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괄적 비문헌적 유사성’과 ‘부분적 문헌적 유사성”?
요 며칠 신경숙 작가 표절 뉴스로 온라인 오프라인 할 것 없이 시끄럽고 어지럽다.
가뜩이나 메르스로 온 국민의 마음이 무겁고 심란하기 짝이 없는데 이 어수선한 뉴스로
피로와 스트레스가 더욱 가중되는 느낌이다.
스트레스와 메르스 면역력은 반비례한다는 소리를 이제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터라
웬만하면 좋게좋게 넘어가려고 애쓰고 있지만 그게 어디 그리 마음처럼 쉬운가.
출판사가 17일 신경숙 작가 표절 문제에 대해 첫 해명 기사를 내놓았는데 그 새 메르스 학습효과를 잊었는지 초기대응에 실패한 정부나 한 대형병원의 교만한 해명 모습을 그대로 재연하는 듯해 실망스럽고 씁쓸하다.
바라건대 적어도 출판계와 문학계를 대한민국 지성의 보루로 아직은 믿고 싶은 선량한 독자들을 다 떠나보내지 않기를, 아울러 해결 방법이 이 지긋지긋한 메르스의 그것과 쏙 빼닮지 않기를.
나는 번역하는 사람으로서 내 번역의 평가나 가독성 문제는 늘 독자의 판단에 맡기자는 주의다.
이번에 신경숙 작가의 표절 문제를 제기한 이응준 작가도 “한국문학을 사랑하는 모든 독자 분들께서
추상같은 판단을 내려주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밝혔듯이 표절의 시시비비는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두는 게 맞다고 본다.
내가 구태여 이 글을 쓰는 이유는 17일 창비가 해명한 반박 기사 중 여전히 이해가 안 되고 유독 난해한
‘~적(的)’이라는 어투(語套) 탓이다.
우선 창비의 해명 기사를 한 번 더 찬찬히 읽어본다.
“해당 장면의 몇몇 문장에서 유사성이 있더라도 이를 근거로 표절 운운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표절시비에서 다투게 되는 ‘포괄적 비문헌적 유사성’이나 ‘부분적 문헌적 유사성’을 가지고 따지더라도
표절로 판단할 근거가 약하다.” (중앙일보 2015.6.18)
창비의 ‘포괄적 비문헌적 유사성’과 ‘부분적 문헌적 유사성’ 이란 게 대체 무슨 말인가?
나는 이 말이 너무 낯설고 어려워 도무지 그 뜻을 헤아릴 수가 없다.
평소 번역을 하면서 또 번역수업을 하면서 학생들에게 가능한 한 ‘~적(的)’ 사용을 줄여 쓰자고 강조하는
선입견 혹은 습관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본디 ‘~적(的)’이란 일본 메이지 초기(메이지 5년인 1873년) 때 영어의 형용사를 만드는 접미사 ‘~tic'의
번역어로 중국에서 처음 들여다 쓰기 시작하였는데 그것을 우리가 다시 일본에서 들여다 쓰는 말이다.
일본에서 들어온 말이지만 일본보다 우리가 3배 정도 더 많이 쓴다고 하니 그 이유는 단연 ‘~적(的)’이라는
말의 조어력(助語力) 즉, 편리성 때문일 것이다.
이 편리성이 ‘~적(的)’의 가장 큰 장점이기도 하다. 그러나 ‘~적(的)’의 단점 또한 만만치 않다.
일단 ‘~적(的)’이 붙으면 어려워지고 불친절한 말이 되기 십상이다. 또한 말의 뜻이 명확해지지 않는다.
즉 뭉뚱그려질 수밖에 없기에 듣는 이의 입장에서는 모호하고 답답하다.
요컨대 화자에게는 친절한 말이지만 청자에게는 대단히 불친절한 말이 다름 아닌 ‘~적(的)’이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많이들 쓰고 듣는 ‘사회적 기업’이란 말에서 ‘사회적’이란 뜻이 분명하게 이해되는가?
정확하게 한 단어로 설명할 수 있는가?
또한 “요즘 메르스 때문에 육체적, 정신적으로 아주 힘들다.”라는 말과 “요즘 메르스 때문에 몸과 마음이
힘들다.”라는 말 중 어느 쪽이 쉽게 와 닿는가?
아래 표현들은 어느 쪽이 듣고 말하기에 수월한가?
노골적으로 ➪ 드러내놓고 / 일시적으로 ➪ 한 때
대대적으로 ➪ 크게 / 폐쇄적 사회 ➪ 닫힌 사회
우리말에서나 번역과정에서 불필요한 ‘~적(的)’을 없애면 간결하고 뜻이 명확해져 이해하기 쉬운 표현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뜻이 모호할뿐더러 듣는 이에게도 친절하지 않은 ‘~적(的)’이 붙은 말을 되도록 줄여 쓰자고 강조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언어생활은 원활한 의사소통과 정확한 의미 전달이 목적이다. 의사소통과 의미 전달이 되지 않는 말과 글은 좋은 말, 좋은 글이라 할 수 없다.
쉽게 쓰지 못해 어렵게들 쓴다지만 ‘~적(的)’이란 말을 쓰면 쓸수록 좋은 글과 가독성에서는 점점 더 멀어져 간다.
‘포괄적 비문헌적 유사성’과 ‘부분적 문헌적 유사성’이라 ……
나는 아직도 이 말의 뜻을 정확하게 해독할 수가 없다.
내 모국어가 어려운가, 아니면 여전히 내 모국어 실력이 문제인가.
(2015. 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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