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는 논문으로 말한다? 


근래 들어 대학에는 시간강사란 명칭이 점차 사라지면서 겸임교수, 객원교수, 초빙교수, 연구교수, 강의전담교수, 연구전담교수, 산학협력 전담교수 등으로 바뀌는 추세다.

대학 시간강사 임용은 대개 교수 개개인의 친분이나 교수추천이나 소개, 지도교수 연구실 내 선후배 기수별 등 딱히 정해진 기준 없이 알음알음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혹은 박사를 졸업하면 학과에서 일정 기간 일률적으로 강의를 배정해주는 대학도 있다. 내 경우도 학위 취득 후 3년간 일본어 교양과목과 전공과목 강의를 자동 배정받았다.

 

그러나 이런 제도도 10년 전 얘기고 요즘은 학교마다 학과마다 차이는 있겠으나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 2018년 기준 전국의 시간강사 수는 약 7만6000명 정도다. 2012년에 약 11만 명 정도였던 시간강사 수는 해마다 1만 명씩 줄어들었는데 2018년 약 7만6000명 통계는 2012년 대비 31% 줄어든 수치다. 감소 이유는 시간강사법 제정 등으로 법이 시행될 줄 알고 대학들이 미리 강사를 대거 줄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2019년 8월 시간강사법이 시행되면 전임 교수 강의는 늘리고, 수강생 적은 강의는 합치고 시간강사를 대량 해고할 움직임마저 있어 대학가는 시간강사 문제로 큰 요동칠 듯싶다. 대학 재정난 때문이다. <시간강사법의 역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1/13/2018111300784.html)>

 

대학 일어일문학과를 예로 들면 최근 국내외 박사학위 취득자는 증가했는데 대학에서 일어일문학을 전공하거나 제2외국어로 선택하는 학생 수는 점차 줄어드는 추세다. 시간강사법 시행 이전인데도 대학 시간강사 수는 이미 반 이하로 줄었다.

 

그래서 앞으로는 시간강사 임용도 강의평가, 논문 편수, 저역서 실적, 학술활동 업적, 취업성과, 학과 및 학교발전 기여도, 산학협력 실적 등을 반영하며 공채로 선발하고 연봉제로 간다는 둥 설이 분분하다.

 

우리나라 대학에서 거의 모든 분야의 학문은 오로지 논문으로 평가받고 논문심사에 통과해야 박사학위를 받는다. 박사를 취득하면 해당 분야 전문가처럼 인식된다. 즉 ‘박사학위=전문가인증서’ 격이다. 우리나라에서 대학교수가 되려면 전공불문 거의 백 프로 박사 학위가 있어야 한다.

 

가수는 노래실력으로 인정받고 화가는 그림실력으로 평가받는 게 마땅하지만 노래실력이 뛰어난 가수가 후학양성을 위해 대학교수가 되려면 반드시 논문을 써야 한다. 실력과 재능 있는 화가도 마찬가지다. 대학에 몸담으려면 박사논문이 필수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대학이 이렇다.

 

탁월한 실력으로 대중으로부터 이미 그 분야 전문성을 인정받고 있는 가수나 화가나 연주가나 장인도 박사학위가 없으면 대부분의 대학에서는 해당 분야 전문가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 우리 대학의 실정(현실)이다.

 

일반 학회투고 연구논문 한 편을 쓰는 데도 짧게 잡아도 대략 6개월 정도 걸리는 판인데(내 경우는 그렇다) 박사논문을 쓴다는 건 하던 모든 일 다 제쳐두고 몇 년간을 오직 논문에만 올인해야 하는 결단과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된다. 결코 만만한 작업이 아니다.

마음만 앞서고 요령을 부리다가는 자칫 표절, 자기복제, 중복게제, 논문철회 등 논문 관련 불미스러운 문제에 휘말리곤 한다. 그럴 바엔 차라리 안 쓰느니만 못하다.

 

어쨌든 교수임용에 최우선 필수 요건은 단연 논문편수와 저역서 편수다.

그러나 아무리 수준 높은 논문을 많이 써서 국내외 저명 학술지에 게재되었다 쳐도 5년이 지난 논문은 전혀 별 볼일이 없다. 한 마디로 5년이 지난 논문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대개 대학교수 임용에 지원한다거나 연구재단에 연구 과제를 지원하는 경우 지원당시를 기준으로 ‘5년 이내의 논문과 저역서 편수 및 특허’만을 업적으로 인정한다. 이들만을 점수로 환산해 연구업적 점수를 매기고 업적 평가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한국연구재단에서 연구자 연구업적을 산정하는 방식은 이렇다.

▪ 업적산정기간: 2014년 1월 1일부터 신청 마감일 현재까지

(신청 마감일이 2019년 1월 1일인 경우)

▪ 논문: 한국연구재단 등재학술지・등재후보학술지 또는 SCI(E), A&HCI・SSCI, SCOPUS

등재지에 게재된 논문은 업적 1편

※ 공동저자(공동저자 수와 무관)로 참여한 논문도 업적으로 산정 가능

▪ 저서・역서: 단독 저작 1건은 업적 3편, 공동 저작 1건은 업적 2편

▪ 특허: 특허 1건은 업적 1편

 

분야 불문 논문의 질적 수준보다 논문 편수로 학술활동 실적점수를 매기고 논문실적 양이 교수임용 평가에 최우선되는 학계 분위기는 한 번쯤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박사취득 후 반드시 대학교수가 되고 말겠다는 요량이라면 임용 전까지는 계속 논문을 쓸 수밖에 없다. 밥 먹고 논문만 써야한다는 얘기다.

 

대단한 논문은커녕 허접한 논문 한 편 쓰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논문을 쓰려면 전공분야나 논문주제에 따라 다르겠지만 우선 주제관련 실험을 하거나 앙케이트 조사도 필요하고, 일정기간의 통계수치 자료나 데이터분석이 필요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주제관련 기존 선행연구도 다 읽어내야 한다. 내 경우는 주로 ‘일한 번역의 이론과 실제’ 관련 연구라 원문과 번역문을 일일이 대조해가면서 용례를 고찰, 입력, 분석하고 데이터베이스화 작업을 해야 한다. 논문 쓰기 전 이러한 기초 작업만도 짧게는 2~3달에서 길게는 몇 년이 걸리기도 한다. 기초 작업이 완성되면 본격적으로 논문을 쓴다. 


내 경우 논문작성에 평균 1~2달 걸린다. 논문작성이 다 끝났어도 학회에 발표도 하고 학회지에 투고하여 심사위원 2~3인의 심사를 받고 통과해야 학회지 게재가 확정되고 학회지에 실린다. 그 과정도 1달 이상 길게는 2달이 소요된다. 그런데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다. 내 논문이 실린 학회지가 한국연구재단 ‘등재학술지 및 등재후보학술지‘인지 ‘미등재학회지’인지에 따라 실적평가가 다르다. ‘미등재학회지’에 실린 논문은 논문편수로 인정해주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게다가 번역서 경우는 연구업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번역서는 전문학술서 번역서만 그것도 부분적으로 업적으로 인정하고 오히려 대중들이 많이 읽는 외국 교양서적, 문학서적, 문화서적, 자기계발서적 등은 학술실적은커녕 기입란조차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

 

교수와 강사, 연구자가 널리 이용하며 취업 및 임용정보도 알 수 있는 포털사이트 ‘하이브레인넷(hibrain.net)’ 대화방에 번역과 관련된 글이 올라온 적이 있다. (12.11.28)

 

《“학술번역서는 왜 교수임용에 홀시되고 있는지 안타깝다

한 권의 학술번역서를 출판하기 위해서는 통상 2~3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한 권의 저서나 역서를 내기 위해 백 권 이상의 다른 분의 번역서나 연구서를 읽고 있다. 학술번역서가 학술논문보다 몇 배의 공력이 들어간다.  

…(중략)…

그런데 지금껏 교수 임용에는 학술번역서가 대다수 홀시되고 있다. 아니 아예 쓰는 난이 없는 경우도 있다. 독자가 100명도 안 되는 논문이 더욱 중요시된다.”》

 

번역하는 사람으로서 번역작업 및 번역서에 대한 학계의 인식은 개선되어야 마땅하고 심도 있는 논의도 필요하다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의견을 내지만 이 문제에 적극 나서는 사람은 거의 없다.

 

다시 논문작업으로 돌아와서 아무튼 인문학 논문 1편 실적을 올리려면 학회지 게재완료까지 아무리 빨리 부지런히 써도 꼬박 6개월 정도 걸리는 셈이다.

 

움베르토 에코는『논문 잘 쓰는 법』에서 “무엇에 대해 논문을 쓴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 미처 보지 못한 것을 내가 볼 수 있는가 내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제대로 된 논문 하나 쓰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논문실적이 많다고 교수임용을 보장받는 것 또한 아니다.

전공분야 실력과 강의능력도 인정받으며 전문분야 영역을 뛰어넘어 폭넓은 교양까지 겸비한 연구자들도 많고 논문 실적을 꾸준히 내면서도 미래를 불안해하는 박사들 역시 수두룩하다. 이들 중엔 정기적 의무적으로 세상에 내놓아야 하는 학술논문 생산 작업이 도저히 적성에 맞지 않아 교수임용에 목을 매느니 차라리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가는 자유로운 실력파 학자들도 내 주변엔 꽤 있다.

 

그러나 연구에 게으르지 않고 전문분야 경쟁력을 쌓아가면서 묵묵히 제 할 일을 하며 성실하게 살아가는 이들을 세상은 알아보게 되어있다. 어느 분야에서나 겸손과 실력과 공부가 가장 큰 경쟁력이다.

대개 이런 사람들은 교수든 뭐든 적기(適期)를 만나면 열심히 잘할 이들이다. 끊임없이 연구하고 대중과 소통하면서 사회를 향해 쓴 소리를 마다않는 이러한 학자들이 많아야 학계가 발전하고 사회도 건강하다. 학계 쪽에서는 간혹 경계와 배타의 대상이 되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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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살이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세상은 내가 발로 뛰며 땀 흘린 만큼만 내 손에 들어온다.

내 의지로 선택한 지금 내 생활이 만족스럽다면 행복한 길을 가고 있는 거다.

나의 선택은 여태껏 내가 걸어온 과정의 축적이자 이런저런 혹독한 체험의 결과이다.

 

그저 편한 인생이 즐거운 인생은 아니다.

 

내 주위엔 크고 작은 불편과 어려움을 자초하면서도 자유롭고 즐겁게 사는 청춘들이 많다.

그들을 만나면 덩달아 신바람이 난다.

열정도 전염된다.

 

검정고시로 K대 법대에 들어와 학부 재학 중 치른 사법고시 2차 시험에서 불과 몇 점 차로 아쉽게 기회를 놓친 S양. 일본 아이돌 가수 아라시(嵐)를 좋아한 덕에 일본어에 취미를 붙여 일본어 공부에 올인하더니 지금은 일본어 강사와 법학공부를 병행하면서 일어일문학과 대학원까지 진학하였다. 그녀의 열정, 몰입감은 알아줘야 한다. S양의 내일이 기대된다.

 

두 군데 학부를 졸업한 K양. 영어와 일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보기 드문 어학 능력자라 할만하다. 일본어능력시험(JLPT) 만점이라는 기가 막힌 이력에 번역 능력도 출중하여 번역가의 길을 걷는가 했더니만 몇 달 만에 그 어렵다는 공항 출입국 관리직 공무원 시험에 턱 하니 합격하여 나타났다. 인천공항에서 근무 중이란다. 공항 나갈 일이 기다려진다.

 

사이버대학 온라인강의로 만났으나 J군과는 뭔가 통하는 게 있었나보다. 교내 특강이 있는 날이면 엄청 비가 쏟아지던 날에도 인천에서 득달같이 달려오더니, 아이 돌잔치 날에도 강의실 맨 앞자리에서 고개 내밀곤 하던 J군. 주경야독의 본을 제대로 보여준다. 아니나 다를까 올 겨울 일반대학원시험에 합격했단다. 세상에나 그것도 두 군데나. 세 아이 아빠로서 또 가장으로서 ‘아재력(力)’의 끝은 어디일지, J군의 배움의 열정, 종착역은 어디일지 벌써부터 흥미진진하다.

 

수년 전 세미나실 가득 메운 통번역대학원생 대상의 특강을 기분 좋게 마치고 여느 때처럼 Q&A 시간이었다. 맨 뒤에서 한 여학생이 손을 들었는데 손만 보이고 모습은 잘 보이지 않았다. 가장 뒤쪽이라 질문 내용이 잘 들리지 않자 그 학생은 세미나실 뒷문을 열고 복도를 지나 강의실 앞문을 열고 내 쪽으로 들어왔다. 휠체어를 탄 환한 미소가 인상적인 얼핏 보기에도 예의바른 학생 K양이었다. 지도교수 말로는 일본어 통역과 번역에 소질이 뛰어난데 휠체어 탓에 통역부스에 들어갈 수가 없어 번역을 전공한다고. 첫 질문자라는 사실도 박수 받아 마땅하지만, 한 시간 남짓한 강의를 들으러 부산서 KTX를 타고 왔단다. 그날은 추적추적 비까지 내려 그 멀리 부산에서 서울 신촌에 있는 캠퍼스까지 휠체어 통행이 여간 어렵지 않았을 텐데. 이럴 수가. 이런 감동이 또 없다. 어쩌다 문득 K양이 궁금해질 때가 있다. 아니나 다를까 2013년 어엿한 번역가로 짠~하고 데뷔를 했다. 내게도 처녀작 번역서를 보내줘서 알았다. 감개무량하고 고맙다. 그날은 내가 K양에게 ‘인생 감동’ 특강을 들은 날이기도 하다.

 

K대 법대 대학원 계절학기 강의 중에 있었던 아직도 생생한 M군에 관한 에피소드 하나.

대학원 졸업시험에 필수인 제2외국어 시험이 있는데 70점 이상을 받아야 졸업자격이 주어진다. 내가 강의할 때는 독일어나 불어를 선택하는 학생들도 가끔 있었으나 대개 일본어나 중국어를 선택하는 학생들이 다수였다. 대학원 다니는 학교 교사나 직장인들도 수강하므로 수업은 저녁 6시 반부터 시작했던 것 같다. 졸업 필수과목이라 학생들 눈빛이 절절했다. 한창 수업 중이었다. 

M군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강의실 뒤편으로 나가더니 양쪽을 왔다 갔다 서성댔다. 순간 내 수업에 불만이 있는 건가. 재미가 없어서인가 했다. M군의 행동에 신경이 안 쓰일 수 없는 터라 내가 살짝 물었다. “M군 수업이 지루하면 그냥 나가도 됩니다.” “교수님, 오늘 과제 제출하느라 날밤을 샜거든요. 일본어 공부는 재미있는데 너무 졸려 도저히 어떻게 해 볼 재간이 없어서 수업은 들어야겠고 해서 잠을 쫓느라 왔다 갔다 하면서 듣고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이 글을 쓰면서 M군을 검색해보니 변호사로 뜨는데 출신대학도 그렇고 아마 이 변호사가 M군이리라. 그 날 이후 학생들에게 강의 중 졸리면 강의실 뒤편으로 나가 왔다 갔다 하면 잠이 달아날 거라고 일러주며 어김없이 저작권자 M군 이야기도 곁들인다. 이렇게 내가 M군 이름을 들먹거리는 것을 M군이 알면 좋아할까. 싫어할까. M군은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이나 할는지.

 

꽤 오래 전 얘기다. 2001년 석사과정을 무난히 졸업하고 교양일본어 과목으로 학부 첫 강의를 K대에서 시작했다. 그 땐 큰 강의실이 몇 십 명씩 꽉꽉 들어찰 정도로 일본어 인기가 꽤 좋았을 때였다. 교양일본어라 타학과 학생들도 많았다. 가끔 수업시작하자마자 헐레벌떡 뛰어 들어오는 헌칠한 남학생이 있었다. 늦게 들어오더라도 늘 비어있는 맨 앞의 중앙 자리까지 와서 앉고 했다. 이따금 수업 중 졸 때도 있었지만 수업이 끝나면 칠판을 말끔하게 지우고 뒷정리까지 하고 내게 깍듯이 배꼽인사를 한 뒤 교실을 나갔다. 한 번은 착하고 기특한 마음에 커피 한 잔하며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아르바이트로 밤에 택시운전을 하고 있단다. 그 위험한 야밤 총알택시 알바라니… 집안이 어려운 모양이었다. 그래서 수업 중 졸아서 죄송하다며 연거푸 고개를 숙였다. 


그 후 종강도 하고 기억도 옅어져 가던 어느 날 Y군에게서 장문의 메일을 받았다. 가톨릭 사제의 길을 가겠노라고. 오래 전부터의 결심이라며 선생님께 꼭 말씀드리고 싶었다면서. 충고나 조언을 구하는 것이 아닌 속세와의 거리두기, 단절 통고였다. 20대 꿈 많고 호기심 많은 푸르디푸른 청춘이 이 세상 인연을 다 뒤로하고 떠난다니. 왜 그랬을까. 이유를 물어볼 수 없었고 다시 한 번 생각해보라는 말조차 건넬 수 없었다.


그렇게 세상의 시시콜콜한 인연과 쿨하게 떠나간 뒤 몇 해가 지난 어느 날 Y군의 소식을 들었다. 독일 유학 온 지 5년이 넘었고 독일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고. 꿋꿋이 사제의 길을 가겠노라고.

오랜 세월 끊어질듯 이어지며 만날듯 만나지 못하고 잊혀질듯 잊혀질 리 없는 Y군. 또 언제 상상 이상의 새로운 소식으로 나를 놀래킬는지. 먼 훗날 다시 만난다 해도 20대 청춘시절 Y군이 선택한 인생, 그 이유와 사연은 차마 다시 물을 수 없을 것 같다.

 

대개 우리는 아무런 제약이나 장애물이 없을 때 자유롭다고 느낄 듯싶으나 실은 구속과 통제의 틀 속에 있을 때 오히려 자유롭다, 요컨대 ‘자유로움의 역설’이다.

 

“나의 자유는 좁은 틀 안에서 내가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달려 있다. 내 행동 반경을 좁게 하면 할수록, 더 많은 장애물로 나를 에워쌀수록 나는 더 자유로워진다. 그리고 그 때 내 자유가 더 커지고 의미가 깊어진다. 나에게 더 많은 제약을 가할수록 내 영혼을 옭아매는 사슬로부터 더 자유로울 수 있다.”  『언어 사중주, p.255』

 

항상 새롭게 변화할 때만이 자유로울 수 있다는 말일 테다.

새로운 변화를 위해서는 일정 시간 고단함을 견뎌내고 지속적인 자기관리와 노력하는 자기제어가 필요하다.

 

그렇다. 진정한 자유란 변화를 꿈꾸는 이들처럼 자신의 꿈과 목표에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면서 느끼는 크고 작은 새로운 성취감이 아닐까.

 

인생은 꿈과 희망을 등에 지고 걸어가는 여행길이다.

 

결코 편한(楽) 인생이 아닌 즐거운(楽しい) 인생을 살아가는 아름다운 청춘들이다.

 

(2017.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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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언어 사중주』에서 김재준은 화가 이강소의 전시회 서문을 쓰면서 러시아 작곡가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의 시학(The Poetics of Music)]에 나오는 구절을 인용하였다.  위 글은 김재준이 인용한 구절의 일부를 재인용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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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와 일본어는 미묘한 삼각관계(微妙な三角関係)

 

일본어 관련 책을 읽다보면 심심찮게 이런 말을 보게 된다.

“일본어를 공부하기에 한국인은 축복받았다”, “일본어도 쉽지만 일본인은 더 쉽다”, “일본어는 조금만 노력해도 잡힌다”, “워킹홀리데이 3개월로 일본어 완전정복”, “일본어 한 권으로 끝낼 수 있다”, 한국인이 가장 쉽게 배울 수 있는 외국어는 일본어” 등등.

만사 제쳐놓고 당장 저자에게 달려가 그 비법을 듣고 싶다.

 

수많은 탈모개선치료제가 나왔어도 여전히 탈모를 이겨 냈다는 신약이나 치료제는 못 들어봤듯… 25년 이상 거의 매일 일본어와 생활하며 일본어로 먹고 사는 나도 가끔은 이런 말에 혹할 때가 있다. 과연 그럴까? 한국인에게 일본어는 정말 쉬운 언어인가?

 

산케이 신문사 편집장을 거쳐 평론가로 활동하는 오노 도시아키(大野敏明)가 쓴 책『일본어와 한국어(日本語と韓国語)』를 보면 흥미로운 대목이 나온다.

 

일본인들에게 한국어 공부는 ‘웃으며 들어가 웃으며 나온다(「笑って入って笑って出る」)’ 즉 도전해볼 만한 몇 안 되는 언어 중 하나란 얘기다. 중국어 공부는 ‘웃으며 들어가 울며 나온다(「笑って入って泣いて出る」)’. 요컨대 처음 시작은 재미있을지라도 하면 할수록 어렵다는 말이다. 그에 비해 영어, 프랑스어, 러시아어 공부는 ‘울며 들어가 웃으며 나온다(「泣いて入って笑って出る」)’. 처음엔 어렵더라도 어느 정도 지나면 쉬워진다는 말이다. 그런데 외국인들에게 일본어 공부란 ‘울며 들어가 울며 나온다’ 혹은 ‘울며 들어간 채 영영 못나올 수도 있다(「泣いて入って泣いて出る」あるいは「泣いて入ったきり出られない」)’.

일본인이 생각해봐도 외국인이 일본어 배우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격하게 공감한다.

 

오노 도시아키(大野敏明)는 일본인들에게 한국어 공부는 ‘웃으며 들어가 웃으며 나온다’고 말한 한 가지 예로 한자를 들었다. 음독이나 훈독 혹은 예외로 독특하게 읽는 일본 한자와 달리 한국 한자는 1字 1音 원칙(한자 한 글자에 한 가지 음으로 발음)으로 훈독이 없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생(生)’이란 한자를 한국 한자로 읽으면 ‘생’ 하나로 끝나지만, 일본 한자의 경우 음독이 3가지, 훈독이 9가지, 음독도 훈독도 아닌 예외로 특별하게 읽는 경우가 무려 67가지나 된다. 혹은 그 이상일 수도 있다. 이렇다 보니 일본 한자 읽기가 일본인한테도 어려운 모양이다.

영미권 사람들에게 가장 배우기 어려운 언어 2위, 3위, 4위가 한자문화권인 중국어 일본어 한국어가 싹쓸이 하는 것을 보면 역시 한자 탓일 게 분명하다.

 

한국어와 일본어에 대해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미묘한 삼각관계(微妙な三角関係)’라 답하리라.


‘미묘한 삼각관계’를 일본어로 발음하면 ‘비묘나산카쿠칸케(微妙な三角関係)’이다.

‘고속도로는 무료다’를 일본어로 발음하면 ‘고소쿠도로와무료다(高速道路は無料だ)’이다.

언뜻 들으면 거의 비슷하게 들리지만 미묘한 차이가 있다. ‘미묘한 삼각관계’라 하는 이유이다.

 

한국어와 일본어가 대체로 비슷하게 들리고 보이는 구석이 많다는 데 방점을 두느냐 혹은 비슷한 것 같아도 찬찬히 들여다보면 미묘한 차이가 있으므로 주의하지 않으면 낭패를 보기 쉽다는데 방점을 두느냐에 따라 갈린다고 본다. 전자에 방점을 두면 ‘일본어는 쉽다’할 것이고 후자에 방점을 두면 ‘일본어는 어렵다’할 것이다.

 

한국어와 일본어는 비슷한 구석이 참 많다. 맞는 말이다. 아예 발음이 거의 똑같은 말도 상당히 많다. 아래 한자들이 그렇다. 한국어인지 일본어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니 “일본어를 공부하기에 한국인은 축복받았다”라고 할 만하다. 이러한 예를 들자면 얼마든지 많다.


  한국어 / 일본어

  무리 /무리(無理)

  무시 / 무시(無視)

  온도 / 온도(温度)

  사기 / 사기(詐欺)

  분산 / 분산(分散)

  안심 / 안심(安心)

  가구 / 가구(家具)

  가치 / 가치(価値)

  간단 / 간탄(簡単)

  기운 / 기운(気運)

  분수 / 분수(分数)

  관리 / 간리(管理)

  난이도 / 난이도(難易度) 

  기분 / 기분(気分)

  요리 / 료리(料理)

  독서 / 도쿠쇼(読書)

  도덕 / 도토쿠(道徳)

  속도 / 소쿠도(速度)

  약속 / 야쿠소쿠(約束)

  계약 / 게야쿠(契約)

  의미 / 이미(意味)

  위치 / 이치(位置)

  교과서 / 교카쇼(教科書)

  감미료 / 간미료(甘味料)

  용이 / 요이(容易)

 

한국어와 일본어는 같은 한자 문화권에 속해있고 위에 열거한 예처럼 60% 이상 동일한 한자를 사용하고 있다. 이것이 한국어와 일본어가 배우기 쉽다고 하는 주된 이유 중 하나로 든다.

 

한편 한국과 일본에서 쓰는 동일한 한자인데도 의미가 전혀 다르거나 의미의 폭(語義, lexical meaning)에 차이가 있는 한자 또한 많다.

나는 이러한 한자들을 따로 모아 ‘가짜동족어(false friends)’라 부른다. ‘가짜동족어’는 일본어를 공부하는 한국인에게나 한국어를 공부하는 일본인에게 공통적으로 많은 오류와 오용 사례들로 나타나는데 이는 일종의 언어간섭 현상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

 

‘가짜동족어’의 인식 부족은 일본어 담화구사 및 작문운용, 표현활용 면에서는 물론 일본어 번역작업 시에도 오용 및 오역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많아 특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일본어는 어렵다고 단정 짓는 주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러한 한자군인 ‘가짜동족어’다.

 

예를 들어,

‘영어를 배우기 위해 미국으로 갈지 영국으로 갈지 고민 중입니다.’를 일어로 말하거나 쓸 때 많은 한국인 일본어 학습자들은 ‘미국’을 ‘美国’으로 쓰기 쉽다.

그러나 일본어에 ‘美国’이라는 한자는 없다. 우리말 ’美国’에 해당하는 일본어는 ‘米国(베이코쿠)’ 또는 ‘アメリカ(아메리카)’로 써야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美国’이라는 한자가 당연히 일본어에도 있으리라 착각하는 일종의 간섭현상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래처럼 써야 맞다.

 

  ‘영어를 배우기 위해 미국으로 갈지 영국으로 갈지 고민 중입니다.’

  英語を習うために、米国へ行くか英国へ行(い)くか悩んでいます。

 

‘저는 어렸을 때 별명이 많았습니다.’를 일어로 말하거나 작문할 때도 주의해야 한다.

‘別名’은 한국과 일본 양국에서 쓰는 한자다. 그러나 ‘닉네임(nick name)’을 뜻하는 한국 한자와는 뜻이 다르다. 일본에서 ‘別名’은 ‘異名’이다. 말 그대로 ‘본명 이외의 또 다른 이름’을 뜻한다. 한국어 ‘別名’에 해당하는 일본어는 ‘あだ名(아다나)’이다. 아래 문장 역시 이렇게 해야 맞다.

 

  ‘저는 어렸을 때 별명이 많았습니다.’

  私は子供の頃、あだ名がたくさんありました。

 

일본어 공부에 애를 먹이는 이러한 예 또한 상당히 많다.

우리는 ‘여자중학교’와 ‘여자고등학교’를 줄여서 ‘女中’, ‘女高’로 쓰지만, 일본어로 말할 때는 ‘女子中’, ‘女子高’로 해야 한다.

일본어에도 ‘女中’이라는 한자는 있으나 우리 한자와는 전혀 뜻이 다르다. 일본어 ‘女中’는 ‘하녀, 여자 종업원’, ‘도우미’ 등을 뜻하는 말이고, ‘女高’는 일본어에는 없는 한자다. 이 역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한자의 의미로 착각하여 속기 쉬운 한자다. 아래 문장도 이렇게 쓰고 말해야 맞다.

 

  ‘이 지역은 여중여고가 많습니다.’

  この地域は女子中女子高が多いです。

 

우리가 자주 쓰는 한자 ‘時間表’도 주의해야한다. ‘時間表’는 일본어로 ‘時間割’로 써야한다. 또 한 가지 일본어 전공자들도 종종 잘못 쓰는 예로 ‘평생회비(平生會費)’가 있다. ‘평생회비(平生會費)’를 일본어로 옮길 때 우리 한자 그대로 ‘平生會費’로 쓰는 경우가 많다. ‘일생’을 뜻하는 한국어 ‘平生’과는 달리 일본어 ‘平生’은 ‘평소’, ‘보통’의 뜻이다. 따라서 한국어 ‘平生會費’에 해당하는 일본어는 ‘終身会費(종신회비)’ 혹은 ‘生涯会費(생애회비)’로 써야 한다.

 

‘미묘한 삼각관계’ ‘비묘나산카쿠칸케(微妙な三角関係)’

‘고속도로는 무료다’ ‘고소쿠도로와무료다(高速道路は無料だ)’


세 사람의 남녀 사이가 얽히고설켰는데 삼각관계가 쉬이 해결될 리 만무다.

한국어와 일본어는 풀리지 않는 ‘미묘한 삼각관계’처럼 여전히 힘들고 머리가 아프다.

내가 한국어와 일본어를 ‘미묘한 삼각관계’라 하는 이유다.


일본어는 하면 할수록 정말 어렵다!


다시 한 번 되풀이하지만 오죽하면 오노 도시아키(大野敏明)라는 일본인조차 일본어 공부는 울면서 들어가서 울면서 나오기는커녕 영영 못나올 수 있다 했을까? 이 말을 위로로 받아들여야할지 격려로 받아들여야 할지…

(2017.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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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어깨 없음? / 단차 주의?

 

지난 달 청주 쪽에 일이 있어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길어깨’라는 빨간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반신반의했다. 사실 ‘길어깨’라는 어원을 익히 알고 있던 터라 설마 아직도 그런 용어가 버젓이 쓰이리라고는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도착하자마자 바로 ‘길어깨’ 검색부터 해봤다.

 

‘길어깨’는 국어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말인데 산림청 홈페이지에는 아주 친절하게 장황한 용어설명까지 곁들여있다.

“국문명: 길어깨, 영문명: shoulder of road, 한자명: 路肩

용어설명: 차도에 접속되어 차도의 구조부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치된 부분이다.

또한 길어깨는 차량 주행시의 여유, 시거 확보, 보행자의 통행, 대피 등 여러 가지 목적으

로 이용된다. … 중략 …“ (http://www.forest.go.kr)

 

원래 ‘노견(路肩)’이란 말은 일본에서 영어 ‘road shoulder’를 직역하여 쓴 말이다. 우리는 일본말 ‘노견(路肩)’을 들여와 쓰다가 다시 ‘길어깨’라는 희한한 우리말로 번역하여 쓰기도 했다.

일본어 ‘路肩(로카타)’는 ‘길(路)+어깨(肩)’의 합성어로 한자의 뜻을 그대로 가져다 만든 말이 ‘길어깨’다.

다행히 1991년 이어령 당시 문화부장관이 ‘길어깨’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갓길’이라는 순우리말을 만들어 지금은 우리 모두가 ‘갓길’이라는 우리말을 쓰고 있다. 일본 한자어 ‘노견(路肩)’을 순화한 우리말로는 ‘갓길’ 외에도 ‘길섶’, ‘길턱’이 있다. (참고로 영어로 ‘갓길’은 'the shoulder of a road'이나 ‘shoulder’라고만 써도 된다.)

 

이왕 말이 나온 김에 ‘길어깨’와 오십보백보인 ‘단차’라는 말도 한번 따져보자.

 

“휠체어장애인의 적 넓은 지하철 단차” “1층 출입구 바닥 침하로 인한 단차 발생”

“홍제천 불광천 합수부 인근 단차 주의” 등등.

 

단차(段差)’라는 말도 ‘도로 · 지표 등의 높낮이의 차’를 뜻하는 일본말이다.

일본에서 ‘단차주의(段差注意)’라는 말은 주로 계단에 높낮이 차가 있거나 출입구에 턱이 있으니 부딪치거나 넘어지지 않도록 주의를 당부할 때 쓰는 말이다.

단차(段差)’ 역시 국어사전에는 없다. 굳이 어려운 일본식 한자어를 가져다 쓸 필요가 있을까?

누구나가 다 이해하기 쉬운 ‘높이 차’, ‘고저 차’, ‘높낮이 차’ ‘턱’ 등이 있는데도 말이다.

자, 어느 쪽이 말하기도 쉽고 듣기도 편한가.

 

차도와 보도의 단차 ⇒ 차도와 보도의 높낮이 차

하천 인근 단차 주의 ⇒ 하천 인근 높낮이 주의 ⇒ 하천 인근 바닥 턱 주의

 

언어생활은 원활한 의사소통과 정확한 의미 전달이 목적이다. 의사소통과 의미 전달이 되지 않는 말과 글은 좋은 말, 좋은 글이라 할 수 없다.

쉽게 쓰지 못해 어렵게들 쓴다지만 어려운 말과 글도 누구나가 이해하기 쉽게 쓰고 전달할 줄 아는 것이야말로 능력이며 실력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희한한 말 ‘길어깨’도 일본어 번역에서 생겨났으니 번역하는 사람으로 한마디 덧붙이자면 번역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원문이 아무리 까다롭고 난해하더라도 독자가 이해하기 쉽고 읽기 편하게 옮길 수 있는 언어구사 능력이 바로 번역능력이며 번역가의 가장 으뜸가는 자질이다.

(2017.10.2)

 

 

             

 

 

  

     

 

 

 

 

 

 

 

Posted by 오경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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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어렵든 쉽든, 중요하든 그렇지 않든 무슨 시험이든 한 번에 척하고 시원스레 붙어본 적이 거의 없다. 하다못해 자동차 운전면허시험 때도 그랬다. 그래도 운전면허시험은 그나마 나은 편으로 두 번째 시험에 합격증을 손에 쥐었다.


시험 징크스다.

시험 보기 전 날 꿈이라도 꾸게 되면 영락없이 시험 시간 내에 다 풀지 못하고 쩔쩔매다가 종이 울린다거나 불합격 명단 벽보에 떡 하니 내 이름 석 자가 붙어있기가 일쑤였다.

이런 시험 징크스는 지금 이 나이까지도 현재진행형이다.


시험 징크스가 오랜 세월 반복되다 보니 알게 모르게 때론 약도 되고 비료도 된 듯하다.

합격, 불합격에 그다지 의미부여를 하지 않게 되었고, 점수나 등급으로 상대를 판단하고 재단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경박한 노릇인가를 깨닫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불합격자의 그 심정을 누구보다 더 잘 헤아릴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직접 경험하지 않고는 알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고 글로 쓸 수도 없다.

실제 부딪혀보고 수십 번 나가떨어지고 또 다시 일어서면서 오기와 맷집의 내성이 서서히 생겨나는 게 아닌가 싶다.

시간과 땀이 배어있지 않은 경험이나 인생이 아니고서는 상대를 이해할 수도 상대에게 감동을 줄 수도 없지 않은가?


1996년 11월 아쉬운 마음으로 도쿄 생활을 일단락하고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하루아침에 주변 환경과 생활패턴과 생활리듬 등 모든 것이 확 바뀌다보니 애들은 애들대로 어른은 어른대로 적응하기가 만만치 않았다. 길지도 짧지도 않았던 5년 동안 그 새 서울 동작구 사당동의 겉으로 보이는 풍경도 많이 달라져 있었지만 안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더욱 낯선 풍경 천지였다.


작은 애는 일본 초등학교에서 사당동 초등학교로, 큰 애는 일본 중학교에서 근처 중학교로 편입했다.

일본서는 학교 끝나고 곧장 친구 집으로 달려가던 작은 애는 이튿날부터 같이 어울릴 친구하나 없고 놀만한 마땅히 데도 없었다. 큰 애 또한 대놓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티 내지 않고 눈치껏 적응하려 애쓰다보니 이런 저런 긴장감과 스트레스로 몸과 마음에 피곤함이 훤히 드러나는 나날이었다.


나는 또 나대로 두문불출하며 우두커니 지내는 날들이 많아졌고 해야 할 일이 많은데도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우리가족 모두에게 자칫 위기와 같았던 순간이었다.


이심전심이었을까?

내가 어떻게 지내는 지 궁금하다고 하시면서 염치없게도 박경자 선생님께서 또 먼저 연락을 주셨다.


“애써 익힌 일본어인데 대학원에 진학해 본격적으로 일본어 공부를 해보는 것이 어떤지?”

“외국어를 잘 구사한다는 것은 단지 기능이나 기술일 뿐 학문하는 능력이나 실력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문제다”


지나가는 말씀으로 하셨는데 순간 눈이 번쩍 뜨이며 여태껏 나를 짓누르고 있던 답답하고 무거웠던 마음이 싹 가시고 뭔가 뻥 뚫린 느낌이었다.


위기는 기회로 통한다 했던가.


눈앞에 벌어진 똑같은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난다.

인생이란 수없이 되풀이되는 실패와 시련을 극복하고 대처해가는 과정의 연속이다.

또한 그 숱한 과정 속에서 만나고 헤어지는 사람과 사람의 만남의 연속이다.


그런데 대학원 진학이 그 게 어디 말처럼 쉬운가?

1997년만 해도 대학원 입학 경쟁률이 어느 정도 높았다.

특히 김대중 정부 시절 추진한 일본대중문화개방을 일 년 앞두고 일본어와 일본문화 등 일본관련 부문에 과거 어느 때보다도 대중의 관심과 기대가 한층 고조되고 있던 때이기도 했다.


교육대학원 일어전공에 지원하고 시험을 치뤘다. 무슨 무모함으로 아무런 준비 없이 덜렁 대학원 입학시험을 봤는지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다.

결과는 역시 보기 좋게 낙방이었다. 돌이켜보면 첫 시험에 낙방한 것이 얼마나 천만 다행인지.


학부에서 일본어를 전공하고 일선 중고등학교에서 일본어를 가르치는 현직 일본어교사들, 혹은 몇 년씩 입학시험을 준비한 젊은 친구들과 경쟁인데 너무 안일하고 무르게 대응했다. 학부 전공도 다른데다 졸업 후 한참을 다른 데서 기웃거리다 돌아와 게다가 적지 않은 나이 마흔에.


그제서야 “외국어를 잘 구사한다는 것은 단지 기능이나 기술이지 학문하는 능력이나 실력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문제”라는 박경자 선생님 말씀이 이해가 됐다.


아무리 시험 징크스라 해도 무슨 시험이든 일단 고배를 마시면 의기소침해지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현실을 직시하고 주제파악을 할 수밖에 별 도리가 없다. 시비를 가르고 잘못이 인정되면 얼른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은 남들보다 좀 빠른 편이다. 이것은 시험 징크스 덕분이다.


일주일 후 바로 석사과정에 재도전하기로 마음먹었다. 한번 경험했으니 여러모로 준비는 수월했다. 기출문제도 구해다 보고 함께 시험 봤던 합격자들에게 연락해 공부 자료와 공부 방법 등 조언도 구했다. 그렇게 반년 동안을 거의 하루 종일 시험공부에 매달렸다.

드디어 합격이었다.


‘인생 백년 너무 늦은 시작이란 없다’를 되뇌며 슬로우 스타터(Slow Starter) 합류의 서막을 열었다.

교육대학원 과정 2년 반 동안에도 인생의 희로애락이 숨어 기다리고 있었다. 같은 꿈을 꾸며 같은 길을 가는 이들과 매주 만나고 호흡하며 대화하는 시간이 서로에게 얼마나 진지하고 절실했는지.


의미 있고 아름다운 최선의 선택이었던 석사과정은 딱 2년 반 만에 논문심사에 통과하면서 무사히 졸업하였다.


조금은 두터운 딱딱하고 까만 석사 논문 커버 뒷장 첫머리에 나는 이렇게 썼다.


기적처럼 한평생을 사시다 하늘나라로 가신 아버님의 영전에 이 책을 바칩니다.”

 

                     

 

 

내가 입학하고 일 년도 채 못 되던 1999년 7월 3일 향년 85세로 아버지는 인생의 마지막

 

긴 여행을 떠나셨다. 아주 평안하고도 고요하게 …

(2016.1.1)


 

 

 

 

 

 

 

 

Posted by 오경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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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수 년 전 교육대학원 입학시험에 낙방했고 틀린 덕에 아직도 잊어버리지 않는 일본어가 하나 있다. 일본어 한자 ‘翻る’에 독음(讀音)을 다는 문제였다. 정답은 ‘히루가에루(ひるがえる)’이다.

‘히루가에루’의 뜻은 ‘뒤집히다’, ‘펄럭이다’ ‘바람에 날리다’이다.

 

그런데 내가 틀린 이 한자(翻る)는 훗날 박사과정에 진학해 ‘일한 번역’으로 학위를 받고

대학과 대학원에서 일한번역 강의를 하는 지금까지도 두고두고 내 인생의 친숙한 키워드가 되었다.

 

가끔 학생들에게 퀴즈로 내본다. ‘翻る’ 정확한 독음은?

여태껏 맞춘 학생들이 거의 없었다.

생각해보면 그 옛날(?) 대학원입학시험 때도 한두 명 외에는 거의 다 못 맞췄던 문제였다.

아마도 떨어트리기 위해 낸 문제가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PS: 혹 이 글을 읽고 입학시험 당시 이 문제를 기억하는 수험생 계시면 연락 한 번 주시길. 겸사겸사 옛 추억 떠올리며 진한 커피 한 잔 합시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7년 전의 시험문제를 생생히 기억하며 아직도 적극 활용하면서

이렇게 글도 쓰고 있으니 나와는 꽤 연(緣)이 있는 고마운 일본어임이 분명하다.

 

아무튼 이제는 내 생활의 일부가 된 ‘번역(飜譯)’을 한자어로 풀이하면 ‘飜(번)’은 ㉠날 번 ㉡나부낄 번 ㉢뒤집힐 번 ㉣옮길 번이며, ‘譯(역)’은 ㉠통변할 역 ㉡번역할 역 ㉢풀이할 역 ㉣ 나타낼 역이다.

종합하면 ‘번역(飜譯)’이란 ‘원문(source language)의 말이나 글을 뒤집어 번역문(target language)의 말이나 글로 옮겨 놓는 행위’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번역은 단지 말이나 글만 옮겨 놓는 행위가 아니다.

번역을 뜻하는 프랑스어 ‘traduction’ 와 영어 ‘translation’ 속에는 공간, 시간, 혹은 다른 차원으로의 이동과 여행의 의미가 담겨있다.

두 경우 다 라틴어 동사 ‘traducere’에서 유래한 명사 ‘traductio’에 해당한다.

 

그렇다. 참 재미있고 묘한 일이다.

인생은 길고도 먼 여행길이라더니…

 

번역을 만나 친해지면서 내 인생도 완전히 바뀌었다.

또 다른 세상이 열리고 색다른 경험을 만끽하면서 몸은 좀 고달파도 마음은 늘 즐겁고 설렌다.

앞으로 번역이란 녀석이 또 어떤 여행길로 나를 유혹할는지 기대 반 설렘 반이다.

(2015.11.9)

Posted by 오경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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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도 모르는 일본어]

 

지난 해 겨울 일본 도쿄에 갔을 때다. 한 겨울이라도 여간해선 도쿄에서 눈 구경 하기란 쉽지 않지만 희한하게도 그 날은 거리에 눈이 소복이 쌓일 정도로 무척 눈이 많이 내렸다. 어느 백화점 앞을 지나가다보니 입구에【 미끄러지지 않도록 걸음걸이에 주의하세요(足もとにご注意してください) 】라는 문구가 적힌 경고 팻말을 세워두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일본어가 틀렸다.

도쿄 한 대형백화점에서 고객을 배려하기 위해 만든 문구가 틀리다니… 순간 혹시 내가 잘 못 알고 있는 건 아닌 가 싶기도 했다.

 

이처럼 까딱하면 일본인도 틀리기 일쑤인 일본어 경어표현은 대단히 어렵고 복잡하다.

일본에서는 ‘경어를 잘 쓰는 사람이 일도 잘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회사나 조직에서 경어 사용을 중요시한다.

오죽하면 신입사원이 입사하거나 아르바이트생을 뽑으면 회사에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이 고객접대 차원의 올바른 경어사용 교육이다.

취직을 하기 전까지 경어를 잘 쓰지 않았던 신입사원들에게 경어 교육을 따로 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우리말은 절대 경어인데 비해 일본어는 상대 경어다.

게다가 경어 체계도 다섯 종류(①존경어 ②겸양어Ⅰ③겸양어Ⅱ ④정중어 ⑤미화어)로 세분화되어 있어꽤 복잡하고 어렵다.

 

우리말 경어는 연령과 상하관계를 절대적 기준으로 삼지만 일본어 경어는 연령과 상하관계보다는 제삼자 및 듣는 사람과의 친소관계를 우선시한다. 또한 일본어 경어는 말하는 사람자신을 낮추는 겸양어가 특히 발달하였다.

 

상대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태도가 습관처럼 몸에 밴 일본인들이 경어를 쓰면서도 더 더욱 자신을 낮추려는 데서 과잉경어(과잉존경어 /과잉겸양어)까지 등장하는 판국이다.

 

일본인도 그럴진대 한국인 일본어 학습자가 일본어 경어를 터득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일본어다운 품위 있는 일본어를 구사하기 위해서는 일본어 경어 공부는 기본이자 필수이다.

그 중 가장 많이들 헷갈리고 틀리는 것이 존경어와 겸양어의 혼용 내지 오용이다.

 

위 백화점 경고 팻말도 다름 아닌 경어인 존경어와 겸양어를 혼용한 오류이다.

고객을 상대로 한 문구이니 존경어를 써야 하는데 자신을 낮추는 겸양어로 잘 못 쓴 경우이다.

 

상대 즉 고객을 대우하는 존경어로 쓰면

【 걸음걸이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足もとにご注意になってください) 】로 써야 맞다.

그런데 이 표현【 足もとにご注意(になって)ください 】은 괄호 안의 말(になって)이 흔히 생략되어【 足もとにご注意ください 】가 일반적으로 쓰인다.

 

그런데 경고 팻말에는 고객을 높이는 존경어가 아닌 자신을 낮추는 겸양어로 씌었기에 틀린 표현이다.

아래 팻말의 일본어를 직역하면【 걸음걸이에 내가 주의하기 바랍니다 (足もとにご注意してください) 】라고 하는 이상한 표현이 돼버리고 만다.

 

 

 

  따라서 잘못을 바로 잡으면 아래처럼 표현해야 맞다.

 

    

  

말이 나온 김에 한국인 일본어 학습자가 종종 틀리는 일본어표현 중【불조심】이 있다.

 

【火の注意】라고 써도 될 것 같은데【火の注意】라는 일본말은 없다.

한국인 일본어 학습자가 바로【火の注意】를 떠올리는 것은 일종의 모어 간섭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올바른 일본어 표현은【火の用心】으로 써야 한다.

 

해마다 겨울이면 눈 축제가 열리는 홋카이도(北海道) 시내에는【火の用心(불조심)】이란 큰 팻말이 거리 구석구석에 벌겋게 불꽃처럼 널려 휘날리고 있다.

실생활 표현인火の用心(불조심)】은 일본어 교과서나 교재에서는 그리 접할 기회가 많지 않다.

 

그러나火の用心(불조심)】이란 말은 일본어를 전혀 못 하는 여행객이라 할지라도 겨울날 눈 덮인 홋카이도 거리를 한번쯤 거닐었다면 빨간 천에 흰 글씨로 쓰인 네 자의 뜻을 바로【불조심】으로 받아들였으리라.

 

그 정도로 홋카이도하면 함께 연상되는 장면이 온통 눈 천지인 희뿌연 거리에 불타오르듯 빨간 휘장으로 뒤덮인【火の用心】이란 강력한 문구이다.

 

홋카이도 추억을 떠올리면 아직도 그 생활문구가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펄럭거린다.

  

                                   

 

  (2015.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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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공방(村上さんのところ)』

「작지만 확실한 행복(小確幸)」


무라카미 하루키가 이 사이트를 오픈할 때부터 관심 갖고 지켜보던 글들이『村上さんのところ』란 타이틀로 묶여 지난 7월24일 일본 서점에 나왔네요.

커버에 이런 표제어가 붙어있어요.


[길을 잃고 헤맬 때마다 다시 꺼내 읽고 싶은 인생의 상비약]


이 책이 어떤 책인지 잠깐 볼까요.

2015년 1월 15일 무라카미 하루키가『무라카미 공방(村上さんのところ)』이란 인터넷사이트를 기간한정으로 오픈했습니다.

무라카미 작품에 관한 소박한 질문부터 일상생활의 고민, 재즈, 인생철학, 번역, 소설, 사회문제, 고양이, 도쿄 야구르트의 수왈로즈 야구팀(Tokyo Yakult Swallows), 그리고 드물게는

러브호텔에 이르기까지. 작가가 독자의 질문에 답한 사이트입니다.

17일 동안 무려 3만 7465통의 메일이 쇄도하였는데 그 가운데 3,716통을 골라 작가가 직접 답장을 썼고, 그 중 또 추려낸 473통의 메일 문답이 이 책에 수록된 내용입니다.


이러한 대작업을 진행하면서 무라카미 하루키는 서문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머리가 좋은 사람이라면 이런 번거로운 일은 애당초 하지 않았을 겁니다. 속마음을 다 털어놓는 이야기를 하면서 ‘내가 왜 이런 골치 아픈 일을 구태여 시작했을까’ 후회하기도 했습니다. 솔직히 정말 고단했습니다. 어깨도 뻐근하고 눈도 아프고 침침해지고 3개월간 다른 일은 전혀 할 수도 없었고 ‘이 거 큰일 났구나’ 하면서도 일단 시작한 일이므로 최선을 다해 읽어냈습니다.

마치 끝없이 내리는 폭설 한 가운데서 홀로 삽으로 눈치우기를 하는 그런 심정이었습니다.

막바지에 가서는 휘청거려 쓰러질 지경이었습니다.

힘은 들었지만 그래도 즐거운 작업이었습니다.”


이 사이트에 무라카미 하루키가 만든 재미있는 신조어(新造語)가 하나가 등장합니다.

바로「小確幸(소확행)」이란 말인데요, 사전에도 안 나오니 일본사람도 읽기가 어렵고

한국어 번역도 참 어렵습니다. 일단 ‘소확행’으로 옮겼습니다만, 영 어색하고 이상하지 않나요? 「小確幸(소확행)」에 딱 들어맞는 우리말 번역어를 저도 고민 좀 해봐야겠습니다.

「小確幸」는 일본어로 ‘쇼캇코(しょうかっこう)’로 읽습니다.

작가가 그렇게 정했답니다.

무슨 뜻인가 하면 ‘작지만 확실한 행복(小さいけれど確かな幸福)’이랍니다.

사실 맨 처음 저는 오로지 이 말「小確幸」하나에 끌려 이 사이트를 들락날락했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小確幸(소확행)」이란 용어를 이렇게 풀이하고 구체적인 예문까지 달아놓았네요. 치밀하고 논리적인 작가의 성격도 잘 엿보이는 대목입니다.


「小確幸(소확행)」

(명사)① ‘작지만 확실한 행복’ ② 무라카미 하루키가 만들고 널리 알렸다.

(예문)☞ 겨울 밤 고양이가 이불속으로 쏙 들어오는 순간이 나의 소확행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최근 '소확행'이란? 질문에 역시 중고 레코드 관련 얘기가 많네요. 오래된 낡은 레코드를 새로 사서 특별한 천으로 부지런히 말끔하게 닦고 있을 때가 ‘소확행(小確幸)’이라는 소박한 대답이 돌아옵니다. 말 그대로 ‘작지만 확실한 행복(小確幸)’이지요.


무라카미 하루키와 그의 팬덤인「하루키스트 혹은 하루키주의자(村上主義者)」들은 하루라도 빨리 일본어사전 「広辞苑(고지엔)」에「小確幸(소확행)」이란 어휘를 등재하고자 하는 움직임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역시 무라카미 하루키다운 발상이지요?


‘작지만 확실한 행복’, 나의 ‘소확행(小確幸)’ 목록을 하루에 하나씩 만들어보는 것도 재미있는 ‘소확행(小確幸)일 듯싶습니다.

 

 

 

                  < 原書 : 村上春樹『村上さんのところ』(2015, 新潮社) >

Posted by 오경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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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한 달 간 도쿄에 다녀왔다.

해마다 여름방학이 되면 으레 가는 연례행사처럼 되어버렸다.

일상탈출, 기분전환, 재충전, 일본어 공부, 구르메(gourmet, 식도락)여행 등 갖다 붙일 이런 저런 이유야 많지만 그보다는 일본의 몇 십 년 지기들이 기다리고 반겨주는 고마운 마음도 나를 도쿄로 떠미는 즐겁고 기분 좋은 핑계 중 하나다.

 

이번에도 야마다(山田) 상은 틈틈이 TV 방송 몇 가지를 녹화해두었다가 CD로 만들어 주었다. 내가 예전에 번역한『덕분에』저자인 아이다미쓰오(相田みつを) 선생의 다큐멘터리 특집 방송과 내가 좋아하는 독특한 일본 가극인 다카라즈카(宝塚)와 가부키(歌舞伎), 한국과 관련 있는 방송 <조선유산백년의 유전(朝鮮遺産百年の流伝)> 등 한여름 이글이글 끓어오르는 도쿄 비좁은 방안에서 땀 뚝뚝 흘려가며 CD로 구웠으리라.

 

게다가 수업할 때 참고하라고 건네준『일본인도 고민하는 일본어(日本人も悩む日本語)』라든지 소금양갱(塩羊羮), 다시마말이(昆布巻)등 오미야게(土産品)까지… 야마다(山田) 상에게는 정말이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는 커다란 신세와 마음의 큰 빚을 지고 있다. 야마다 상을 만날 때마다 진심으로 마음이 움직이는 ‘감동(感動)’이란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고 절절히 느끼곤 한다.

 

또한 오랜 세월 몸에 밴 교양과 기품이 온 몸에서 전해지는 야지마(矢島) 상.

겸손하고 점잖은 말투도 그러하지만 메일과 편지에서 전해지는 품격이란 내가 여태껏 보고 읽은 어느 글이나 책에서도 쉽게 접하기 어려운 그야말로 차원이 다른 우아한 명문 그 자체다.

 

일본어에 ‘조힝(ジョウヒン)’이란 말이 있다. 한자로 ‘상품(上品)’이라 쓰는데 우리는 질이 좋은 물건을 이를 때 쓰지만 일본어 ‘조힝(上品)’은 고급품뿐 아니라 사람에게도 쓰는데 들으면 기분 좋은 칭찬하는 말이다. 예를 들어 ‘고상하고 품위가 있는 여성’의 경우 '조힝나조세(上品な女性)' 라고 한다.

 

나는 수업 시간에 ‘上品’이란 단어가 나오면 바로 야지마 상이 떠오른다. ‘上品’의 의미는 일본 사전에 나와 있는 풀이보다는 오히려 야지마 상의 진면목을 한 마디로 표현하는 말에 훨씬 더 가까울 것이라 장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뇌리에는 ‘上品’=‘야지마(矢島) 상’으로 각인되어있다.

 

야지마 상 덕분에 익힌 다양한 고급일본어표현은 몇 번이고 암기하다시피하며 활용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만날 때마다 명품 인간의 품격까지 내 그릇의 크기와 비교되어 인생 공부가 절로 되는 그런 멋진 이가 ‘야지마 상이다.

 

역시 공부든 여행이든 인생이든 희로애락은 ‘만남’ 속에 있다. 오다가다 스친 우연한 만남이 진한 울림이 되어 한동안 가슴 한 구석에서 떠나지 않는 그런 사람이 또 그런 추억이 있게 마련이다. 여행의 묘미는 바로 이러한 만남이 아닐까?

올 여름 도쿄 여행도 잔잔하면서도 감동적인 우연한 만남에서 시작되었다.

 

7월 초 도쿄에 도착하자마자 그 다음 날 도치기현(栃木県)나스(那須)에 있는 시오바라온천(塩原温泉)으로 향했다. 도쿄 이케부쿠로에서 전세버스로 4시간 반 정도 걸리는 온천지대다. 허기야 일본은 전국 어디를 가도 온천 천지이지만.

일본에 살면서 가장 겁나고 무서운 한 가지를 꼽으라면 지진이지만, 일본인들은 늘 지진의 위험을 안고 사는 덕분에 온천의 혜택을 누리게 되니 참 아이로니컬하다.

 

일본여행하면 오래된 시골 전통여관과 온천의 노천탕, 소바와 오벤토, 만주(饅頭) 등 정성껏 앙증맞게 포장된 오미야게 먹거리를 빼놓을 수 없다.

오전 9시에 출발하여 중간쯤 가다가 오니기리와 덴푸라소바로 점심을 먹고 오후 2시쯤 시오바라온천에 도착했다.

유카타(浴衣)로 갈아입고 온천으로 달려가 유황냄새 피어오르는 노천탕에 몸을 담그니 그제서야 일본에 날아왔다는 것이 실감됐다.

 

시오바라호텔에서 ‘다베호다이(음식 무한리필)와 노미호다이(음료 무한리필)’로 저녁을 마음껏 먹고 로비에서 잠깐 쉬고 있는데 내가 묵고 있는 호텔에서 약간 떨어진 같은 그룹 계열사인 뉴야시오(ニュー八汐) 호텔에서 ‘기타 ‧ 피아노 콘서트 개최’한다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입장료는 무료이니 많이들 들으러 오라는 안내방송이었다.

 

예정에도 없던 터라 별로 기대도 하지 않고 유카타 차림으로 따라나섰다. 도쿄에서 같은 버스를 타고 온 인원이 한 사십 여명정도 되었는데 대부분이 60대나 70대 이상 분들인들 싶었다.  

앞에서 두 번째 줄에 자리 잡고 앉았다.

 

명곡 연주 콘서트 주인공으로 무대에 오른 연주자는 1949년생 가토 마사토(加藤雅人) 씨로 연주 경력 40여 년째란다. 그러니까 우리 나이로 66세이다.

젊음은 가도 청춘은 다시 온다 했던가.

 

그날 밤 가토 마사토 씨의 콘서트 타이틀은 “기타와 피아노로 이야기하는 쇼와(昭和)”라는 기가 막히게 멋진 타이틀에 또 한 번 기대감이 갑절로 업 되었다.

클래식 기타와 일렉트릭 기타, 스틸 기타와 피아노 등 네 가지 악기를 자유자재로 연주하며 ‘쇼와(昭和)’의 이미지를 멋드러지게 표현하며 훌륭한 연주를 들려주는 가토 마사토(加藤雅人) 씨의 연주는 기대 이상이었고 신선한 놀라움과 감동으로 다가왔다.

 

이런 인생도 있구나. 이런 멋진 노후도 다 있구나…

 

좋아하는 일을 좋아서 하는 사람들은 눈빛만 봐도 안다.

가지런히 빗어 넘긴 흰머리에 수더분한 양복차림, 그러나 1시간 남짓 연주하는 내내 뿜어내는 강렬한 눈빛과 에너지, 몰입력은 누가 봐도 아름다운 반전의 ‘노력(老力, 나이의 힘)’ 그 이상이었다.

 

내 주위에 자리한 연세 드신 일본 분들을 바라보니 ‘쇼와(昭和)’ 시대에 유행했던 드라마 주제가나 유행가 등의 연주를 들으면서 아련한 옛날이 떠오르는지 혹은 사뭇 그리워지는지 살짝 눈시울을 붉히기도 하고 박장대소하기도 하면서 실로 행복해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연주는 물론이고 연주 사이사이에 들려주는 인생 이야기도 연륜이 묻어나는 위트와 재미가 더해져 그날 입장객 모두가 감탄 연발 ‧ 대만족 ‧ 대성공을 거둔 콘서트였다.

피날레 곡으로 작년 대히트작인 겨울왕국의 주제곡『Let it go』를 들려주었는데 그날 연주 중 갑중의 갑으로 백미(白眉)라 할만 했다.

 

‘화양연화(花樣年華)’라는 말이 있다.

화양은 ‘꽃과 같은’의 뜻이며 연화는 ‘세월, 시절’이란 뜻이다.

그러므로 ‘화양연화(花樣年華)’란 ‘꽃처럼 아름다운 시절’이라는 말이다.

어떤 인생에도 ‘화양연화(花樣年華)’는 있으리라.

멋진 후반부 인생을 살아가는 가토 마사토 씨의 ‘화양연화(花樣年華)’는 바로 지금이 아닐까? 마냥 부러워진다.

 

(☞‘쇼와(昭和)’ : 일본 쇼와(昭和) 천황 때의 연호. 서기 1926년~1989까지의 연호)

 

 

 


 

 

 

사족:

도쿄로 돌아온 이튿날 가토 마사토(加藤雅人) 씨가 걸어온 인생의 흔적이 궁금해 찾아보았다.

 

가토 마사토(加藤雅人)

1949년생 도치기현(栃木県) 출신.

스무 살 때부터 일본 각지에서 밴드 연주활동 시작.

1974년~ 나스(那須) 로얄 오케스트라에 소속되어 가요 쇼와 그랜드 리뷰 쇼에서 연주활동.

1993년 이후 현재는 각지에서 자신의 밴드와 엑스트라로 연주활동

 

Posted by 오경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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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괄적 비문헌적 유사성’과 ‘부분적 문헌적 유사성”?

 

요 며칠 신경숙 작가 표절 뉴스로 온라인 오프라인 할 것 없이 시끄럽고 어지럽다.

가뜩이나 메르스로 온 국민의 마음이 무겁고 심란하기 짝이 없는데 이 어수선한 뉴스로

피로와 스트레스가 더욱 가중되는 느낌이다.

스트레스와 메르스 면역력은 반비례한다는 소리를 이제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터라

웬만하면 좋게좋게 넘어가려고 애쓰고 있지만 그게 어디 그리 마음처럼 쉬운가.

 

출판사가 17일 신경숙 작가 표절 문제에 대해 첫 해명 기사를 내놓았는데 그 새 메르스 학습효과를 잊었는지 초기대응에 실패한 정부나 한 대형병원의 교만한 해명 모습을 그대로 재연하는 듯해 실망스럽고 씁쓸하다.

바라건대 적어도 출판계와 문학계를 대한민국 지성의 보루로 아직은 믿고 싶은 선량한 독자들을 다 떠나보내지 않기를, 아울러 해결 방법이 이 지긋지긋한 메르스의 그것과 쏙 빼닮지 않기를.

 

나는 번역하는 사람으로서 내 번역의 평가나 가독성 문제는 늘 독자의 판단에 맡기자는 주의다.

이번에 신경숙 작가의 표절 문제를 제기한 이응준 작가도 “한국문학을 사랑하는 모든 독자 분들께서

추상같은 판단을 내려주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밝혔듯이 표절의 시시비비는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두는 게 맞다고 본다.

 

내가 구태여 이 글을 쓰는 이유는 17일 창비가 해명한 반박 기사 중 여전히 이해가 안 되고 유독 난해한

 ‘~적(的)’이라는 어투(語套) 탓이다.

 

우선 창비의 해명 기사를 한 번 더 찬찬히 읽어본다.

“해당 장면의 몇몇 문장에서 유사성이 있더라도 이를 근거로 표절 운운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표절시비에서 다투게 되는 ‘포괄적 비문헌적 유사성’이나 ‘부분적 문헌적 유사성’을 가지고 따지더라도

표절로 판단할 근거가 약하다.” (중앙일보 2015.6.18)

 

창비의 ‘포괄적 비문헌적 유사성’과 ‘부분적 문헌적 유사성’ 이란 게 대체 무슨 말인가?

나는 이 말이 너무 낯설고 어려워 도무지 그 뜻을 헤아릴 수가 없다.

 

평소 번역을 하면서 또 번역수업을 하면서 학생들에게 가능한 한 ‘~적(的)’ 사용을 줄여 쓰자고 강조하는

선입견 혹은 습관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본디 ‘~적(的)’이란 일본 메이지 초기(메이지 5년인 1873년) 때 영어의 형용사를 만드는 접미사 ‘~tic'의

번역어로 중국에서 처음 들여다 쓰기 시작하였는데 그것을 우리가 다시 일본에서 들여다 쓰는 말이다.

 

일본에서 들어온 말이지만 일본보다 우리가 3배 정도 더 많이 쓴다고 하니 그 이유는 단연 ‘~적(的)’이라는

말의 조어력(助語力) 즉, 편리성 때문일 것이다.

이 편리성이 ‘~적(的)’의 가장 큰 장점이기도 하다. 그러나 ‘~적(的)’의 단점 또한 만만치 않다.

 

일단 ‘~적(的)’이 붙으면 어려워지고 불친절한 말이 되기 십상이다. 또한 말의 뜻이 명확해지지 않는다.

즉 뭉뚱그려질 수밖에 없기에 듣는 이의 입장에서는 모호하고 답답하다.

요컨대 화자에게는 친절한 말이지만 청자에게는 대단히 불친절한 말이 다름 아닌 ‘~적(的)’이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많이들 쓰고 듣는 ‘사회적 기업’이란 말에서 ‘사회적’이란 뜻이 분명하게 이해되는가?

정확하게 한 단어로 설명할 수 있는가?

또한 “요즘 메르스 때문에 육체적, 정신적으로 아주 힘들다.”라는 말과 “요즘 메르스 때문에 몸과 마음이

힘들다.”라는 말 중 어느 쪽이 쉽게 와 닿는가?

 

아래 표현들은 어느 쪽이 듣고 말하기에 수월한가?

노골적으로 ➪ 드러내놓고  /  일시적으로 ➪ 한 때

대대적으로 ➪ 크게 / 폐쇄적 사회 ➪ 닫힌 사회

 

우리말에서나 번역과정에서 불필요한 ‘~적(的)’을 없애면 간결하고 뜻이 명확해져 이해하기 쉬운 표현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뜻이 모호할뿐더러 듣는 이에게도 친절하지 않은 ‘~적(的)’이 붙은 말을 되도록 줄여 쓰자고 강조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언어생활은 원활한 의사소통과 정확한 의미 전달이 목적이다. 의사소통과 의미 전달이 되지 않는 말과 글은 좋은 말, 좋은 글이라 할 수 없다.

쉽게 쓰지 못해 어렵게들 쓴다지만 ‘~적(的)’이란 말을 쓰면 쓸수록 좋은 글과 가독성에서는 점점 더 멀어져 간다.

 

‘포괄적 비문헌적 유사성’과 ‘부분적 문헌적 유사성’이라 ……

나는 아직도 이 말의 뜻을 정확하게 해독할 수가 없다.

내 모국어가 어려운가, 아니면 여전히 내 모국어 실력이 문제인가.


(2015. 6.20)

 

Posted by 오경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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