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겨짐이 아름답다

경향신문 책마을  2002-04-06  21면 글 김택근·사진 권호욱 기자

어느새 중년 그러나 즐거운 상상
'구·겨·짐이 아름답다'

앞만 보고 뛰다보니 어느새 중년. 인생을 관조하기엔 이르고 새 삶을 시작하기엔 늦었다. 닳고 해진 구두 한켤레. 구두를 신고 세파를 헤쳐나온 주인의 치열한 삶은 보이지 않고 그 '구겨짐'이 애잔하다. 자신이 끌고온 삶은 보이지 않도 세월에 풍화되어 주름이 깊게 파인 중년의 이미지와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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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 이후   소노 아야코 / 리수. 오경순 옮김
어느날 문득 거울을 보니 ‘나’는 없고 중늙은이 하나가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동안 내가 끌고온 삶은 어디에 있는가. 젊은날 그 푸르디 푸르던 꿈들은 다 어디로 흘러갔는가. 국군아저씨께 위문편지 쓰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중년이 되어버린 사람들. 그렇다, 우리는 서서이 늙지 않고 어느날 갑자기 늙는다.

자식 뒷바라지는 다 끝나지 않았고, 늙은 부모님을 모셔야 하고, 삶의 현장에서는 치열하게 경쟁을 해야 한다. 기억력은 감퇴하고 힘은 쇠퇴한다. 몸은 망가지고 아픈 데는 자꾸 생겨난다. 그리고 자신의 행동반경이나 사색의 영역 속에 들어와 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 세상을 뜬다. 인생을 관조하기에 는 이르고 새 삶을 시작하기에는 늦었다. 둘러봐도 자신을 보호할 바람막이는 없다. 주위에는 모두가 받들고 보살펴야 하는 무리만 있다.

30대 후반에 접어들면 우리는 중년에 편입된다. 물론 본인은 동의를 아니할 수도 있다. 영원한 청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이는 모두에게 세월 앞에 굴복할 것을 강요한다. 그렇다면 중년의 끝은 어디일까. 보통은 50대까지일 것이다. 하지만 이는 자신을 어떻게 가꾸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이렇듯 중년은 위기의 시간이며 일생 중 가장 고단한 시기이다. 이런 중년을 따스하게 보듬는 책 ‘중년 이후’가 나왔다. 지은이 소노 아야코는 중년 이후에야 비로소 진정한 인생이 펼쳐진다고 얘기한다. 체력지수는 하강하고 정신지수는 상승하는데 그 두 선이 어디에선가 만나는 교차점이 중년의 시작이며, 그때 인간은 육체의 쇠퇴와 더불어 인생의 본질을 발견하는 재능이 솟아난다고 했다. 이를테면 정신적 개안(開眼)인 것이다.

#덕을 갖추고 자신에게 엄격하라
중년 이후 외모는 형편없다. 삼단 복부, 이중 턱, 구부정한 등, 흰 머리, 빛나는 대머리, 늘어진 피부, 처지는 눈꺼풀 등. 그래도 말년을 앞에 둔 이들이 다른 사람에게 향기를 나눠줄 수 있는 것은 덕(德)이 있기 때문이다. 덕은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쌓이는 것이다. 사랑이 인간을 구제한다고 한다. 그러나 미움과 절망이 인간을 구제할 수도 있다. 중년의 연륜은 미움과 절망까지도 품을 수 있다. 성실하게 살면 이해도, 지식도, 지혜도, 사려분별력도 자신의 나이만큼 쌓인다. 그런 것들이 쌓여 후덕한 인품이 완성된다. 중년이란 이 세상에 신도 악마도 없는, 단지 인간 그 자체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시간이다. 그래서 젊은날의 만용조차 둥글둥글해지고 인간을 보는 눈은 따스해진다.

이러한 덕목을 갖추려면 스스로에게 엄격해야 한다. 자신에게 견고한 자갈을 물리고, 삶의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 시간은 인간에게 성실할 것을 요구한다. 잉여(剩餘)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시간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한 정신적, 육체적 노력 없이는 시간을 차지할 수 없다. 그래서 중년에게 시간은 두렵고 잔혹한 것이다.

#마음 비워라, 미완성에 감사하라
중년 이후에는 ‘진격’보다는 ‘철수’를 준비해야 한다. 물러설 때를 늘 염두에 두며 살아야 한다. 자리에 연연해서는 안된다. 지은이는 그런 행위는 공해(公害) 아닌 후해(後害)라고 일갈한다. 집착이란 보이지 않는 일종의 병이다. 그래서 자신과 관계있는 조직에 너무 애착을 갖지 말라고 충고한다. 애착은 곧 권력을 갖고 싶은 유혹에 빠지게 하고, 마침내 인사에 관여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힘을 주위에 과시하려 하게 된다.

오래 살게 되면 얻는 것도 있겠지만 잃어버리는 것이 더 많다. 따라서 ‘잃어버림’을 준비하라고 조언한다. 그것은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하라는 말이 아니라 순수하게 잃어버림을 받아들이라는 말이다. 주변의 사람도, 재물도, 그리고 의욕도 자신을 떠나간다. 이것이 중년 이후의 숙명이다. 인간은 조금씩 비우다 결국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을 때 세상을 뜨는 게 아닐까. 말석에 앉으면 세상이 제대로 보인다고 한다.

지은이는 또 너무 젊은 나이에 많은 것을 얻으면 중년 이후는 따분하고 무료하니, 더딘 인생을 탓하지 말라고 했다. 완성이 늦을수록 성취감은 숙성되어 그 맛이 그윽하다고 한다.  더딘 삶, 미완성을 다행으로 여겨라. 나아가 감사하라. ‘늦게 됨’은 축복이다

▲ 중년이란
년은 용서의 시기이다. 노년과는 달리 체력도 기력도 아직 건재하며 과거를 용서하고 자신에게 상처준 사건이나 사람을 용서한다. 예전에는 자신에게 상처를 입힌 흉기라고까지 생각했던 운명을, 오히려 자신을 키워준 비료였다고 인식할 수 있는 강인함을 갖게 되는 것이 중년 이후인 것이다.(31쪽)

한 것, 비참한 것에서도 가치있는 인생을 발견해내는 것이 중년이다. 여자든 남자든 어떤 사람을 평가할 때 외양이 아닌 그 사람의 어딘가에서 빛나고 있는 정신, 혹은 존재 그 자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때가 중년이다.(58쪽)

년을 넘어서게 되면 우리들은 항상 잃어버리는 것에 대한 준비를 계속해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잃어버리는 것에 대한 준비란, 준비해서 잃어버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 아니다. 잃어버린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태세를 늘 갖추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76쪽)

어다닐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축복받은 일인가. 자기 스스로 먹을 수 있고 배설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위대한 일인가. 더더욱 아직도 정신이 맑아 다소 철학적인 사고가 가능하다면, 그것은 10억원짜리 복권에 당첨된 것과도 견줄 만한 요행일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것은 중년 이전에는 결코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152쪽)

근의 풍조로 봐서는 고령자라고 해서 위로받기는커녕 무시되어 말석에 버려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그런 때야말로 말석의 편안함을 느끼게 된다. 말석이란 모든 것이 잘 보이는 자리다.(187쪽)

어떤 사람이 없어도, 이 세계는 변함없이 잘 돌아가게 마련이다. 중년 이후에 우리가 의식해야 할 것은 내가 없어도 어느 한사람 곤란해 하지 않는다는 엄연한 현실을 인식하는 일이다. 만일 내가 없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참으로 비참하게 생각될지는 모르나, 그 누구가 없어도 이 세상은 아무 차질 없이 잘 돌아가게 되므로, 기본적으로 우리들은 안도감을 가질 수 있게 된다.(193쪽)

Posted by 오경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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