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지하철을 탔더니 ‘번역명문가’를 찾는다는 커다란 문구가 눈에 확 들어왔다. 드디어 드러나지 않은
번역명문가까지 찾아내어 대우해주는 세상이 되었구나 싶었다. 그런데 순간 ‘나라지킴이’와 번역의 조합이
뭔가 앞뒤가 안 맞고 이상했다. 아니나 다를까 ‘번역명문가’가 아니라 ‘병역명문가’였다.
한창 우에노 지즈코의『독신의 오후』최종 교정을 보고 있을 때였다.
그럼 그렇지.
번역에 뭐가 씌어도 단단히 씌었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참 희한하다. 지금 봐도 내 눈에는 여전히 <‘번역명문가’를 찾습니다>로 보이니 말이다.
박사논문 제출 때도 그랬다.
내가 쓴 논문을 최종 제출 마감시간까지도 수 십 번도 더 검토하고 수정하고 확인하고 재확인한 후 인쇄소로 보냈는데도 결국 박사논문 최종 인쇄본에 여러 군데 오타가 나와 잉크냄새도 채 가시지 않은 논문에 정정표까지 만들어 붙이며 난리를 피웠다. 인쇄 전에는 눈을 부릅뜨고 찾을래야 찾을 수 없었던 오타들이 인쇄 후에는 떡하니 바로 눈에 들어오다니… 참 어처구니없는 노릇이다.
이런 일을 겪다보니 이미 내가 세상에 내놓은 번역책이나 논문이나 단행본에도 부끄러운 오독이나 오역이나 오타가 있을까봐 두렵다.
뒤늦게라도 누군가 나의 이런 실수와 잘못을 지적해준다면 얼마나 다행스럽고 감사해야할 일인지.
번역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대학에서 번역을 가르치고 번역작업을 하며 번역논문을 쓰고 번역관련 책을 지으면서 지난 십수년 동안 번역과 동고동락해왔다. 오며가며 신문이든 텔레비전이든 책이든 거리의 간판이든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말이 ‘번역’이다. 이쯤 되면 직업병이라 할 만하다.
그래도 여전히 번역은 어렵고 갈 길 머나 먼 미완성이다.
번역은 문화의 힘이며 문화의 한가운데에 번역이 있다.
따라서 번역하지 않으면 문화는 확산되지 못한다.
문화와 언어와 사고가 다른 이문화 사이의 틈새를 줄여나갈 수 있도록 오랜 시간 꾸준히 번역하면서 번역자가 부단히 고민하고 공부하는 수밖에 없다.
번역에 정답은 없다지만 그렇다고 모든 번역이 정답인가?
내게 끊임없이 반복되는 ‘번역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우답(愚答)일지언정 내 경험상 지론(持論)을 말하자면 이렇다.
번역은 지난한 작업이다.
쉽게 쓰지 못해 다들 어렵게들 쓴다. 꽤 어려운 말과 글도 누구나가 이해하기 쉽게 쓰고 전달할 줄 아는 것이야말로 대단한 능력이며 실력이다. 번역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원문이 아무리 까다롭고 난해하더라도 독자가 이해하기 쉽고 읽기 편하게 옮길 수 있는 언어 구사 능력이 번역 능력이며 번역가의 가장 으뜸가는 자질이라 생각한다.
십여 년간 늘 번역을 가까이 하며 온몸으로 깨달은 사실 하나 ‘역시 질 좋은 번역은 뛰어난 외국어 실력보다는 한국어 실력으로 판가름 난다’는 생각에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번역에 왕도는 없다.
누구나가 번역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누구도 제대로 된 완벽한 번역을 하기란 불가능하다. 제대로 된 완벽한 번역이론 또한 있을 수 없으며 번역은 번역자가 실제 번역 작업을 해나가면서 끊임없이 어휘를 선택하고 한 땀 한 땀 다듬어가는 수작업 과정이다. 아무리 번역 이론을 많이 안다고 해도 직접 번역을 해보면서 스스로 깨닫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번역의 비결, 지름길 따윈 없다. 그저 많이 읽고 많이 번역하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자 지름길이다.
번역은 언어생활이다.
언어생활은 원활한 의사소통과 정확한 의미 전달이 목적이다. 의사소통과 의미 전달이 되지 않는 말과 글은 좋은 말, 좋은 글이라 할 수 없다. 번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번역자는 번역문 독자가 번역문의 정확한 뜻을 이해하는 데 방해받는 요인이 무엇인지를 파악하여 그 요인을 제거하고, 그 뜻을 전달할 수 있는 다양한 표현을 모색해야 한다. 번역가의 이러한 창의적 노력이 독자의 기대치에 부응하는 올바른 번역을 위한 작은 발걸음이라고 생각한다.
요컨대 제아무리 어학 실력이 뛰어나고 이론을 꿰뚫고 있다 하더라고 실제로 번역을 해보지 않으면 제대로 된 번역을 하기 어렵다. 요리를 만들 최고의 주방용 칼과 신선한 제철 재로를 갖고 있다 하더라도 누구나가 다 훌륭한 요리를 만들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1968년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岡成)의 소설『설국(雪國)』을 번역하여 일본 최초의 노벨문학상을 안겨준 번역가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Edward Seidensticker)는 “칭찬을 받는 것은 작가, 비난을 받는 것은 번역가” 라 고백했듯이 잘해 봤자 본전, 까딱하면 반역이 되기 십상인 번역이지만 이 역시도 문화 메신저인 번역가의 숙명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2014.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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