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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1.24 비상호출에 바디랭기지 일대일 면담
  2. 2015.01.24 Slow Starter(늦깎이)의 즐거운 두 번째 도전, 일본어 공부

도노야마소학교(塔山小学校) 교장선생님의 비상호출과 바디랭기지

 

큰아이가 집근처 도노야마소학교(塔山小学校)에 입학했을 때다. 유치원을 6개월 정도 다니고 난 후라 딸아이는 유치원 친구들과는 어느 정도 의사소통은 가능했지만 또래 일본인 초등학교 입학생들에 비하면 언어도 그러하지만 낯선 환경에서 날마다 맞닥트리는 새로운 문화충돌 등 여러 면에서 미흡하고 마음이안 놓였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일본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유치원을 졸업하고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경우라도 새로 입학하는 아이 당사자뿐 아니라 학부모들도 하루아침에 뒤바뀐 낯선 환경에 혹시 적응을 잘 할 수 있을까 걱정하고 긴장하기 마련인데… 하물며 어느 날 갑자기 부모 따라 일본에 건너와 6개월 만에 달랑 일곱 살 난 어린아이가 외국인이라곤 전혀 없는 일본 초등학교에 일본인 아이들과 나란히 입학하게 되었으니 불안하고 초조했을 심리상태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그러나 사실 딸아이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그 당시는 서툰 내 일본어 탓에 내가 더 불안하고 긴장한 나머지 우선 내 언어 문제가 급선무였기 때문에 딸 아이 심리상태를 운운할 겨를조차 없었다. 그날 입학식이 끝나고 우리나라 초등학교 입학식 풍경처럼 배정된 교실로 담임선생님 뒤를 쫓아 아이들과 학부모들이 따라 들어갔다. 담임선생님과 입학생들과 학부모들의 공식적인 첫 상견례 분위기가 이어졌다. 첫 삼자대면이 끝나고 교실 문을 나서는데 나이 지긋한 남자 선생님께서 우리아이 이름을 부르면 나를 찾았다. 교장선생님의 비상호출이란다.


우리아이 성(姓)이 '이(李)'인데 처음 일본에 갔을 때 ‘이’라고 해도 되는 것을 ‘리’라고 발음했더니 그때부터 우리 아이 성은 ‘리’가 되어 ‘리상(リさん)’으로 불렸다. 우리 애들은 지금도 애초에 성(姓) ‘李’를 ‘이’로 하지 않고 ‘리’로 한 것에 불만이 많다. 중국사람 성에도 ‘이(李)’가 많다는데 일본에 거주하는 중국 사람들의 경우 이름의 성씨 ‘李’는 대개 ‘리’로 발음한다고 한다. 따라서 한자는 같은 모양이라도 ‘李’를 ‘리’라고 하면 중국인으로 착각하기 쉽기 때문이다.


아무튼 영문도 모른 채 우리 애와 나는 교장선생님이 기다리는 맞은 편 복도 쪽으로 다가갔다. 교장선생님 말씀이 무슨 내용인지 백 프로 이해하지도 못했지만 눈치로 알아차린 호출 요지는 대략 이랬다.

도노야마소학교(塔山小学校)에 여태껏 외국인이 입학한 적도 없고 한국인 입학생도 이번이 처음이다. 일본에 온 지도 얼마 안 되었다고 들었는데 수업을 따라갈 수 있을지 염려가 된다. 특히 1학년 신입생이고 학기 초라 학교에서 가정으로 보내는 통신문이나 연락사항 등도 많을 거고 수업이나 급식 관련 준비물 등 이것저것 많을 텐데… 이러한 모든 수업이나 학교행사 관련 일정을 모두 일본어로 공지할 텐데 ‘리상(李さん)’이 별 문제가 없는지, 그리고 ‘리상’의 어머니가 일본어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대응할 수 있는지를 파악하고 입학허가를 재고하고 싶다는 취지였다.


교장선생님의 말씀을 대충 이해는 했다. 하지만 “나는 아직 일본어가 서툴지만 앞으로 일본어 공부를 열심히 할 거고 우리 애는 그럭저럭 따라가며 적응을 잘할 테니 그다지 걱정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내 의사를 분명하게 전할 수 있는 일본어 실력도 안 되었거니와 긴장한 나머지 나와 우리 딸아이는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인사를 하면서 “요로시쿠 오네가이시마스! 요로시쿠 오네가이시마스!(잘 부탁드립니다)”만 반복하고 말았다.


결국은 교장선생님이 예전에 학교 일로 알게 된 재일코리언에게 급히 연락을 취해 우리에게 소개시켜주면서 무사입학으로 일단락되었다. 그 당시 소개받은 재일코리언 문상(文さん)과는 그 때 그 인연으로 우리가족이 일본에서 지낸 5년 동안 크고 작은 많은 도움을 주었다. 나는 문상과 문상 아이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주었고 문상은 나와 우리 아이들에게 일본어뿐 아니라 일본인과 일본사회, 일본문화 등에 대해 시간 날 때마다 찾아와 가르쳐 주곤 했다. 그 당시 문상에게는 참 많은 신세를 졌지만 그러한 인연으로 지금까지 서로 왕래하며 잘 지내고 있다.


내가 모르면 답답하고 사는 게 불편하다.

모르면 물어봐야 한다. 물어보는 것을 부끄러워하면 안 된다.

내가 먼저 다가가 물어보지 않으면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고 먼저 알려주지 않는다.

어제와 다른 오늘의 나를 발견하기 위해 끊임없이 질문하는 것이 공부다.

공부는 학자나 박사가 되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다.

사는 데 답답하지 않기 위해서, 불편하지 않기 위해서 한다.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을 살기 위해 하는 것이 공부다.

어제 몰랐던 사실을 오늘 깨닫는 즐거움, 이것이 공부의 즐거움 아닐까.

 

생각지도 못했던 도노야마소학교(塔山小学校) 교장선생님의 느닷없는 호출로 졸지에 이루어진 일대일 면담은 바디랭기지로 걱정 반 기대 반으로 그럭저럭 마무리는 되었지만, 그 날 이후 한국인 ‘리상 ’가족은 교장선생님부터 학교 모든 선생님들의 도움과 관찰이 요구되는 ‘시선 집중’ 대상 제1호가 되었다. 

Posted by 오경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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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 공부 시작은 유치원 연락장


일본에 온지 6개월이 지난 후 큰 아이는 구립유치원을 졸업하고 집 근처 도노야마소학교(塔山小学校)에 입학했고 작은 아이는 집 맞은편 골목 안쪽에 있는 자그마한 우에노하라(上ノ原) 교회 유치원에 입학했다.


작은 아이가 들어간 사립유치원은 4살 참새반, 5살 토끼반, 6살 기린반 이렇게 세 반이 있었는데 그 중 작은 아이는 나이가 제일 어려 일단 참새반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런데 최연소반인 참새반은 9시 반에 시작해서 11시 반에 끝났다. 유치원에서 지내는 시간은 달랑 2시간인데 유치원에 보내려고 아침에 깨우고 씻기고 먹이고 입히고 준비하느라 난리법석을 치르며 헐레벌떡 유치원에 자전거로 데려다주고 집에 돌아와 한 숨 돌리며 겨우 차 한 잔 마시고 나면 다시 데리러 가야할 시간이 되었다.

고만고만한 아이 둘을 데리고 낯선 땅에서 생활하면서 본격적으로 일본어 공부를 시작하기란 생각만큼 그리 쉽지 않았다.


일본어 공부를 위해 나만의 오롯한 시간을 갖는다는 게 일단 무리였다. 아이들 삼시세끼도 해줘야 하고 유치원이 끝나고 아이들끼리 약속해 친구 집에 놀러가거나 하면 품앗이처럼 다음번엔 반드시 우리 집에 아이들을 데려와 놀려야했다. 친구 집에 놀러 가면 자전거로 데려다 주어야 하고 다시 데려오는 것도 일이이라면 일이었다.

공부는 좀 해야겠는데 좀처럼 묘안이 없어 마음만 급해져갔다.


그런데 아이 유치원 담임선생님께서는 그날그날 유치원생활이나 놀이, 친구관계 등을 적어 부모에게 알려주고 부탁도 하는 ‘연락장’이 있었는데 특히 우리 아이는 외국인이라 신경이 더 쓰였던 건지 거의 매일 일기장처럼 그림까지 그려가며 세세하게 기록한 연락장을 아이에게 보내주곤 하셨다.

선생님께서 연락장을 친절하게 써서 보내주면 내가 읽고 뭔가 간단하게나마 답을 해야 도리인데 내 일본어로는 감사의 마음을 십분의 일도 표현할 수가 없었다.


그 때부터 일한, 한일사전을 꺼내놓고 일본어와 씨름을 시작하였다.

당장 해야만 했고 꼭 필요했기 때문에 안할 수도 미룰 수도 없는 일이 연락장에 날마다 답장을 쓰는 것이었다.

날마다 조금씩 서투르면 서투른 대로 연락장을 써가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생활 한가운데서 일본어는 그렇게 필요에 의해 몸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아이가 유치원에 다니는 3년 내내 선생님과 내가 주고받은 연락장을 펼쳐보면 이십여 년 전 정성스럽게 아이들을 보살펴주던 선생님들의 자상한 눈빛이 떠올라 지금도 고마움에 감탄하고 또 감탄하게 된다.

한 자 한 자 마음으로 꾹꾹 눌러가며 연락장을 써주신 그 옛날 고마운 선생님들의 아름다운 마음과 모습을 다시금 그려보면서 자칫 흐트러지기 쉬운 내 마음을 다잡게 된다.


행복이란 늘 내 곁에 누군가가 함께 있는 것이다. 우리 곁에 함께 있어주었던 선생님들과 일본인 친구들 덕분에 이십 오년 이상이 훌쩍 지난 지금 우리가 받은 최고의 선물인 행복감을 만끽하면서 그들과의 고마운 인연이 새삼 그리워진다.

 

 

 

 

         (2015.1.24)

Posted by 오경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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