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하건대 얼핏 보기에 굉장히 수수하고 평범해 보이는 이 책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정말로 숱한 우여곡절이 있었다. 무려 8년의 세월이 흘렀으니 이 게 무슨 나와 이 책의 끈질긴 인연의 조화인지.

 

2008년 4월부터 1년간 나는 일본 도쿄 네리마(練馬) 구에 있는 무사시(武蔵)대학에서 초빙 객원연구원 생활을 했다. 무사시대학 도서관을 왔다 갔다 하던 어느 날 도서관 금주의 신간코너에서 맞닥뜨린 책이 바로 이 책 『仕事は5年でやめなさい(원서 제목: 직장은 5년 되면 그만두어라, 한국어판 제목: 나는 5년마다 퇴사를 결심한다)였다. 허를 찌르는 책 제목만으로도 흥미와 궁금증을 불러일으켰고 단숨에 나의 마음을 확 끌어당겼다.

 

그도 그럴 것이 2008년이란 적어도 내 기억 속에서는 지금까지도 가장 강렬하게 남아있는 하나의 사건과도 같은 하루하루였으니…

 

지금으로부터 8년 전 도쿄 그 때 그 시절 …  ‘가는 날이 장날’이란 말은 딱 그럴 때 쓰면 제격인 말이었다.

 

벼르고 벼르던 도쿄에서의 호사스런 생활은 달랑 몇 달도 넘기지 못한 채 가뜩이나 비싼 생활비가 환율 폭등으로 갑절로 뛰면서 낭만이고 뭐고 없이 날마다 통장의 잔고를 확인하며 하루하루 버티는 고단한 생활이 이어졌다.

 

날마다 매스컴에서는 암울한 세계금융, 경제관련 뉴스만 쏟아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뛰어오르는 국내의 환율과 금리, 끝을 알 수없는 주가폭락 등 누구도 내일을 예측하는 일은 무의미해보였다.

이 곳 도쿄 거리에도 실업자가 넘쳐나고 비정규직 취업도 하늘에 별 따기. 가뜩이나 두 달 전 20대 비정규직 회사원이 생활고와 세상에 앙심을 품고 도쿄 아키하바라에서 휘두른 무차별 살인 사건으로 십여 명의 사상자를 내며 일본 사회를 뒤숭숭하게 한 터였다. 안팎의 이런 저런 탓에 암울한 경제 사정뿐 아니라 거리를 오가는 일본인 모습에 드리워진 무겁고 우울한 그림자는 쉽게 가시지 않을 태세였다.

 

가뜩이나 위축되고 위태로운 직장인들은 이 거대한 쓰나미를 무슨 수를 써서라도 헤집고 버텨내야할 판인데 직장은 5년 되면 그만두라? 라니.

 

그러니 이 책에 눈이 갈 수밖에. 나와 이 책과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뒤돌아보니 여태껏 살아오면서 5년 단위로 바뀐 내가 걸어온 길의 흔적과 그 5년이란 숫자가 어쩌면 그리 딱 맞아떨어지는지…

 

‘직장은 5년 되면 그만두라’는 역발상의 참 뜻은 이렇다.

 

일단 직장에 들어가면 5년 동안 배울 수 모든 것을 몽땅 배워라.

배워서 내 스스로 성장하겠다는 의지와 자세만 갖추어지면 그 어떤 어려움도 견뎌낼 수 있다.

인생의 목적과 목표를 분명히 해라.

‘무슨 일이든 재미가 없으면 얻는 것도 없다(No fun, no gain)’ 는 마음가짐이 멀리 더 오래 달리게 한다.

 

그렇다.

 

평생직장이란 이젠 옛말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직장과 직장인의 트랜드가 변화하고 있다.

직장은 능력 있는 소수만을 찾게 되고, 생애 첫 직장을 평생 함께하겠노라 다짐하는 직장인 또한 거의 없다.

끊임없이 공부하고 역량을 강화하지 않는 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끝까지 살아남을 수가 없다.

 

돌이켜보면 나의 지난날도 5년 주기로 각기 다른 스토리와 새로운 도전과 만남으로 차곡차곡 채워져 참 신기하다.

 

8년 전 오랫동안 준비하며 혼자만의 멋진 긴 외박을 꿈꾸며 날아간 일본 땅에서 의식주만으로도 당초 예상했던 두 배의 대가를 치루면서 군색해진 생활에 마음조차 가난해져 꿈이고 뭐고 다 날아가 버렸지만, 눈이 번쩍 뜨인 이 책을 만나 내 스스로 커다란 인생 공부가 되었는데 번역본까지 세상에 내놓게 되니 만감이 교차한다.

 

2008년 1년간의 일본 생활은 겉으로 드러난 덧셈 뺄셈만으로는 손해난 장사였지만 이 책과의 인연으로 몇 곱절 되돌려 받은 듯 뿌듯해지니 인생의 인연이란 아무리 생각해도 참 묘해서 흥미진진하고 흐뭇하다.

 

 

2016년 5월 13일 오경순

Posted by 오경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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