문체에 대하여

- 말과 글은 쉽고 간결하고 명확하게-

 오경순

  

  지난 달 말쯤 봄호 특집 원고 부탁을 받았다. 특집 주제는 '저널리즘 문체의 변화와 방향'으로 내가 부탁받은 소주제는 ‘미디어 속 번역문체에 대하여’이다.

  번역문체 혹은 번역투 문제를 논하자면 하고 싶은 말이 참 많다. 어떻게 시작할까 하다 이왕 부탁받은 '~에 대하여'로 시작하고자 한다.


1. 일본어 번역투 '~에 대하여'

≪일본어 투 '~에 대하여' 교과서에서 없앤다≫

  교과서에 자주 나오는 일본어 투 한자어와 표현, 외래어 등이 자연스러운 우리말로 바뀐다. 교육부는 "지금 개발하는 '2015 개정 교육과정' 교과서를 올바른 국어를 사용하는 질 높은 교과서로 만들 것"이라며 "지금까지 무분별하게 사용해 온 일본어 투 한자어 등을 본격적으로 정리하겠다"고 7일 밝혔다.(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10/08/2016100800173.html. 2016.10.8)

 오늘은 한글날 '~에 대하여' '~으로 인하여' 같은 일본어 투 표현 없앤다≫

  현재 초등학교 교과서에 가장 많이 쓰이는 일본어 투 표현은 ‘~에 대하여’인 것으로 나타났다. ‘~에 대하여’는 현행 교과서에서 가장 흔하게 나타나고 있는 일본어 투 표현으로 지적됐다. 예를 들어 초등학교 4학년 도덕 교과서 36쪽에는 ‘인터넷 예절이 중요한 이유에 대하여 함께 생각해 봅시다’라는 문장이 나오는데, 연구진은 이를 ‘인터넷 예절이 중요한 이유를 생각해 봅시다’로 순화하자고 제안했다.(https://news.joins.com/article/20696107. 2016.10.9)

 일본어 번역투 표현 '~에 대하여'를 교과서에서 없앨 정도로 왜 문제가 되는지 따져보자.

  '~에 대하여'는 일본어 후치사 ‘~に対して’를 직역한 번역투 표현이다. 후치사는 일본어에서 매우 폭넓게 나타나며, 국어에도 유입되어 동일한 형태‧의미‧기능으로 쓰이고 있다. 이는 일본어의 문법적 간섭이라 할 수 있다.

   우리말 ‘대하다’에는 ①마주 향하여 있다 ②어떤 태도로 상대하다 ③대상이나 상대로 삼다의 뜻이 있다.(󰡔표준국어대사전󰡕) 그러나 우리말 ‘대하다’는 ①과 ②의 의미 외에 ③의 의미로 ‘~에 대해서’, ‘~에 대하여’라는 활용형으로 잘 쓰이지 않는다. ‘~에’, ‘~에게’라고 격조사를 써야 할 곳에 ‘~에 대해서/~에 대하여’, ‘~에게 대해서/‘~에게 대하여’를 남용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일본어 ‘次の質問に対して答えなさい。’는 ‘다음 질문에 대해 답하시오.’ 보다는 ‘다음 질문에 답하시오.’가 군더더기 없는 우리말 번역이다. 영어 ‘for’, ‘about’, ‘as regards’, ‘regarding’, ‘concerning’, ‘in respect of’ 등이나 일본어 ‘~に対して’를 그대로 옮긴 듯한 ‘~에 대해서/~에 대하여’는 목적어 등 다른 말로 바꾸어주거나 불필요한 경우에는 삭제하거나 자주 쓰지 않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에 대하여’ 외에도 일본식 후치사를 직역한 번역투 표현인 ‘~에 관해서’, ‘~에 있어서’, ‘~에 의하여’, ‘~에게 있어서’ 등도 마찬가지이다.

  「獨島/竹島硏究における 第三の視覺

  ‘독도(다케시마)연구에 있어서 제 3의 시각’

  ➪ ‘독도(다케시마)연구의 제 3의 시각’

   위 예처럼 일본식 후치사 ‘~における’를 우리말에 그대로 옮긴 ‘~에 있어서’는 글의 가독성을 떨어뜨리는 군더더기 표현일 뿐만 아니라 대부분 없어도 의미 전달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 ‘~의’로 바꾸는 것이 간결하고 쉬운 표현이다.


 2. 번역문체 혹은 번역투(飜譯套, translationese)란?

   일상 대화에서 자주 사용해 어법을 크게 벗어나지 않지만 글로 표현할 때 어색하고 의미가 쉽게 전달되지 않는 문장들이 있다. 번역투(飜譯套, translationese)란 우리말에 남아있는 부자연스러운 외국어의 흔적을 말한다. 다시 말해서 어떤 글에서 원문이 아닌 번역문이란 흔적이 일정하게 반복해서 나타나는 경우, 그러한 특성을 번역투라고 한다. 번역투는 번역자가 원문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거나 우리말 구사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나타나게 된다.

  예를 들어 ‘만나다’, ‘모이다’라고 해야 할 것을 ‘만남을 가지다’, ‘모임을 가지다’라고 번역하는 경우는 영어의 ‘have+명사’를 직역한 번역투이다. ‘즐거운 시간을 가지시기 바랍니다’는 ‘Have a good time.’을 직역한 번역투이며, ‘즐거운 시간 보내시기 바랍니다’나 ‘즐겁게 보내시기 바랍니다’가 자연스런 번역이다.

  번역투가 문제가 되는 이유는 본래 우리말이 아니거나 우리말 언어체계에 어긋나거나 우리말답지 않은 표현을 쓰는 탓에 번역의 질이 떨어져 독자의 가독성을 저해하기 때문이다.

  번역투는 한국어의 정상적인 발달과 다양한 표현 기회를 저해하고 한국어 어문구조를 왜곡, 훼손시킨다. 그러므로 번역투는 극복해야할 대상이다.

  그런데 일상생활에서 보고 듣는 많은 말과 글 속에서도 번역투 표현이 많다. 이를테면 대학원생의 리포트나 판사의 판결문, 언론인, 교수, 기자, 문필가들이 쓴 글에서도 번역투 표현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다시 말해 번역투가 단지 번역문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번역문의 영향으로 우리 사회 지식인들이 쓰는 글 전반에 고루 침투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글에서 다루는 번역문체는 일본어 번역문체(일본어 번역투)로 한정하며, 우리말과 글 속에 굳어진 일본식 용어나 일본식 조어(造語) 등 ‘일본어 투’까지 포괄하는 광의의 개념으로 다루기로 한다.

 

3. 개호 ․ 개호음식 ․ 개호하다

 ≪[기자 수첩] 노인이 노인임을 거부하는 시대… 실버푸드, 괜찮을까?≫

  일본은 기존의개호음식’이라는 명칭이 노인들에게 거부감을 일으킨다는 점을 파악하고 2014년 스마일케어식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선정했다. (http://www.kukinews.com/news/article.html?no=632325. 2019.2.16)

  󰡔표준국어대사전󰡕에 ‘개호(介護)’를 검색하면 이렇게 나온다. ‘개호(介護) 명사: 곁에서 돌보아 줌, 동사: 개호하다’ 그러나 ‘개호’는 일본식 한자어 ‘介護(가이고)’를 우리말로 그대로 옮긴 번역투에 가까운 표현이라 볼 수 있다. ‘개호’와 뜻이 같은 우리가 흔히 쓰는 말에는 ‘간병, 간호, 병구완’ 등이 있다. ‘개호음식’과 ‘환자를 개호하다’는 말은 아무래도 낯설다.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있는 말은 아니다.


4. 길어깨 없음? ․ 단차 주의?

  지난 달 청주 쪽에 일이 있어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길어깨’라는 빨간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반신반의했다. 사실 ‘길어깨’라는 어원을 알고 있던 터라 아직도 그런 용어가 쓰이리라고는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도착하자마자 바로 ‘길어깨’부터 검색해봤다. ‘길어깨’는 국어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말인데 산림청 홈페이지에는 아주 친절하게 용어설명까지 곁들여있다.

≪국문 명: 길어깨, 영문명: shoulder of road, 한자명: 路肩≫

  용어설명: 차도에 접속되어 차도의 구조부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치된 부분이다. 또한 길어깨는 차량 주행시의 여유, 시거 확보, 보행자의 통행, 대피 등 여러 가지 목적으로 이용된다. … 중략 …“ (산림청: http://www.forest.go.kr)

  원래 ‘노견(路肩)’이란 말은 일본에서 영어 ‘road shoulder’를 직역하여 쓴 말이다. (영어로 ‘갓길’은 'the shoulder of a road'이나 ‘shoulder’라고만 써도 된다.) 우리는 일본어 ‘노견(路肩)’을 들여와 쓰다가 다시 ‘길어깨’라는 희한한 말로 번역하여 쓰기도 했다.

  일본어 ‘路肩(로카타)’는 ‘길(路)+어깨(肩)’의 합성어로 한자의 뜻을 그대로 가져다 만든 말이 ‘길어깨’이다.

  다행히 1991년 이어령 당시 문화부장관이 ‘길어깨’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갓길’이라는 순우리말을 만들어 지금은 ‘갓길’이라는 말을 쓰고 있다. 일본 한자어 ‘노견(路肩)’을 대체할 수 있는 말로는 ‘갓길’ 외에도 ‘길섶’, ‘길턱’이 있다.

  이왕 말이 나온 김에 ‘길어깨’와 오십보백보인 ‘단차’라는 말도 한번 보자.

  “휠체어장애인의 적, 넓은 지하철 단차

  “1층 출입구 바닥 침하로 인한 단차 발생

  “홍제천 불광천 합수부 인근 단차 주의

  ‘단차(段差)’라는 말도 ‘도로 · 지표 등의 높낮이의 차’를 뜻하는 일본말이다.

  일본에서 ‘단차주의(段差注意)’라는 말은 주로 계단에 높낮이 차가 있거나 출입구에 턱이 있으니 부딪치거나 넘어지지 않도록 주의를 당부할 때 쓰는 말이다.

 ‘단차(段差)’ 역시 국어사전에는 없다. 굳이 어려운 일본식 한자어를 가져다 쓸 필요가 있을까? ‘높이 차’, ‘고저 차’, ‘높낮이 차’ ‘턱’ 등이 뜻도 명확하고 이해하기 쉽다.


  차도와 보도의 단차 차도와 보도의 높낮이 차

  하천 인근 단차 주의 하천 인근 높낮이 주의 하천 인근 바닥 턱 주의

 

5. '와쇼쿠의 진격‘ ․ ‘진격의 거인’

'와쇼쿠'의 진격… 홍대 앞을 통째로 일본풍으로 바꾸다

[일본 대중문화 개방 20년] [下] 한국에 스며든 日流

한국인 입맛 장악한 '와쇼쿠(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1/19/2018111900031.html. 2018.11.19)

 '와쇼쿠의 진격‘은 일본어 ‘和食の進撃’를 그대로 직역한 번역투 표현이다.

 한자어 ‘和食’의 일본어 발음이 ‘와쇼쿠’인데 일본어를 모르면 알 수도 없는 말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 ‘화식(和食)’은 ‘일본의 전통 방식으로 만든 음식이나 식사’로 나온다. ‘일식 혹은 일본 요리’로 이해하고 쓰면 되는 말이다. 게다가 어려운 한자 ’진격(進擊)‘은 적을 치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며 공격한다는 뜻인데 '와쇼쿠의 진격‘은 우리말 어법에도 맞지 않는 말이다.

 ≪‘진격의 거인’… 전기차 제국 꿈꾸는 폴크스바겐

[중앙일보] (https://news.joins.com/article/23304689. 2019.1.20)

  ‘진격의 거인’도 일본 만화책 제목인 󰡔進撃の巨人󰡕을 글자 그대로 직역한 번역투 표현이다. ‘進撃の巨人’을 우리말로 제대로 번역하면 ‘진격하는 거인’ 혹은 ‘거인의 진격’이 맞다.

  일본어 격조사 ‘の’는 한 문장 안에 아무리 여러 번 나와도 부자연스러운 표현이 아닐뿐더러 ‘の’가 빠지면 오히려 품위 없는 말이 된다. 그러나 우리말 관형격조사 ‘의’는 한 문장에 여러 번 나오면 부자연스러운 표현이 되고 만다. 또한 일본어 조사 ‘の’와 한국어 조사 ‘의’는 기능면에서 많은 차이가 있다. 그러므로 일본어 조사 ‘の’를 우리말로 옮길 때 ‘の’는 아예 생략하거나 ‘~의’외에도 ‘~이’, ‘~의 것’, ‘~인’, ‘~하는’ 등으로 우리말 어법에 맞게 적절히 바꿔주어야 한다. ‘만남의 광장’도 ‘出会いの広場’를 그대로 옮긴 번역투 표현이다. 일본어 ‘の’와 한국어 ‘~의’가 일대일대응이 되지 않는 경우를 간과한 번역이다. ‘만나는 광장’이 맞다.

  ‘の’를 열거하는 일본어 문장을 아래 예처럼 우리말로 그대로 옮기면 부자연스러운 번역투 표현이 된다.

   東海小島片ほとりわれ泣き濡れて砂とたわむる。(이시카와 다쿠보쿠石川啄木의 시)

  ⇏ 동해󰄩 작은 섬󰄩 해변가󰄩 한구석에서 혼자 눈물에 젖어 모래와 장난한다.

  ➪ 동해 작은 섬 해변가 한구석에서 혼자 눈물에 젖어 모래와 장난한다.

 

6. ‘손타쿠’

 ≪한국과 단교”日우익 혐한 집회…강제징용 판결에 고개 든 ‘손타쿠’≫ 

(https://news.joins.com/article/23115955. 2018.11.12)

   한자어 ‘忖度’를 일본어로 읽은 말이‘손타쿠’이다. 일본어 사전에는 ‘①촌탁 ②(남의 마음을)헤아림 ③추찰(推察)함’으로 나와 있다. 사전풀이로만 봐서는 좋지 않은 의미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윗사람이 구체적으로 지시를 내리지는 않았으나 눈치껏 알아서 윗사람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좋은 의미는 아닌 듯한데 상황에 따라서는 딱히 나쁜 의미라고만도 볼 수 없는 알쏭달쏭한 말이다.

  ‘손타쿠(忖度)’는 2017년 당시 일본사회 세태를 비추는 말로 많은 사람들에 입에 오르내리면서 큰 화제가 되었다. 그 여파로 ‘2017년 U-CAN(株式会社 ユーキャン Inc.) 신어·유행어 대상’을 차지한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는 ‘촌탁(忖度)’이나 ‘추찰(推察)’같은 어려운 한자를 거의 쓸 일도 없고 잘 쓰지도 않는다. 일본어로도 뜻이 명확하지 않은 ‘손타쿠’를 신문기사에 읽고 이해하는 독자가 과연 얼마나 될지 궁금하다. ‘촌탁(忖度)’을 우리말로 옮기면 ‘알아서 기다’정도일 테다.

 

7. 듣는 이에 불친절한 ‘~적(的)’

 모더니스트적 역사관이 거시적이며 총체적이고, 형이상학적이며 이상주의적이라면, 포스트모더니스트적 역사관은 미시적이며 단편적이고, 실증주의적이며 현실주의적이다.”

 

  “해당 장면의 몇몇 문장에서 유사성이 있더라도 이를 근거로 표절 운운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표절시비에서 다투게 되는 ‘포괄적 비문헌적 유사성’이나 ‘부분적 문헌적 유사성’을 가지고 따지더라고 표절로 판단할 근거가 약하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696359.html#csidx46f22d8e46e136b90bf91f84d436376 2015.6.17)

  한 문장에 ‘~적’이 붙은 말이 무려 열 번이나 나오는 박이문(1999 :119)의 글도 그러하지만, ‘포괄적 비문헌적 유사성’과 ‘부분적 문헌적 유사성’… 몇 번을 읽어봐도 이 말이 너무 낯설고 어려워 도무지 그 뜻을 헤아릴 수가 없다.

  ‘~적(的)’은 일본에서 들어온 말이지만 일본보다 우리가 3배 정도 더 많이 쓴다고 한다. 그 이유는 단연 ‘~적’이라는 말의 조어력(助語力) 즉, 편리성 때문일 것이다.

   이 편리성이 ‘~적’의 가장 큰 장점이기도 하다. 그러나 ‘~적’의 단점 또한 만만치 않다. 일단 ‘~적’이 붙으면 어려워지고 불친절한 말이 되기 십상이다. 또한 말의 뜻이 명확해지지 않는다. 즉 뭉뚱그려질 수밖에 없기에 듣는 이의 입장에서는 모호하고 답답하다.

  요컨대 화자에게는 친절한 말이지만 청자에게는 대단히 불친절한 말이 다름 아닌 ‘~적’이다. ‘~적’이 붙은 말을 되도록 줄여 쓰자고 강조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8. 마치며

  언어생활은 원활한 의사소통과 정확한 의미 전달이 목적이다. 의사소통과 의미 전달이 되지 않는 말과 글은 좋은 말, 좋은 글이라 할 수 없다.

  쉽게 쓰지 못해 어렵게들 쓴다지만 어려운 말과 글도 누구나가 이해하기 쉽게 쓰고 전달할 줄 아는 것이야말로 능력이며 실력이다.

  번역하는 사람으로 한마디 덧붙이자면 번역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원문이 아무리 까다롭고 난해하더라도 독자가 이해하기 쉽고 읽기 편하게 옮길 수 있는 언어구사 능력이 바로 번역능력이며 번역가의 가장 으뜸가는 자질이다.  

Posted by 오경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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