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w Risk High Return'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4.12.30 논문을 쓸까? 번역을 할까?
  2. 2014.11.02 평생공부 평생청춘

논문을 쓸까? 번역을 할까?

 

요즘 번역가는 많지만 믿고 맡길만한 제대로 된 번역가 찾기가 쉽지 않다고들 한다.

왜 그럴까?

어제 오늘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과연 우리 사회가 제대로 된 번역과 번역가에 걸맞는 대우와 평가를 하고

있느냐와 관련된 문제다.

 

모든 투자의 기본 룰은 ‘High Risk High Return’이 원칙이다.

‘Low Risk High Return’ 운운하며 유혹한다면 그 건 투자가 아니라 사기다.

 

그러나 번역만큼은 다르다.

번역은 누가 뭐래도 ‘Low Risk High Return’의 투자다.

이 말에 딴지를 걸 사람이 혹시 있을까.

 

번역은 가장 저렴한 비용으로 수준 높은 문화를 들여와 우리의 삶과 문화를 살찌운다.

모든 문화 한 가운데 번역이 존재한다.

번역을 문화의 힘으로 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요컨대 번역은 문화이자 문학이고 예술이다.

고로 번역가는 고도의 창조적 문화메신저라 할만하다.

 

그러나 번역은 꽤 수준 높은 스칼라십이 필요한 지난한 작업이다.

더욱이 학술번역서는 학술논문보다 몇 배의 시간과 품이 요구된다.

한 권의 학술번역서를 제대로 번역하려면 많은 관련 서적이나 번역서, 참고자료 등을 읽어내야 한다.

 

그러나 교수임용 시나 대학에서 실적이나 업적을 평가하는 경우 대개 번역서는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한다.

학술활동 실적, 업적에 기입란조차 없는 경우가 태반이며 홀대받는다.

사정이 이러할진대, 어느 학자가 선뜻 번역을 하겠는가?

그것도 몇 년씩이나 붙들고 있어야 할지 모르는 번역을.

 

까뮈를 전공하는 인문학자들에게 “그의 대표작『이방인』을 번역하시겠습니까, 아니면 그것에 대한 논문

한 편을 쓰시겠습니까” 라고 묻는다면 십중팔구는 논문을 쓰겠다고 할 것이다. 다 이런 연유에서 이리라.

 

한 편의 학위논문을 내면 과연 몇 사람이나 그 논문을 읽는지 어느 일본인 학자가 통계를 낸 적이 있었다.

놀랍게도 학위논문 한 편 당 1.5명이었단다. 그것도 그 1.5명 안에는 논문 쓴 저자까지 포함된 수치란다.

다시 말해 저자를 빼고는 평균 한 사람도 읽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떨까?

 

<지나치게 큰 '논문'의 위력>이란 칼럼을 쓴 부산대학교 중문과 김세환 교수의 인문학자와 인문학 논문에

관련된 칼럼 일부분을 들여다봐도 논문을 읽는 사람 수는 일본의 사정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인문학 분야 논문은 대체로 본인을 포함해 보는 사람이 없다. 2011년 한국연구재단은 어느 두 인문사회

학술지에 실린 논문 110편이 국내에서 한 번도 인용되지 않았다는 분석 결과를 공개했다.

학위논문도 다르지 않다. 그 논문을 다시 볼 일은 거의 없다.

인문학자는 창작이나 저술로 자신의 학문을 학교나 사회와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학문은 고귀해서 대중화될 수 없다는 편견이 아무 의미도 없는 논문을 쓰게 한다.

아무도 보지 않는다면 쓰레기와 무엇이 다른가?“ [조선일보: 이슈진단 (2013.4.5)]

 

그러나 번역서는 아무리 안 읽는다 해도 한 권당 적어도 수백 명 정도는 읽지 않겠는가?

 

단순히 겉으로 드러나는 사회적 기능과 기여도만 따져보더라도 번역과 논문은 이렇게 확연한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번역에 대한 우리 사회 대다수의 인식과 학계의 시선은 여전히 제한적이며 관심 밖이다.

우리의 번역 실상이 참 부끄럽고 슬프다.

 

일찍이 김용옥은『東洋學 어떻게 할 것인가』에서 논문의 허구성과 번역의 어려움에 대해 이렇게 토로한 바 있다. 새삼 공감가는 대목이다.

 

“일본 학계에서는 한 학자를 평가하는 데 번역을 제일의 업적으로 평가한다. 이유는 번역이 학문 활동 중에서 가장 긴 시간과 가장 수준 높은 스칼라십을 요구하기 때문이다.「~에 관한 논문」을 쓰는 일은 그것에 대한 철저한 지식이 없더라도 가능하다. 해석이 안 되는 부분은 슬쩍 넘어갈 수 있고, 또 책을 다 읽지 않더라도

적당히 일관된 논리의 구색만 갖추면 훌륭한 논문이 될 수 있다. 허나 번역의 경우는 전혀 이야기가 다르다. 그 작품의 문자 그대로 ‘완전한’ 이해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모르는 부분을 슬쩍 넘어갈 수 도 없고 또 전체에 대한 지식이 없이는 부분의 철저한 해석조차도 불가능하다.”

 

일본은 이미 노벨문학상 작가를 두 명이나 배출해냈다.

아시아에서는 단연 톱이다.

메이지시대부터 이어져 온 명실상부한 번역대국으로서 이름값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1968년 소설『설국(雪國)』으로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岡成)와 1994년에『만엔 원년의 풋볼(万延元年のフットボール)』로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郞)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또 다시 세 번째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만들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해마다 무라카미 하루키 등 유명

인기 작가들이 물망에 오르내리고 있다.

 

번역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설국』을 번역하여 일본 최초의 노벨문학상을 안긴 번역가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Edward Seidensticker)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가와바타 야스나리 자신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지명된 직후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상의 절반은 번역자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의 몫이다.”

 

얼마나 멋지고 부러운 멘트인가.

번역과 번역가를 대우하고 평가하는 번역대국 일본과 우리나라의 인식 차이다.

우리도 한국의 가와바타 야스나리와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가 시급하다.

 

그래야 나부터도 주저 없이 ‘논문을 쓰느니 번역을 하지’

(2014.12.30)

 

Posted by 오경순
,

<같은 듯 다른 재미있는 한 ․ 중 ․ 일 한자 풀이>

 

언어를 공부하다 보니 일상생활에서 읽고 듣고 쓰면서 늘 접하는 용어라 할지라도 일단 정확한 의미부터 따져보고 시작하는 습관이 몸에 붙었다. 직업병의 일종일지도 모르겠다. 대학원 일어일문학과에서 일한번역을 전공하고 번역작업을 하면서 일어도 그렇지만 특히 한국어 사전을 뒤적거리는 시간이 부쩍 많다.


언젠가 영어권 사람들에게 한국어는 ‘세상에서 4번째로 배우기 어려운 언어’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가장 배우기 어려운 언어 톱 5’를 꼽았는데 그 중에 한국어가 4위에 랭크됐단다. 1위는 아랍어, 2위는 중국어, 3위는 일본어, 5위는 헝가리어 순이었다.


한국 중국 일본이 한자 문화권이며 우리말에 한자어가 차지하는 비중이 적게 잡으면 50%이상이며 많이 잡으면 70%이상을 차지하고, 일본어는 원래 중국 한자에서 따온 말이니 한도 끝도 없이 많고 어려운 한자를 제쳐두고는 내 분야 공부나 연구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이렇다보니 지금 내가 하는 공부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언어 세 가지를 하는 셈이다.

세상에서 가장 어렵다는 언어, 특히 한자를 재미있고도 쉽게 가르치자니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그러다 생각해낸 것이 한국 중국 일본의 한자로 풀어보는 재미있는 한자 문화 이야기이다.

공부는 늘 어렵고 힘들지만 가끔 이런 쏠쏠한 재미 덕에 오늘도 책상에 앉게 된다.


“기도는 내일 죽을 것처럼 하고 공부는 백 살을 살 것처럼 하라”지만 떼돈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백 살까지 그리 오래 살 것 같지도 않은데… 하면서도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이런 재미가 공부의 마력이 아닌가 싶다.


늘상 공부 공부하다 보니 공부(工夫)에 대한 한 ․ 중 ․ 일 한자 풀이가 정말 멋진 의미인 걸 알았다. 이렇게 근사한 공부의 뜻을 알려주면 저절로 동기부여가 되리라.

‘공부(工夫)’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니 ‘학문이나 기술 등을 배우고 익힘’으로 나와 있다.

또한 영어사전을 보면 ‘study, learning, work’로 나온다.


‘공부(工夫)’의 원래 한자 의미는 좋은 방법을 구하려고 이리저리 생각하는 것, 또는 품성의 수양, 의지의 단련 등을 나타낸다. 일본어에서도 흔히 쓰이는 ‘工夫’의 의미는 ‘생각을 짜내다, 궁리하다’란 뜻이다.

한편 중국어에서 ‘공부(工夫)’는 ‘시간’, ‘짬’, ‘틈’, ‘여가‘를 의미한다. 한국어에서는 본래의 의미에서 확장하여 학문이나 기술을 배우고 익히는 것을 의미한다. 즉 일본어 ‘공부(勉强)’의 의미로 쓰인다.

따라서 한국 ․ 중국 ․ 일본에서 사용하는 ‘공부(工夫)’의 의미를 종합해서 요약해보면 아래처럼 근사한 말이 된다.


시간을 투자하고(중국어)

생각을 짜내어(일본어)

배우고 익힌다(한국어)


논어 첫 장 첫 구절에 등장하는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悅乎)’중에서 ‘습(習)’이란 말도 새가 백번씩이나 날갯짓을 반복해 날게 되듯이 배우고 익혀서 내 것으로 만든다는 결국 ‘공부(工夫)’ 의미와 같다.


한국 ․ 중국 ․ 일본의 바보 구별법도 제각각


하는 일마다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어리석고 멍청한 사람을 흔히 ‘쑥맥’이라고 하는데 실은 ‘쑥맥’이 아니라 ‘숙맥’이 맞는 말이다. 이 ‘숙맥’이란 말은 어디서 왔을까? 순우리말로 착각하기 쉬운 ‘숙맥’을 한자로 쓰면 ‘菽麥’ 즉 콩(菽)과 보리(麥)다. 원래의 뜻은 콩과 보리도 구분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을 뜻하는 ‘숙맥불변(菽麥不辨)’에서 왔다. 이 ‘숙맥불변(菽麥不辨)’에서 ‘불변(不辨)’을 생략한 말이 ‘숙맥’이다.

그러나 요즘은 ‘숙맥’이란 말을 너무 순진하여 숫기가 없는 사람이나 재미없는 사람이란 의미로 쓰기도 한다.

우리말 숙맥처럼 특정 사물을 구별 못하여 바보, 멍청이를 뜻하는 말이 일본어와 중국어에도 있는 게 재미있다. 일본어에는 말(馬)인지 사슴(鹿)인지 구별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을 ‘바카(馬鹿)’라 하는데 일본어 ‘바카’는 우리말과 같이 바보, 천치, 얼간이, 맹꽁이, 멍청이를 일컫는다. 한편 중국어에도 이와 유사한 표현이 있는데 오곡을 구별 못하는 사람을 ‘우구푸휀(五谷不分)’이라 하며 이 역시 바보, 멍청이를 뜻한다. 여기서 오곡(五谷)은 ‘稻(벼) · 黍(조) · 稷(수수) · 麦(보리) · 豆(콩)’을 가리킨다.


한국어 : 콩(菽)인지 보리(麥)인지 구별 못하는 사람 → 숙맥불변(菽麥不辨)→ 숙맥 (바보, 천치)

일본어 : 말(馬)인지 사슴(鹿)인지 구별 못하는 사람 → (馬鹿) → 바카 (바보, 천치)

중국어 : 오곡(五穀)을 구별 못하는 사람 → 오곡불분(五谷不分) → 우구푸휀(바보, 멍청이)



중국에서 ‘애인 있나요?’는 ‘결혼 했나요?’의 뜻


‘애인(愛人)’의 원래 뜻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일본어에서는 정식 혼인관계 외의 불륜 상대 즉 ‘정부(情夫, 情婦)’등 내연 관계의 이성을 에둘러 표현하는 말이다.

중국에서 ‘당신 애인 있어요?’라고 물으면 그것은 ‘결혼 했나요?’의 의미다. 중국에서는 정식 혼인 관계에 있는 배우자, 즉 남편 입장에서의 아내, 아내 입장에서의 남편을 뜻한다.

한국에서 ‘애인(愛人)’은 이성 친구나 ‘연인(戀人)’을 의미한다.


한중일 각각 다른 ‘애인(愛人)’

한국어 : 愛人 : 연인(戀人), 이성 친구

일본어 : 愛人 : 불륜 관계의 이성

중국어 : 愛人 : 배우자 즉 아내나 남편

 

한국의 돌대가리(石頭)는 중국 ․ 일본에서는?


‘석두(石頭)’는 일본어에서는 융통성 없이 생각이 완고한 사람을 뜻한다. 중국어에서는 땅에 떨어져있는 돌이라는 의미다. 한국어에는 말 그대로 돌처럼 딱딱한 머리를 뜻한다. 그러나 일본어에서 말하는 완고한 사람을 뜻하기보다는 머리가 나쁜 사람, 우둔한 자라는 어감이 강하다. 순한글로 ‘돌대가리’라고 한다.


한국어 : 石頭 : 머리가 나쁜 사람

일본어 : 石頭 : 완고한 사람

중국어 : 石頭 : 돌


『공부하는 독종이 살아남는다』에서 이시형 박사는 공부란「Low Risk High Return」이라 했다.

맞는 말이다.

공부는 내가 투자한 노력과 시간만큼 되돌아오는 부메랑과 같다.


누구든 한번은 젊고 한번은 늙는다. ‘이 나이에…’하며 어느 샌가 훌쩍 지나가 버린 진미(眞味)기간을 운운한들 별 뾰족한 수가 없다.


일본의 어떤 생리학자에 의하면 인간의 뇌는 65세까지도 채 반도 사용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나머지 반은 백지. 새하얀 캔버스라고도 할 수 있다.

그 캔버스에 어떤 그림을 그려 갈 것인가를 곰곰이 생각하면서 지금까지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하나하나 도전해보면서 나만의 그림을 그려나갈 수 있어야 한다.

(2014. 11. 2)

Posted by 오경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